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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l 14. 2024

강사님이 오셨다

죽마고우

[파일이 없던데? 너 오는 거 맞지?]

[나 와 있어.]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학교란다. 내가 바쁘대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연락하지 않았단다.

내 친구인 너도 참 특이하구나.


교무톡에 공유를 하고 약간 급한 마음에 액셀을 밟았다. 왠지 내가 빨리 가야 할 것 같았다.


도서관 문을 열었다. 친구가 없다.


"응? 얘 없어요?"


실에 계시던 선생님이 웃으신다. 3층에 뛰어 올라갔다. 인쇄실에서 친구는 열심히 ppt 작업 중이다.


"어~ 영! 왔구나!"


그냥 웃음이 나온다. 저 대사는 내가 해야 맞다. 너의 것이 아니다.


"여기 있었구나. 일찍도 왔네. 내려가자. 내 자리로."

"나 지금 이거 해야 해서 바쁜데."

"내 자리에서 편하게 해."


친구를 데리고 내려와 자리를 내줬다. 나는 나대로 방학식 진행이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A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친구는 쳐다도 안 보고 자기 작업 중이다.


"친구야, 인사는 드려야지? 우리 학교 선생님."

"아, 안녕하세요."


친구의 머리를 붙잡고 옆으로 돌려줬더니 인사를 한다. 옆자리 K 쌤이 한마디 하신다.


"아니, 선생님 강사님을 너무 막 대하시는 거 아니에요?"

"에이, 인사는 해야죠. 그리고 친군데 뭐요."

"아무리 친구라도 여긴 강사님이시잖아요."


친구는 자기 작업에 푹 빠져 있다. 일에 몰두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어제까지 완성해서 우리 학교에 보내 주기로 했던 강의 자료다. 회사일이 갑자기 너무 바빠 밤을 새웠는데도 완성하지 못했단다. 강의 한 시간 전, 그리고 방학식 십 분 전. 진로 특강 담당 선생님께서 친구를 강의할 장소인 음악실로 안내해 달라신다. 강의 세팅 때문이다. 나는 식 진행을 앞두고 마음이 바빴다. 마침 다른 동료 쌤이 오셔서 안내를 부탁드리고 방학식을 준비했다.




"오~ 깔끔하게 진행 잘하더라?"

"봤어?"

"응, 조금. 바빠서 완전히 보진 못했어."


방학식을 마치고 온 내게 친구가 칭찬을 해 준다.


"올라가자. 강사님 일찍 오셔서 강의 시작 시간을 20분 당기신다며."

"응, 물어보시더라고. 가능하다 했지."


함께 음악실로 갔다. 본업인 쇼콜라티에인 친구는 셰프 옷으로 갈아입었고 나는 강의 준비를 도왔다.


"잘해라. 내가 다 떨린다. 방학식보다 더."

"나도 떨려. 이렇게 큰 애들하고 진로 수업은 첨인데."


아이들이 한두 명씩 오기 시작했다. 음악실이 꽉 찼고 나는 자리를 비웠다. 뻘쭘하지 말라고. 그리고 회의가 있었다.




친구가 선물로 준 초콜릿 한 통을 들고 회의에 들어갔다. 함께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회의가 시작됐고 진로 특강 앞부분을 듣고 오신 선생님들로부터  친구의 강의가 내용이 좋다는 얘길 들었다.


회의도 강의도 끝나고 친구는 다시 내 자리에서 급한 업무 삼매경에 빠졌다. 아이들이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과제를 하고 책을 빌리거나 반납한다.


"선생님 이 책들 중에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거 있어요?"

"응, 이거 있어.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갑자기 친구가 고갤 들더니,


"뭐라고?"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악, 선생님 아직 여기 계셨어요?"


"아.. 이런, 쇼콜라티에님이 여기 계셨지. 그래도 이 책 보자.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카카오 농장 어린이 노동자 이야기야."

"흠..."


한숨 쉬는 친구에게 말했다.


"쇼콜라티에님, 저는 이 책을 봤지만, 초콜릿의 달콤함을 압니다."


아이들에게 친구의 초콜릿을 조금씩 나눠주었다. 맛있다고 달콤하다고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친구의 번호를 땄다고 자랑했고 친구네 회사 근처에 가면 연락을 할 거란다. 강의가 재밌었단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학교를 빠져나와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 크는 얘기를 하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얼굴을 본 지 삼 년만인 것 같다. 서로 각자의 일과 가정으로 바빴고 너무나 멀리 살았다.


학교 진로 특강 강사로 친구가 생각났다. 쇼콜라티에는 다소 생소하면서도 아이들이 관심 가질 만한 직업 같았다. 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보였다. 국어 선생님 친구라는 측면도 흥미유발점이었던 듯하다.


덕분에 우리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얘기와 직장 생활 얘기를 했다.


"영아, 어렸을 땐 몰랐는데 네가 되게 예민해. 그래서 더 힘들 거 같아."

"맞아. 내가 예민하지. 나도 어렸을 때는 무던하다 생각했는데 요즘 안 그렇더라고."


고기를 구워 먹은 후 카페에서 각자 자기 일을, 종종 수다 떨며 했다. 우린 오랜 친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를 꿰뚫어 보는 사람, 내 친구. 공백이 무색하다. 오랜 시간 뒤에 잠깐을 봐도 마치 어제 본 듯한 친구.  친구는 그 와중에 방학식 사진을 찍었다며 보내줬다. 남의 학교에 일일 특강 강사로 왔으면서 참 위화감 없이 잘 있었다. 그것도 누구보다 일찍 와서 말이다(10시 강의인데 7시 좀 넘어서 왔단다. 나 신경쓰지 말라고 연락도 안 했다).  멋지다. 특이하다고 면박을 주긴 했지만 진심으로 어디서도 선하게 조화를 이루는 친구가 참 좋았다.


쇼콜라티에로서 인정받고 자기 일을 잘하는 내 친구와 아무 거리낌도 어색함도 불편함도 없이 내 직장에서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괜히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오랜 친구는 언제 봐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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