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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Nov 08. 2024

먹으면 행복할거야 2


인생에 대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말이다. 내가 안해도 누군가 내 역할을 해준다면 나는 슬그머니 책임을 놓아버리면 그만이다.


책임전가만틈 매력적인 게 무엇일까? 물론 그 책임을 떠맡게 되는 이는 치가 떨리겠지만.


대타가 없는 엄마 인생 15년, 견디기 위해 마셔본다. 사실 육아의 무게감보다는 삶의 무게감에 육아의 무게감이 더해지는 것이 억울한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타없는 인생이니 이렇게 술기운을 빌려본다.


이상하게 술을 마시면 참지 않게 된다. 나는 말이다. 성정에 인내심은 기본이라 그 인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건 알콜 기운 덕분이다.


인내심에 바닥을 치고 왕창 싸지르고 싶지만 그래도 기본 성정에 허용되지 않은 범위라 그저 노동주 정도로 여기며 한잔 마셔본다.


현실과 이상을 오가며 괜한 상념에 사로잡힌 나는 그나마 최근엔 현실에 타협을 했다. 이상을 꿈꾸기엔 현실이 크기도 했고 내가 이상을 감당할 에너지가 하락세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래놓고 이렇게 연재를 하며 글을 쓰는 건 남은 2024년이 지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살면서 제일 싫은게 지나고 난 후회란걸 인생 살며 크게 느낀 지혜다.


오늘은 내 마음 같지 않은 현실 또는 이상을 잃은 듯 현실에 찌든 내 자신이 싫어서 한 잔 기울였다. 물론 요즘들어 오지게 말을 더 안 듣고 날 뛰는 막내 몫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어디가서 소리라도 지르며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털어내 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에 감당해야 할 하루의 몫이 여전히 남아있다.


저녁을 주고 치우고 숙제를 시키고 남은 집안일을  처리하고 여전히 해도 또 해야할 거 같은 집안일 목록에 한숨 한 바가지까지 말이다.


그런 와중에 할 일을 마치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먹으면 행복할거 같은 연재 덕이다. 연재하자마자 소재가 이리 마구 떨어질줄이야. 내가 글을 쓰길 기다렸나보다.


 마음 한가득 응어리 안고 술기운에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찌됐던 그 술기운에 현실을 헤쳐나가니 말이다. 아마도 종교가 아니었다면 술에 쩔어 살았을 나 자신이다. 이미 친정아빠가 평생 술에 쩔어 현실을 외면하며 살았으니 그 유전자가 어디 가겠는가.


치매까지 더해지면서는 알콜이 들어가지 않아도 알콜이 들어간 듯한 정신의 아빠를 보는 건 갈수록 쉽지 않다. 아마도 오늘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와서 내 현실이 더 찌든듯이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구나 더 현타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아빠, 아빠, 멀쩡한 정신에 의식을 가지고 그런게 어딨냐고! 우리딸이 최고다! 말해줘야 하는 우리 아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슬픈다. 그래서 절망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늙어가고 망가져가는 아빠를 보면서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아내는 딸은 희망이 자꾸만 멀어져간다. 그래서 먹고 행복하려고 한잔 마셔본다.


아니 여전히 나에게 주어진 하루치의 할달량을 채워 스스로 후회가 없도록 알콜의 힘을 빌려본다. 행복보다는 책임을 다하기 위한 먹부림이다.


먹어서 행복하게 할 일을 참으면서 안 먹고 불행하게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적어도 현실 도피성으로 알콜에 빠진 친정아빠보다는 꽤 어른스럽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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