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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l 17. 2020

1인칭 인생의 한계

1.

열흘 정도 글을 쓰지 않았다.

딱히 우울하거나, 글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꽤 무난하고 행복하게 지냈다.


지루하고 외로워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더 이상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으니 자연스럽게 멈춰버렸다.


의문스러웠다.

글, 굳이, 왜?


2.

5월 말에 집 근처 프랑스 자수 작업실에서 자수를 배웠다.

자수에 1도 관심이 없었지만 우연히 들어간 작업실에서 잠깐 얘기해본 선생님이 좋았다. 그래도 자수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원데이 클래스부터 들어봤다. 선생님은 폭풍 칭찬을 해줬고 나 역시 하루 배운 실력으로 놓은 수를 보고 뿌듯했다. 

정규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여전히 좋았지만, 자수 숙제는 점점 밀려갔다. 결국 한 달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다행히 선생님과의 인연은 좋게 남았다.


3.

이번에는 선생님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취미를 선택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꾸준히 배우고 싶었지만 번번이 지속하는데 실패한 드로잉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화실은 작년부터 알아놓은 곳이 있었다. 오늘 첫 수업을 들으러 갔다.


첫 수업은 내 예상과 꽤 다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림을 배우러 갔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수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 재료를 쓰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어떤 선택권이 있는지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일단 소묘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도화지 한 장을 이젤에 꽂아주며 연필로 선을 그으라고 했다. 그 뒤에는 구를 그리고 명암을 넣을 거라고 했다.


20분 정도 기계적으로 선을 그으며 생각했다. 

아, 그림 그리기 싫다.


선긋기를 대충 마친 뒤 선생님께 다시 논의를 요청했다. 

선생님은 20분 선긋기만에 마음을 바꾼 나에게 당황하신 것도 같았지만, 차분하게 재료를 골라보라고 하셨다. 나는 예전에 칠하는 게 재밌었던 아크릴을 골랐고, 곧이어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아크릴 물감을 칠했다. 처음 가본 화실은 모든 게 낯설었지만, 조금씩 익숙해졌고 적당히 오늘 분량을 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선생님은, 어떤 걸 그릴지 생각해보고 선택하는 게 중요한 과정이라는 말을 하셨다. 


4.

몇 년째 막연히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커리큘럼은 가르치는 사람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선긋기를 하면서 나는 기초 과정을 감내할 끈기도 없고, 그만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예전에 내가 그림을 배워보려고 시도했던 미대 출신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꼈던 점이다. 내가 그나마 오래 그림을 그렸던 때를 기억해보면 1) 그리기 실력 향상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게 중요했던 경우 2) 다양한 그리기 방식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알려줬던 수업,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그리는 행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멋진 결과물을 동경했을 뿐이라는 걸. 


5.

동경은 행동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정확히 어떤 그림을 동경하는지도 몰랐다. 취미 드로잉 클래스가 많은 온라인 강의 사이트에 들어가 다양한 그림 스타일을 봤다. 어떤 과정이든 예쁘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거다-싶게 끌리는 건 없었다. 

현재의 난, 그리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상태라는 걸 느꼈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림 배우기 역시 프랑스 자수의 전철을 밟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나는 작게 좌절했다. 

고작 취미일 뿐이지만, 고작 취미도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다니. 


6.

20대의 내 선택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흥미'와 '관점'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어떤 걸 시작한 이유는 흥미로워 보여서였다.

그리고 낮은 확률로 오래 흥미를 지속한 어떤 것을 하고 나면 나의 관점이 조금 변해있었다. 

그 일을 하면서 가질 수 있는 관점에 대해 흥미가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뭐가 됐든 지극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인생이었다.

내가 흥미로운 관점이라고 느끼면 장땡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두 가지 키워드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걸 느낀다.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해야 할지, 늙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흥미와 관점이라는 이유만으로 뭔가를 굳이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예전보다 100배 더 노력하거나 흥미로워야 할 것 같다.


내 안에만 머물던 세상이 어떻게든 확장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는 아주 잘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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