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가족이 '보통의 가족'으로 무탈하길...
영화 리뷰는 영화 감상 후에 바로 써야 한다. 그래야 생생한 감상평을 쏟아낼 수 있다. 지난 주에 큰아들, 남편과 영화 <보통의 가족>을 보고왔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감상을 남긴다. 남편은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게 봤다며 만족했다. 영화 마니아 큰아들은 아쉬운 면이 없진 않지만(마지막 장면)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나는 러닝 타임 내내 긴장하면서 몰입했다. 지루할 틈 없는 영화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가족이 그런 것 같다. 언뜻 보면 다 그만그만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가족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틀어지고 크고 작은 흠이 나 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고급진 음식이고 서로 매너를 갖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속내를 감추고 서로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가족의 식사 시간은 불편해 보인다.
배우 설경구의 연기는 안심하고 볼 만하다. <박하사탕>의 그 놀라운 연기력은 아니지만 배우로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탄탄하다. 언제부터인가 목소리가 심하게 거칠어진 것 같고 눌려서 뱉어지는 듯한 발성이 살짝 거슬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물질적 욕망을 좇는 변호사 재완. 나이 어린 여자와 재혼해 갓난아이의 재롱을 보는 능력자다. 그리고 고등학생 딸의 아빠다. 돈은 잘 벌어서 남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리지만 돈으로 키운 딸은 실패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뻔뻔한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가 딸에게 인성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 그런데 너무 늦은 것일까.
오랜만에 보는 배우 장동건. 나이 들어도 역시 잘 생겼다. 설경구나 김희애에 비해 자기만의 연기색이 없어서인지 오히려 더 좋았다. 편안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느낌이다. 재규는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환자와 후배들에게 친절한, 나무랄 데 없는 의사다. 아내와 봉사 활동까지 열심이다. 형과는 정반대 캐릭터다. 그런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이라면 좋으련만 자식은 역시 부모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아들 때문에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라면 어땠을까.
우리 남편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는 배우 김희애. 잘난 건 아는데 좀 얄미운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이 영화에서도 역시 자기 역할을 똑 부러지게 해낸다. 김희애스러운 말투, 표정이 좀 과하다 싶을 때도 있는데 이번엔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잘 어울렸는지 거슬리지 않았다. 연경은 성공한 번역가이자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간병하고 아들 교육까지 꼼꼼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이다. 연하 남편 재규에게는 믿음직한 아내였는데 아무리 똑똑한 여자도 자식 문제에서는 이성보다 모성이다. 엄마니까 이해가 되면서도 엄마라서 그러면 안되는 거다.
와우! 예쁘다. 배우 수현은 이 영화에서 비주얼 담당이다. 네 명의 주연 중 가장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몸매와 미모가 단연 돋보였다.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신분 상승에 성공한 지수. 아이까지 낳고 가족의 구성원이 되지만 전처의 딸과는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가족의 문제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제정신인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배우 수현의 연기, 역할 모두 좋았다. 안타깝게도 끝에 가서 가장 많이 울게되는 인물이다.
두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영화 <보통의 가족>은 충격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자식의 모습이 다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믿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자식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로서 어디까지 용서하고 어디까지 벌할 수 있을까. 자식의 문제에서 부모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나. 진짜 자식을 위하는 결정은 무엇일까. 내 자식은 지금 괜찮은 걸까.
'보통의 가족'으로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무탈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형제 관계, 부부 관계, 자식과 부모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집집마다 형편이 다르고 사람마다 욕망도 꿈도 가치관도 다르니 그걸 잘 조절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게 어쩌면 무모한 도전같기도 하다.
영화 <보통의 가족>을 보고나서 우리 집은 그래도 괜찮아 했던 마음이 조금은 불안해졌다. 정말 괜찮은 걸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동생으로서, 누나로서, 그리고 형수로서 잘하고 있는 걸까. 이런 물음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가 좋다. 질문하게 하니 말이다.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나는 우리 가족에게 더 관심 갖고, 더 관찰하고, 결국 더 사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모두의 집안이 평안하길... 모두의 가족이 '보통의 가족'으로 무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