"나오미, 우리의 패션 쇼에서 넘어져 줄 수 있어요?"
새로운 컬렉션을 소개하는 런웨이 무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빠르면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무대가 끝나는 것이 평균적이죠.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이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한해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렇기에 이 짧은 시간을 위해 수개월의 작업 과정을 거치게 되며 디자이너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장소, 조명, 메이크업, 헤어, 모델에 대한 선택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치뤄내기 위해 수많은 미팅을 가지기도 하죠. 이렇게 패션쇼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완성이 되는 무대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겠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피날레까지 완벽하게 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웃고 넘길만한 해프닝부터 과격한 주먹다짐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만나볼 수 있죠. 이번 컨텐츠에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패션위크 런웨이 무대에서 일어난 혼란스러운 해프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LOUIS VUITTON
FALL/WINTER, 2011
2004년도 런웨이 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했던 케이트 모스는 루이비통의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통해 화려한 복귀를 치렀습니다. 전통적으로 루이비통 여성복의 런웨이가 열려왔던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무대는 케이트 모스를 위한 자리라고 해도 무방했죠. 하지만 이 무대에서 보인 케이트 모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도부터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프랑스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가 쥐어져 있었죠.
매일 밤 술과 담배에 취한 모습으로 논란을 자아내며 결국 마약 파문으로 수많은 광고 계약을 해지 당한 그녀였기에 이 등장은 새로운 논란의 시발점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그녀의 모국인 영국의 '금연의 날'이었죠. 아직까지도 이 연출이 미리 계획된 것인지 아니면 케이트 모스의 독단적인 행동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날은 루이비통 쇼와 케이트 모스의 사진이 모든 언론에 보도되며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JULIEN MACDONALD
FALL/WINTER, 1998
화려함을 두고서는 줄리앙 맥도날드의 컬렉션을 빼놓을 순 없습니다. 현재도 비욘세와 킴 카다시안 그리고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스타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특히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은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줄리앙 맥도날드의 컬렉션을 위해 제이지는 런웨이에서 무대를 선보였으며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인 멜라니 비는 모델로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디자이너였죠. 1998년도에는 마이클 잭슨의 무대 의상을 담당하며 같은 해에 열린 1998년 가을·겨울 쇼에 마이클 잭슨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초대되지 않은 인파들이 모이는 바람에 행사장 주변에는 경비 인력이 총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인근 도로는 폐쇄되었고 언론사에서는 헬리콥터를 보내기도 했죠. 실제로 마이클 잭슨은 쇼에 참석했고 전설적인 스타일리스트인 이자벨라 블로우 옆에 앉아 그녀와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여줬고 쇼가 끝나고 나서는 줄리앙 맥도날드와 함께 격한 포옹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서야 밝혀진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마이클 잭슨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고 이 모든 것은 줄리앙 맥도날드의 장난으로 밝혀진 것이죠. 두 사람은 관객들에게 뻔뻔한 웃음을 날렸고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무대를 끝냈습니다.
RICK OWENS
SPRING/SUMMER, 2016
릭 오웬스는 종종 자신의 무대를 통해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2016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일어난 해프닝은 그의 의도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릭 오웬스의 12년 지기 친구이자 뮤즈인 예라 디아크(JERA DIARC)는 자신의 워킹을 시작하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죽이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힌 두건을 들어 관객들에게 보여줬고 이 모습을 본 릭 오웬스는 그가 백스테이지로 돌아오자마자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모델이 독단적으로 행한 행동이며 릭 오웬스 브랜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죠. 시간이 지나 서피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는 "극적인 드라마를 위한 메시지를 보여줬다면 주먹까지 휘두르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메시지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요. 12년 지기 친구라도 예외는 없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WALTER VAN BEIRENDONCK
SPRING/SUMMER, 1996
앤트워프 식스의 멤버이자 업계 전체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월터 반 베이렌동크는 1980년대부터 업계에 혁신을 선보여온 인물입니다. 그런 그도 쇼를 진행하며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었습니다. "WILD & LETHAL TRASH"라는 타이틀로 선보였던 그의 1996년 봄·여름 컬렉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월터 반 베이렌동크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한 가지 결함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레터링과 그래픽으로 꾸며진 마스크를 쓴 모델들이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다는 것이죠. 물론 무대를 시작하기 전 리허설을 통해 동선을 익혔겠지만 시끄러운 음악과 엄청난 관객들로 정신이 없었는지 몇몇 모델들은 무대의 끝자락까지 워킹을 이어갔고 결국 무대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높지 않은 곳이었기에 큰 부상은 없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론 좋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되어버려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YEEZY
SEASON 6
이제는 예(Ye)라고 불리는 칸예 웨스트는 가수이지만 패션 디자이너로서도 자신의 재능을 입증하며 멀티 엔터테이너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브랜드인 이지의 네 번째 컬렉션은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는 힘들 겁니다. 뉴욕 패션위크가 열리는 기간 동안 뉴욕의 루스벨트 섬에서 열린 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수많은 VIP들이 이 장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쇼를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올랐던 모델들은 미친듯한 열기를 이기지 못했던 걸까요? 잔디밭에 서서 대기하던 몇몇 모델들이 더위에 지쳐 실신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주위를 지나던 행인들이 물병을 들고 모델들을 돕기 위해 무대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워킹을 담당했던 모델들도 혼미한 정신으로 워킹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마치 술에 취한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VIVIENNE WESTWOOD
FALL/WINTER, 1993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나오미 캠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절대로 빠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1993년 가을·겨울 컬렉션 런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슈퍼 모델이었던 나오미 캠벨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멋진 워킹을 이어갔지만 높은 하이힐 때문인지 무대의 중간에서 균형을 잃었고 수많은 관객과 카메라 앞에서 넘어지고 맙니다.
그녀는 창피한 웃음을 지었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나 멋진 워킹을 이어나갔죠. 이 순간을 놓칠 리가 없는 포토그래퍼들은 그녀가 넘어진 순간을 1면에 싣었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쿨하게 이 사태를 넘어갔습니다.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며 말이죠. 나오미 캠벨은 이 일이 일어나고 나서 많은 브랜드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쇼 도중에 넘어질 수 있냐는 질문도 받았다며 웃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