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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set엄마 Mar 26. 2022

내 우울함의 근원

where does the depression come from?

죄송합니다.

한 때는 우울함이란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우울함도 찾아올 수 있다고 오해했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허덕이며 직장, 삼 남매의 육아와 교육, 그리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저에게는 그런 감정 따위가 찾아올 여유 따위는 허락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우울함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도중에도 찾아오더군요.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제 마음속의 이 우울함은 말끔히 개운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앓고 있는 지병처럼, 주기적으로 그 파도가 밀려오나 때로는 더 강하고 오래도록 지속되고 때로는 약하게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또 운이 좋을 때는 그 존재를 망각할 수 있을 만큼 가볍게 제 마음속을 휘젓고 다닙니다.  여러 해가 지난 최근부터는 이제 어느 정도 순응하여 내 마음속의 이 녀석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저 다스리며 잘 지내자고 다독여봅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막내가 돌을 갓 지난 무렵이니 이제 십 년 가까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출근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근무시간에 화장실에 앉아서 운 적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붙잡고 그만하고 싶다고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자신 있는 척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영영 일어나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씩 우울함의 파도가 밀려오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왜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가지 못했는지, 나는 왜 더 경제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는지, 내 남편은 왜 육아와 가정 살림은 나 몰라라 하는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이유로 나는 그렇게 한 번씩 우울함에 끌려다니며 한없이 한없이 가라앉았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의 이런 모습은 알지 못하고 여전히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성장해 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저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자 기쁨입니다.




요즘은 산책을 자주 하려고 노력합니다.  걷기 운동은 신체 건강에도 유익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때로는 새로운 영감을 얻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지난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가 내 우울함의 원인이 전등에 불이 들어오듯 떠올라서 글로 기록합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을 꼽으라면, 저는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을 참 잘합니다.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시간 압박 안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 밀려드는 업무 요청 또는 가정 일들 중 모두를 내가 다 해낼 수 없기에 일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 순위는

1) 지금 꼭 내가 해야 할 일

2)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있는 일

3) 물꼬는 내가 터놓고 다른 사람이나 또는 기계가 처리하게 한 후 마무리는 내가 해야 하는 일

4) 시킬 수 있으나 처리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니 다른 일보다 우선 시작해놓고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할 일 등등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잘한다고 자부하는 우선순위 매기기가 우울함에게 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산책 중에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그 순간에는 마치 내 심장의 쿵쾅쿵쾅 소리가 지나가는 분들도 들이 들으실 수 있을 거 같이 크게 뛰었습니다.  내 일상의 우선 순위이이지만 여태껏 "나"는 너무나 모순적으로 "나"를 늘 그 우선순위 리스트 제일 밑에 두었습니다.  


나의 식사시간, 나의 산책 시간, 나의 자기 계발 시간, 내 운동 시간은 항상 다른 우선순위에 치여서 아이들 밥 다 먹이고 남은 반찬에 막내를 둘러업고 마시듯이 밥을 먹었고, 산책, 자기 계발, 운동은 나중에라는 기약 없는 미래로 보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인데 내가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고 그 지긋지긋한 우울함을 나를 괴롭히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내 삶이 의미 없는 날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울함이라는 이 녀석과 맞서 싸울 마음은 없습니다.  매일 맑은 날만 있을 수는 없듯이 우리 마음도 늘 밝고 긍정적일 수는 없겠지요.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그날의 날씨가 이유가 있듯이, 내 마음이 날씨도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내 마음을 다독이면서 지내겠지만 원인을 알고 나니 훨씬 더 편안해졌습니다.  결국 답은 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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