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선덜랜드” (넷플릭스)

사랑한다면 선덜랜드처럼

by 작가 노을
Sunderland ‘til I die


선덜랜드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봄을 알리는 듯했지만, 끝나지 않는 겨울의 칼바람은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미게 만든다. 어제의 찬란한 영광은 오늘의 어두움을 더욱 짙게 만들었고, 오늘의 어두움은 내일을 볼 수 없게 했다.

<선덜랜드 A.F.C. 의 앰블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더군다나 특정한 이유나 조건이 아니라 원래부터 사랑하기로 작정되어 있었다면, 급변하는 상황과 환경 따위는 애당초 사랑의 자리를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되려 고통과 고난이 압박할수록 사랑은 깊어져 간다.


그들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땀범벅이 되어 하루를 온전히 보낸 노동자가 지금 막 샤워를 끝내고 들이키는 여름날의 시원한 맥주 한 잔의 감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벽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는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을 독대하기도 해야 하며, 가끔은 이유 없이 걷어차이는 길거리에 주인 없는 유기견처럼 서글피 울어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나의 애정은 흔들리지 않는 침대 ‘시몬스’처럼 요지부동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낯선 도시, 선덜랜드와 사랑에 빠지다

영국 북동부 지역의 인구 18만의 소도시. 가난한 노동자들의 향연이 가득한 작은 마을 ‘선더랜드’. 그곳에서의 축구는 가벼운 공놀이나 혹은 진중한 경영자들의 스포츠 매니지먼트(Sports management)가 아니다. 그들에게 축구는 삶 그 자체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선덜랜드 A.F.C 팀을 잘 알지 못한다. 수년 전 한국의 기성용 선수와 지동원 선수가 잠시 동안 몸을 담았다는 사실 외에는 그 팀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관심 조차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죽어도 선덜랜드”라는 축구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소개받게 되었고, 그렇게 낯선 도시와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로 평가받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re League)에 잔류하며 빅 클럽으로써 명성을 떨쳤던 선덜랜드 A.F.C. 거듭되는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2부 리그인 챔피언쉽(Championship)으로 강등이 된다. 넷플릭스에서는 백투백(back to back)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기 위해 2부 리그로 강등된 선덜랜드 팀을 선정하고 리얼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나니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늪지대에 빠진 발을 꺼내기 위해 재빠르게 반대발을 내딛는 순간 더 깊이 빠져버리게 되는 것처럼 선덜랜드는 2부 챔피언쉽(Championship)에서 3부인 리그 원(League 1)으로 2년 연속 강등이 된다. 이로 인하여 구단을 경영해야 하는 구단주를 비롯하여 팀의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감독들이 경질되었으며, 팀 내 핵심 전력으로 자리를 잡은 주축 선수들 역시 구단을 하나둘씩 이탈하게 된다. 말 그대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목표대로 상위 리그로의 승격을 하기 위해 서서 변해야 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추억의 날개를 펼치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의 애칭인 ‘빅버드’에 가면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응원하는 서포터 ‘그랑블루’의 힘찬 함성과 응원소리가 경기장을 온통 뒤덮는다. 고등학생 시절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부리나케 달려가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푸른 머플러를 흔들며 ‘수원 삼성’을 응원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서포터 '그랑블루'>

당시에 K리그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고종수’ 선수가 팀의 상징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수원 블루윙즈의 경기는 언제나 승리를 예감케 했고, 매 시즌이 시작될 때면 우승권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전통의 강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 기업의 재정지원이 끊기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한 팀이 되었다. 팀 성적은 형편없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우승이 아닌 K2리그에 강등되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참사를 매해 거듭하고 있다.


자연스레 팀에 대한 관심과 나의 발걸음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수원 블루윙즈와 나는 자연스러운 이별 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로 인터넷 기사로만 만난다)


변함없는 사랑을 배우다


애정 하는 팀에 대한 발걸음이 멀어졌다해서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그런데 “죽어도 선덜랜드”에 나오는 팬들은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거부했다. 팬들의 살갗에 새긴 ‘SUNDERLAND’라는 단어가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는 '문신'이 아닌 '문심'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축구는 곧 선덜랜드 팬들의 삶이자 인생이다>


선덜랜드의 모든 것이 변해 간다. 구단주도, 감독도, 선수도, 심지어 팀의 분위기와 순위까지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팀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마음과 마음이 모여 사랑이 되고 사랑과 사랑이 모여 열정이 된다. 선덜랜드는 오늘도 지치고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작은 공 하나에 사람들의 사랑이, 도시의 희망이, 그리고 아이들의 꿈이 담겨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그들의 인생의 종착지를 알린다.


'Sunderland, 'til I die'(죽어도 선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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