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 35사단 신병교육대 입영식
024년 5월은 내게 이별의 달이 되었다. 5월 5일엔 언니를 하늘나라로 보냈고 5월 28일엔 우리 둘째를 군대에 보냈다. 물론 언니와의 이별은 영원한 것이고 아들과의 이별은 돌아올 기약이 있는 잠시 동안의 이별이지만 두가지 일 모두 내 마음을 허전하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 5월은 그렇게 정신 없이, 텅 빈 가슴을 부여안고 흘려보냈다.
군에 들어가기 이틀 전 일요일, 집 앞 미용실에서 아들은 머리를 잘랐다. 중고등 6년을 통틀어 미용실에 간 일이 10번도 채 안 될 정도로 우리 둘째는 머리 자르는 걸 싫어해서 덥수룩한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며 문구용 가위로 자신이 머리를 직접 깎으며 지내왔다. 엄마로서 우리 아들 잘 생긴 얼굴이 정리 안 된 긴 머리에 가려지는 게 안타까웠지만 그것도 본인의 스타일이고 개성이니 되도록 잔소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쪽을 택했다. 그랬던 아들이 모든 걸 내려놓은 표정으로 미용실에 앉았다. 아들은 눈을 감고 있다가 잠깐씩 눈을 떠서 조금씩 잘리는 자신의 머리를 확인하며 거울 속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아들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뭐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으로 울컥, 가슴이 아렸다.
큰아들이 군대에 들어가려고 머리를 자를 때에는 남편과 함께 가서 동영상으로 머리 자르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비교적 조용한 둘째의 성격 탓인지 이번엔 그런 수선을 피우지도 못하고 웃으며 아들의 까칠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본인은 서운하고 착잡한 심정이었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드러난 우리 아들의 얼굴이 시원스럽고 잘 생겨서 솔직히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물론 아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함께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5월 28일 화요일, 우리 네 식구는 아침 일찍 전북 임실로 향했다. 우리 두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 기억으로는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다. 조금 막히는 곳도 있고 중간에 휴게소도 한 번 들러 가니 거의 4시간이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임실의 첫 이미지는 정말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아들이 들어갈 35사단 신병교육대의 위치를 대충 파악하고 근처 식당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침도 먹지 않았는데 둘째는 긴장한 탓인지 밥도 평소보다 덜 먹고 화장실 출입도 잦았다. 편의점과 다이소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더 챙겨주고 좀 여유있게 신병교육대로 향했다.
올해 2월 1일 강원도 화천에서 전역한 큰아들은 35사단 신병교육대에 들어서면서 놀람과 감탄을 연발했다. 입구에서 차로 한참을 들어갈 정도로 넓은 규모와 곳곳에 많은 건물들, 그리고 우리가 꽤 일찍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입소식이 진행될 김범수관 앞 운동장에는 앞으로 우리 아들을 포함한 훈련병들이 쓰게 될 물품들을 진열해 보여주었고 가족들이 손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훈련소 2주차에 전달된다는 손편지를 나도 얼른 한 장 썼다. 큰아들이 훈련소 들어갈 때는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이라 입소식은커녕 드라이빙 쓰루처럼 아들을 내려놓고 돌아왔는데 그래도 작은아들은 이렇게 이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준비해간 셀카봉으로 우리 가족 기념 사진을 찍고 한동안 못보게 될 우리 아들의 늠름하고 잘 생긴 모습도 간직하려고 급하게 카메라를 눌렀다. 군인들 몇 분이 김범수관 앞에서 가족들의 기념 촬영을 도와주었다. 요즘 군대는 확실히 딱딱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아들을 맡기는 입장에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드디어 입영식을 거행할 김범수관 안으로 안내되었다. 함께 앉아있던 아들이 앞으로 불려나가고 가족들은 뒤에서 많은 훈련병들 중에 자신의 아들을 찾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게 될 아들이 걱정되면서도 엄마의 품을 떠나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아들의 모습에 우리 아들이 저렇게 많이 컸구나 싶어 뭉클했다. 큰아들과는 달리 키만 컸지 아직 어린아이 같아 항상 마음이 더 쓰였는데 어느새 군인이 되었다니 감개무량이라는 말을 이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30분 정도 입영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함께하는 약 5분 정도의 시간. 아빠, 엄마와 기념 사진을 급하게 찍고 부디 건강하라고, 수료식 때 반갑게 만나자고 마지막 안부를 전했다. 주변에서는 눈물, 콧물 흘리며 아들을 부둥켜안고 찐한 이별을 순간을 나누는 부모들이 많았지만 나는 큰아들을 한 번 군대에 보낸 경험이 있는 터라 비교적 의연하고 쿨하게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들 잘 해낼 거라고 믿으니까 불안과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아들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담담한 표정과 태도로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35사단 신병교육대는 가족들에게 PX를 개방한다. 아들을 맡겨두고 돌아오면서 PX에 들러 술과 마른안주, 생활용품 몇 개를 골라 나왔다. 확실히 가격이 싸다. 차가 막힐까봐 이번엔 급하게 나왔는데 다음 수료식 때에는 좀 일찍 가서 PX에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그때는 제대로 된 쇼핑을 할 수 있으려나...
낯선 곳에 둘째아들을 두고 집으로 가는 길, 우리 아들의 새로운 생활을 응원하는 듯 하늘이 너무 맑고 예뻤다.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집에서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우리 아들이 없는 집은 입영식이 끝나고 2주가 훌쩍 지난 지금도 어색하고 허전하다. 주인 없는 아들방에서 나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잠을 자곤 한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우리 아들은 알려나... 요즘에는 훈련병도 주말마다 1시간씩 핸드폰 사용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들의 목소리를 통해 안부를 전해 들을 수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고 있다는 아들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면 일주일이 편하다.
더 캠프를 통해 일주일에 한 장씩 단체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조금씩 군인이 되어가는 우리 아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하다. 부디 우리 둘째 건강하게 신병교육대 잘 마치고 7월 3일 수료식 때 씩씩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