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교과서에 관한 찬반 논쟁이 팽팽하다.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란 제목의 국회 국민 동의 청원도 5만 명을 넘어 소관 상임위에 회부되었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역시 디지털 선도학교로서 2025년 디지털 교과서 적용 전 수업 혁신을 선도하고 수업 모델 구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내년부터 수학, 영어, 정보 등의 과목에 우선 도입하고 2028학년도에는 모든 교과목에 도입한다고 하니 교육부 입장에선 한시가 급한 과제이다. 선도학교의 리더십 팀 일원으로서, 그중 영어 과목 담당 교사로서, 영어 과목 코스웨어 및 각종 에듀테크를 사용하고 선도학교 리더그룹 양성 연수 등을 들어본 결과,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관해 떠오르는 나만의 생각을 남겨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교육적 실패가 너무 불 보듯 뻔해 보인다는 것이다. 에듀테크 프로그램이야 코로나 시대부터 죽 사용해왔다지만, 이번 해 처음 AI 코스웨어를 접하고 각종 디지털 혁신 관련 연수를 수강했다. 가장 최근에는 리더십 팀 회의에서 2학기 선도학교 수업모델 구축에 필요한 단체 연수와 업체를 선정하고 방학 전에는 선도학교 리더십 팀 단체 연수를 수강했는데, 그날 집에 돌아오며 속담이 하나 떠올랐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비유하면 이렇다. 교육부가 내년 3월 즈음에 전 국민이 기대하는 맛집을 열고 싶어서 거금을 쏟아 각종 홍보와 마케팅을 하고 있다. 간판이나 인테리어, 분위기는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세련되고 신선하다. 그런데 막상 가장 중요한 음식 맛은 형편없고 종업원 교육은 하나도 안 되어있는 상황이랄까? 그럴듯한 메뉴명과는 달리 기존 메뉴와 차이점을 전혀 모르겠거나 음식 맛이 기본에는 전혀 충실하지 않고 각종 기교만 부린 티가 나 영 뒷맛이 찝찝하달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장 3월에 어떻게든 가게를 열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오픈이 늦어지더라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기본부터 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러다 큰 탈이 날까 걱정인 직원들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가게에 찾아올 손님들이 밥만 먹고 돌아가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은 소화 시켜 버리면 그만인 음식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고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일, 그야말로 '백년지대계'이다. 무엇에 쫓기듯 급하게 혁신을 삼켜버리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디지털 교과서에 관한 논의 이 전에 몇 가지 질문이 앞선다.
1) 영어 과목 AI 코스웨어 사용은 학생들의 영어 학습 능력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가?
2)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이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학생들의 역량 개발(3C)에 도움이 되는가?
+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3) (위의 1,2번이 O이라는 전제로) 2025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위한 기술적, 행정적 인프라는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가?
먼저, 디지털 교과서란 무엇일까.
디지털 교과서란 기존 서책을 교과서에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닌 AI 기반 코스웨어가 들어간 '맞춤 콘텐츠 추천' 교과서이다. 단순 에듀테크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은 데이터 분석을 통한 학생 맞춤형 콘텐츠, 학습관리 시스템(LMS), AI 튜터 기능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디지털 교과서의 핵심은 학생들의 학습 수준이나 속도를 분석해 학생 맞춤형 개별학습을 제공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에듀테크 프로그램으로 카훗(Kahoot)이 있다. 카훗은 교사가 퀴즈를 만들면 학생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으로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게임 기반 학습 플랫폼이다. 신나는 음악, 실시간 퀴즈 참여, 콤보 보너스, 빠른 답변에 대한 보상 등의 요소가 카훗의 흥미와 경쟁을 높여 학습자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영어 어법 시간 대표적인 활동으로 '어순 배열(unscramble activity)' 활동이 있다. 어순 배열 활동은 단어나 문장을 무작위로 섞어서 학생들이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도록 하는 활동인데 예를 들면, 그녀와 그것에 대해 얘기해 봤어?를 영작하기에 앞서 'you / have / to / about / talked / her / it /?/를 주고 'Have you talked to her about it?'로 배열하는 식으로 학생들의 기본적인 어휘력과 문법에 대한 이해도를 간단히 확인하는 활동이다.
