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하프달리기
3월. 달리기를 시작했다. 살을 빼려고 걷기를 했다가, 요즘은 다들 뛴다고 해서 뛰어봤다. 5월 10km를 한 시간안에 뛸 수 있게 됐다. 6월, 21킬로미터를 2시간 19분에 완주했다. 시골 뚝방길을 혼자 달렸다. 나도 하프를 할 수 있구나.
두 달 후, 더위 속 8월. 다시 같은 코스를 달렸다. 2시간 23분이 나왔다. 4분 느려졌다. 17km부터 움직이지 못할 만큼 힘든데, 완전히 퍼질지도 모르니 속도를 높이는 건 안되겠다.
인생 첫 공식 하프마라톤. 서울에서 열린 마블런. 목표는 2시간 20분. 보수적인 목표였다. 6월부터 스마트워치는 2시간 9분이면 된다고 했고. Gpt도 2시간 10분 안에 충분히 들어 올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완주하지 못할까봐 겁 먹었다.
출발선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천천히 뛰는 것 같은데 시계는 5분대를 가리켰다. 주변 사람들이 워낙 빨라서 착각한 것이었다. 억지로 속도를 늦춰 첫 1Km를 6분 14초로 맞췄다.
서울 시청을 출발해 경복궁, 광화문. 숭례문 앞까지. 5킬로미터쯤 달렸을 때 넓은 8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언제 이렇게 행복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운 날씨였지만 빌딩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팔치기고 뭐고,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페이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혼자 박수를 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함께 출전한 형이 나를 봤지만 아는 척 하지 않았다고 했다. 너무 즐겁게 달리는 것 같았다며.
아, 고통스러울 것만 같은 하프마라톤을 이렇게 즐겁게 달릴 수도 있구나.
18킬로미터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페이스가 30초씩 밀렸다. 걷고 싶었지만 걷지 않았다. 걸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코너 돌면 끝나요."
누군가의 목소리. 마지막 100미터쯤 되려나. 나는 3분 페이스로 스퍼트를 했다. 하프를 혼자 연습할 땐 다리가 무거워 도저히 안되던 마지막 스퍼트였는데.
한국나이 마흔 여섯.이제 삶에 도전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프마라톤이 있었다. 그 도전이 기분 좋았다. 딱 예상대로 2시간 20분에 맞춘 완주기록. 이제 남은 건 내 안의 막연한 두려움을 깨는 일.
몸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역시 대도시에서 달려야 좋구나.
2시간 21분 5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