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을 때 내 옆방에는 누가 있을까? 죽음을 대하는 자세
만 스물세 살 큰아들이 좀 예민해졌다. 표정도 좀 어두운 것 같고 말투도 뾰족하다. 원래 둘째에 비해 까칠한 구석이 있는 아들이지만 좀 신경이 쓰였다. 심각한 분위기에서 말하는 건 서로 어색할 테고, 장난스럽게 접근하려니 뻘쭘할 것 같았다. 오직 큰아들을 위해 점심으로 김밥을 쌌다. 김밥 재료를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김발이 없다. 전에 오래돼서 버린 것 같다. 재료를 다 벌려 놓고 얼른 다이소에서 김발을 사왔다. 무슨 날도 아닌데 김밥을 싸서 오뎅국과 함께 다 큰 아들 점심을 먹였다.
영화 마니아 아들이니 영화로 말을 걸기로 했다. 주방에서 김밥을 먹고 있는 아들 곁에서 설거지를 하며 무심하게 말한다. "엄마는 오늘이나 내일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볼까 하는데" 했더니 아니다다를까 걸려 들었다.
"언제?"
"오늘 볼거면 영화공간주안에서 3시 45분 걸로 봐야하고, 너 안 볼거면 엄마 혼자 내일 메가박스에서 오전에 보고 와도 되고"
"오늘 머리 자르려고 미용실 예약해 뒀는데... 시간이 좀 애매하네."
"꼭 보고 싶은 거 아니면 그냥 엄마 혼자 볼게." 한번 튕겨야 맛이다. 그래야 더 안달이 나니까.
"미용실은 오늘 꼭 안 가도 되니까 엄마 괜찮으면 오늘 같이 가고"
"그럼 그럴까? 3시에 출발해서 커피 한 잔씩 사들고 들어가자."
"그래, 좋아."
영화로 말을 거니 대화하기가 편해졌다. 김치 김밥도 맛있게 먹는다. 아들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큰아들과 함께 영화공간주안(평일 관람료 7,000원)에서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봤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물을 흘렸다. 암으로 병실에 누워 있는 마사(틸다 스윈튼)의 모습이 5월에 세상을 떠난 우리 큰언니를 닮았다. 광대가 불룩하고 쇄골 뼈가 도드라졌다. 짧게 자른 머리도 우리 큰언니와 같다. 울언니도 마사처럼 옷을 잘 입었다. 무엇보다 언니처럼 마사도 죽음 앞에서 깔끔하고 의연한 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큰언니가 겹쳐 보였다. 좀더 자주, 오래, 함께 있어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큰언니는 병원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며칠 동안 우리 형제는 물론 자식과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다. 평소 결벽증에 가깝게 깔끔했던 언니는 자신의 몸을 챙길 수 없었다. 머리는 땀에 절어 있고 입에서는 냄새가 풍겼다. 고왔던 얼굴이 같은 암으로 먼저 떠난 아빠와 흡사했다. 이런 저런 줄을 달고 있던 언니의 상태는 의료 기구의 숫자가 말해줬다. 하루는 맥박이 떨어졌다가 또 하루는 혈압이 낮아졌다가 그렇게 모든 게 멈췄다. 마사는 다른 선택을 했다.
마사의 친구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오래 전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절친이다. 나이가 들어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마사는 젊은 시절 종군 기자로 일하면서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지금, 그녀의 곁에는 다정한 남편도 없고 유일한 딸과는 사이가 안 좋은 상태지만 친구 잉그리드가 그녀의 삶을 기억하고 들어준다. 우리 큰언니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다면 좋았겠다 싶었다. 나라도 언니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줄 걸. 아니, 우리 언니는 마사처럼 자기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아니, 어쩌면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말을 못 한 건 아니었을까. 또 쓸데없는 생각이다.
난 과연 잉그리드처럼 죽어가는 친구의 곁에서 함께할 수 있을까? 절친이 없는 내게는 낯선 설정이라 남편을 대입해봤다. 50대가 되었으니 우리 부부도 이제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흔한 암이 우리를 비껴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병든 남편 곁을 내가 지켜야 한다면 나는 잉그리드처럼 의연하게, 상대방이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하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며 돌볼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만 남편의 변함없는 동반자로 옆방(룸 넥스트 도어)에 있어줘야지 마음먹는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고 맘에 들었던 부분은 배우들이 입은 옷의 색감이다. 특히 죽음을 앞둔 미사의 옷은 하나하나 너무 멋졌다. 키 크고 마른 틸다 스윈튼이라 더욱 그랬겠지만 그녀의 패션 감각은 닮고 싶을 정도였다. 죽는 순간에 미사는 화장을 곱게 하고 노란 정장에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햇살 아래 누웠다. 자신이 선택한 죽음이었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이지 않을까. 내 생의 마지막을 상상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상상이 그리 괴롭거나 슬프지 않다. 다행인 건가.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제 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제 부문에 초정되어 황금사자상을 수생했다.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소설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를 원작으로 한단다. 글로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져 있을까 원작 소설이 궁금해졌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보는 영화도 흥미롭다. 미사는 기자였고, 잉그리드는 작가라 둘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도 좋았다.
영화 속에 나왔던 애드워드 호퍼의 그림 <People in the Sun>이 인상깊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게도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이었다. 좋은 영화는 감독의 역량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과 배우, 각본, 음악과 영상 그리고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감독의 선택일 테니까. 영화 마니아 우리 큰아들도 언젠가 자기 역량을 뽐낼 수 있는, 그런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 오겠지. 그 전에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쌓아가는 게 우선이겠지만.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여러 모로 내 취향에, 내 나이에, 내 상황에 잘 맞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