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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휴학.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했다. 1년 이나. 잠깐 했던 PC방 카운터, 택배 상하차와 달랐다.
심리적 G7처럼, 심리적 직장인. 사실상 핵보유국처럼, 사실상 월급쟁이였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린다. 산산하고 어둑한 저녁. 횡단보도 건너편. 노점 분식 있다. 집에 가면 저녁이 있겠지만.
퇴근 무렵. 사실상 월급쟁이 마음은 헛헛하기 마련.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길. 어머니의 타박이 머릿속에 재생돼도.
도심 한복판의 노점 분식집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나. 호로록 분식집으로 빨려든다.
노릇노릇 튀김을 주문한다. 선발대는 김말이. 튀긴 의미가 있나 싶지만, 맛있으니 오징어튀김도. 건강을 생각해서 채소도 먹어야 하니, 야채 튀김도 시킨다.
구색 맞추려고 떡볶이도 조금. 역시 선뜩할 땐 오뎅이 제일. 무에 푹 절여진 국물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알아버린 천상의 맛. 조미료 탕. 간장을 발라 먹는 탱탱하고 쫀득하고 짭짤한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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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침내. 진짜 직장인이 됐다. 원룸을 구했다. 퇴근하고 늘어져 야구를 보고. 동료들과 술도 들이켜고. 작은 중고차를 운전해 영화도 보러 다녔다. 진정한 어른의 세계가 열렸다.
요리는 시도조차 생각 않았던 그때. 편의점 들러 냉동식품 고른다. 냉동 피자, 만두, 닭강정. “그런 것 좀 그만 사 와.”라는 어머니 잔소리도 없다. 내친김에 아이스크림도 한가득 샀다.
원룸에서 패키지로 내어 준 작은 냉장고. 그 냉동실을 가득 채웠다. 혼자 비스듬히 눕는다. 결말 예측이 가능한 한화이글스 야구를 튼다.
불같이 터지는 속을 아이스크림으로 달랜다. 크. 진정한 으른의 맛. 한화이글스 야구를 보면서, 빙그레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달래는 이런 밸런스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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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지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던. 짜장면이 아직 특별 외식 메뉴였던 시절. 엄마 손을 잡아야만 했던 나이엔. 오뎅은 왜 그렇게 비쌌을까.
쌓여만 가는 오뎅 꼬치. 그걸 보면서도 맘 졸이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 혼자 뱃속을 오뎅으로 가득 채웠는데, 만 원 안 되는 돈을 낼 때.
나 이제 어른이구나.
사진 출처 :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