어순 배열 활동을 위해 기존 방식대로 프린트를 나눠주고 학생들이 일일이 쓰게 한다면 수업 시간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카훗에 접속하여 게임하듯이 태블릿을 빠르게 탭 하여 문장을 재배열하고, 실시간 리더보드를 확인하는 등의 게이미피케이션 요소가 더해지면 학생들의 흥미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에듀테크 프로그램에는 '신기성' 효과도 꽤나 작용한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초반, 기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미와 집중력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각설하고, 에듀테크 프로그램인 카훗에는 개별화 교육 기능은 없다. 디지털 교과서에 들어갈 AI 코스웨어는 학생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AI 튜터가 학습 진도를 체크하는 등의 '개별화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have you talked to her about it?' 와 같은 완료형 구문을 지속적으로 틀리는 아이에게 이를 연습할 수 있는 활동을 제공하고 AI 튜터가 학습 상황을 확인하며 안내 문자를 보내는 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AI 코스웨어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수준에 맞게 공부하고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어 학습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목표 어법이나 어휘를 잘 습득하고 암기했다고 해서 영어 학습 목표가 달성된 것이 아니다. 영어 학습의 진정한 목표는 아이들이 영어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다양한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래 사회를 대비하고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핵심 역량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 영어교육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위의 어순 배열 활동 예시에 기반해서 설명하자면, 어순 배열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완료 구문과 어휘를 잘 학습하는 것이 영어학습의 1차 목표라면, 학습한 어법과 어휘를 기반으로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감정 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나아가 실생활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인 셈이다.
그렇다면 AI 코스웨어 기반 디지털 교과서는 영어 학습의 진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을까?
-> 이에 대한 답으로 나는 현재의 AI 코스웨어 기능이 영어 학습의 1차적 목표에 치중해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 과목 AI 코스웨어의 대표주자인 클래스00, 원00 등의 프로그램은 학생 맞춤형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뿐 아니라 AI 튜터 나 대시보드 등의 부가기능도 훌륭하다. 그러므로, 초기 학습이나 학생들의 예복습 용도로 활용하는 점에서는 매우 유용하다고 본다. 그런데 공교육 영어학습이 지향하는 최종 역량은 몇십 세트의 어순 배열 문제나 빈칸 채우기 문제, 혹은 AI 음성 더빙 기능이 들어간 스피킹 연습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3C(창의성, 의사소통 능력, 협동심)로 대표되는 역량 중심 교육과정의 최종 목표, 진정한 목표는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디지털 교과서의 급진적 도입이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번 학기 아이들과 함께한 수행평가 예시를 들어보고 싶다. 아이들이 부여받은 과제는 외국 거리에 한국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 가게를 창업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조별 활동으로 충분한 자료 조사와 브레인스토밍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팔고 싶은 한국 음식을 선정했다. 2차시에는 푸드트럭의 시그니처 메뉴, 가격, 컨셉, 다른 푸드트럭 가게와의 차별점 등을 고민하고 초안을 쓴 뒤에 peer-feedback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아이디어를 확장했다. 최종적으로, 수업 시간에 배운 감각 동사나 there 구문, 맛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단어 등을 활용하여 푸드트럭 홍보문을 작성하고 간단한 팜플렛을 만들어 이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수행평가였다.
이 과정에서 어떤 학생들은 교사도 깜짝 놀랄만한 창의적인 메뉴와 컨셉을 선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글을 썼다. 반면, 어떤 학생들은 아이디어는 떠오르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ㅡ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ㅡ 번역이나 선생님의 도움 등이 충분했기에ㅡ 영어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이를 정확히 표현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글을 쓸 수 있는 냐의 문제였다. 극단적으로는, 교사가 쓴 예시 홍보문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모델링 하여 음식이나 맛, 가격, 파는 장소 등만 살짝씩 바꿔쓰는 것이 전부인 아이들도 있었다. 애초에 우리말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표현하지 못하니, 다른 나라 언어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그다음 부차적 문제가 되는 셈이다. 교사의 홍보물을 그대로 모델링 하여 쓴 아이들 중에는 영어 단어나 어순 배열은 곧잘 해내는 아이들도 있으니,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더더욱 명확해지는 시점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언어의 힘이 곧 생각하는 힘이란 것이다. 인간은 인지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추론한다. 인간도 동물도 제 앞에 놓인 빨간 사과를 '감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빨간 사과를 보고 '새빨갛다', '둥그렇다', '신선하다', '건강하다' '아이폰' 등의 단어를 떠올리며 '인지' 할 수 있다. 오로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트레이닝에 수많은 언어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 그 이유다. 인공지능은 우리 대신 훌륭한 연설문을 써주고, 그럴듯한 논문을 발표해 줄지 모르지만 대신 생각해 주지는 않는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더욱 피부로 와닿는 이슈이다.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라는 속담에 '배 나라는 어느 나라에요?' 묻는 아이들의 웃픈 일화는 이미 허다하다. 많은 국어 선생님들께서 교육과정 개정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의 읽고, 쓰는 수업 시간이 오히려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에 대해 걱정하신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 간의 문해력 격차도 날이 갈수록 벌어진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독서 논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군지의 유명 독서 논술 학원들은 방학이면 학생들로 붐빈다. 사교육이나 가정 내 충분한 문화자본을 통해 탄탄한 문해력을 갖춘 일부 아이들에게는 AI 코스웨어의 개별학습 기능이 더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생활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자기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역량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문해력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은 많은 아이들에게는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이야말로 생각하는 힘을 앗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혹자는 질문할지 모른다. 디지털 교과서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우려하는 것은 기술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최종 방향은 무엇인가. 이미 잘하는 아이들이 더 높은 성적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일까. 아니면 '한 명의 아이들도 낙오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소외받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교육 기회와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일까. 공교육의 지향점은 두 번째 목표에 더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하여, 잘하는 아이들이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 과제를 완수하는 협동학습으로도 충분히 두 집단 모두에게 유의미한 교육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단순히 무엇이 효과적인 가?라고 질문하기에 앞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길러주고자 하는 역량이 무엇인지부터 검토해 보아야 한다.
