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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l 06. 2020

목이 돌아간 청둥오리

1.

지난주에 친구 한 명이 집으로 놀러 왔다. 

이사 온 지는 1년이 넘었는데, 그 친구는 처음 집에 와본 거라 나도 오랜만에 집들이 모드로 간단하게 집을 구경시켜줬다. 친구는 인형이나 피규어에 관심을 갖다가 텔레비전 옆에 있는 나무 청둥오리를 보더니 물었다.


얘네는 왜 목이 돌아가 있어?


그 청둥오리 한 쌍은 남편과 결혼식을 한 후 생긴 것이었다. 폐백 관련한 소품이었다가 집으로 함께 왔는데, 잘은 모르지만 뭔가 길한 기운이 있겠거니 하고 거실 한편에 두었다. 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 가니, 청둥오리도 그만큼 함께 있었을 텐데 그동안 숱하게 봐오면서도 한 번도 목이 돌아간 걸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해본 조치라고는 청둥오리 몸통의 방향을 돌려보는 것인데, 그런다고 목이 돌아올 리 없었다. 나는 멋쩍게 친구한테 대답했다.


원래 이런가 봐


나는 결혼식용 청둥오리는 뭔가 다르게 만드나 싶었다. 


2.

며칠 뒤 남편이랑 거실에서 대화를 하다가 청둥오리를 발견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쟤네 목이 돌아가 있는 거 알고 있었어?


남편은 청둥오리를 몇 초 정도 응시하더니, 손으로 청둥오리의 목 방향을 돌렸다. 오리의 목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나는 그걸 보고 한참을 자지러지게 웃었고, 남편은 넌 역시 참 특이하다는 표정으로 '바보 같아'라고 할 뿐이었다. 


웃음을 멈춘 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꼰대인 건가? 


1) 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2) 누가 문제를 알려줘도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3) 문제의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울 수 있는데!


3.

비건이 된 작가들이 하나같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아무튼 비건>(김한민, 위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넌 한국 사람들이 뭘 믿는다고 생각해?"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데, 친구는 이미 멋진 답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우리가 믿는 건 신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가족, 친구, 학벌, 돈, 부동산, 성공도 아냐.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 '세상은 안 변한다'는 믿음이야. 어차피 나 혼자 애쓴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남들 따라 편하게 적당히 즐기다 가자는 주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문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외면하는 태도, 뭔가 바꿔보려는 사람에게 '네가 얼마나 잘났길래'라며 멸시하는 반응, 모두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 믿음에 기반하는 거야..."
- 40p, 김한민, <아무튼 비건> 중


이 책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이고, 나는 여전히 '비거니즘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고기는 참 맛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뼈를 맞는 충격을 받았다. 굳이 따져보자면 '세상은 안 변한다'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변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문명의 발전을 체감하면서 자란 90년생이어서 그런지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너무 빨리 변하고, 그렇기에 미래를 계획하거나 대비한다는 게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세상이 변하는 방향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가장 고민하게 된 변화는 배송/배달의 보편화와 그로 인한 일회용 쓰레기의 양산이다. 

  작년부터 살기 시작한 집은 신축이다 보니 주변 인프라가 매우 더디게 성장했다. 중형 슈퍼마켓을 가기 위해서 15분을 꼬박 걸어야 했다. 동네 밥집이라고는 김밥 전문 분식점밖에 없는데 한 번 가보고는 맛이 없어서 다시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는 게 크게 불편해진 것도 아니었다. 내 삶의 방식만 '배달형'으로 바꾸면 되었다. 온라인 장보기와 배달음식 주문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일주일도 안되어 분리수거 바구니에 가득 차는 걸 보게 되었다. 

  세상은 변한다. 대다수의 인간에게 싸고 편리한 방향으로. 

  그리고 뒤늦게 어떤 소수가 문제를 제기하며 변화를 시도해도, 세상은 안 변한다.


4.

이렇게 쓰긴 했지만, 다른 분야는 몰라도 '비건'만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분명한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비건을 지향하는 책, 비건 관련 제품, 세계적인 대체육 회사 등의 소식을 듣다 보면 조만간 육식이 소수의 취향이 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번 주에 다녀온 결혼식에서 여전히 변화는 더디다는 걸 체감했다. 고급 호텔에서 치러진 동시 예식(대체로 코스 요리가 서빙되며, 예식장과 밥을 먹는 곳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이었는데, 선택권 없이 먹어야 하는 코스 요리에는 메뉴마다 해산물과 고기가 등장했다. 내가 비건을 지향했다면 먹을 수 있는 게 마지막 디저트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과 식장에 모여있는 300여 명의 사람 중 비건은 하나도 없는 걸까, 궁금했다. 

  비거니즘과는 별개로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익히지 않은 날 음식을 피하고 있다 보니, 먹으면서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었다. 전채 요리로 나온 관자나 전복을 먹으면서 익힌 게 맞는지 고민하거나 옆에 앉은 친구에게 물어봤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내가 무척 예민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메인 요리로 나온 스테이크를 무심코 먹다가 가운데 익히지 않은 부분을 보고 나서는 그만 먹었다. 친구는 서빙하는 분에게 완전히 익혀달라고 부탁해보자고 했지만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은 너무 바빠 보였고, 나의 (상황에 기반한) 취향은 극히 마이너했다. 나만 안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5.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절대 스테이크를 더 구워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청했다고 해도 가능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굳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뷔페식이 아닌 코스요리가 제공되는 결혼식에서 모두가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건, 

과연 목을 돌릴 수 없는 청둥오리였을까. 



목이 돌아온 청둥오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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