호주 모나쉬 대학 닐 셀윈 교육학 교수는 '기술은 교육을 구성하는 복잡한 구조 중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라 말했다.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타 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도구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손상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도 밝혔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공교육 현장은 학생들이 모니터 속에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하며 어순 배열 문제를 풀고 AI 스피킹 기능으로 자신의 발음을 분석하고 교사에게 일일 학습량을 확인 받는 현장이 아니다. 여러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결과물을 만드는 경험을 하고, 갈등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익히고, 그런 와중에 소중한 성취감을 맛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가는 것. 이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아이도 낙오되지 않고 모두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경험을 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공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바 아닌가. 기술은 이를 위한 하나의 작은 수단, 교육을 이루하는 수많은 요소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교육 현장에서 끊임없이 외치는 기술혁신, AI, 인공지능 등의 단어는 교육 현장의 피로감만 높이고 있다. 마치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면 능력 없는 교사처럼 간주하는 현실에 많은 선생님들이 좌절감 역시 느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여느 선생님 못지않게 여러 가지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 수업이 한창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을 전혀 쓰지 않아도 훨씬 재미있고 훌륭한 수업을 제공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내가 아는 한 역사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기기는 전혀 쓰시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의 목소리, 방대한 역사 지식과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으로 학생들을 사로잡는다. 그런 와중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누구보다 어루만져 주신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역사 강의가 너무나 좋아 선생님을 따르기도 하고 선생님이 좋아 선생님의 강의에 흠뻑 빠져들기도 한다. 교육은 '만남'과 '만남'의 현장이 아니던가. 그럴듯한 AI 코스웨어와 디지털 교과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업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말들이 조금 구식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외관을 지닌 음식점도 맛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교육은 아무리 화려한 기술혁신으로 포장해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3번째 질문에 대한 논의와 함께 글을 마치고 싶다. 나는 사실 이 디지털 선도학교라는 이름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미리 제공 후 수업 시간에 사용하고 학생들에게 사용해 보게 하는 것이 디지털 선도학교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업 혁신을 선도하고 수업 모델을 구축한다는 그럴듯한 말과는 달리 실상은 엄청난 예산을 무작정 학교에 던지고 이것저것 다 써봐! 한 뒤에 당장 내년에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서 사용하라니. 웃긴 사실은 아직도 디벗(학생들에게 배부되는 스마트 기기)을 배부조차 받지 못한 학교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심지어 적어도 3~4월에는 와야 하는 디벗 기기가 11월에나 학교에 도착했다. 이미 학기가 다 끝난 마당에 디지털 수업을 해보라니. 앞선 1,2번 질문과 같은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충분한 기술적, 행정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 명백한데, 이렇게 성급하게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학 시작 전 리더십 팁 연수에서 몇 안 되는 코스웨어 업체 목록들을 살펴보며 교육부와 해당 중소기업 업체들 간의 모종의 계약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불순한 의심마저 들었다. 적어도 강행해야 한다면 시범학교 몇몇 곳에 디지털 교과서를 제공 후 충분히 피드백을 받고 검토한 후 차근차근 확산 시켜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 것이 대다수 교사들의 의견인 것은 아는지.
최근 의대 2천 증원 여파로 교육부에서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I(미완) 학점'을 도입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증원된 대학들 중 대다수가 의평원의 의학 교육 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대입하여 한시적으로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기사도 보았다. 어쩌면 교육부의 2025년 급진적 디지털 교과서 도입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현상이 왜 하필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유행 따라 정책의 입맛 따라 변하는 트렌드가 되어서는 아니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일수록 하나씩 검토하고 천천히 적용해 보며 넓혀가야 하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