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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Oct 18. 2022

먼저 간 형들

관계가 삶의 질과 생사를 결정한다

3년 전 여름의 어느 날, 사촌 형이 세상을 떠났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형이 스스로 살기를 포기했다. 그보다 세 달쯤 앞선 봄에도 (다른) 사촌 형이 죽었다. 역시 자살이었다.

여름에 죽은 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형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오래 하다 서른셋의 나이에 방향을 틀어 마침내 첫 직장에 들어갔다. 프사에는 회사 엠블럼 등이 걸렸다. 결국 해낸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거다. 그런데 형은 입사 불과 한 달만에 목숨을 끊었다. 상사들로부터 모진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동기간 왕따 등도 있었다고 들었다. 형은 좌절했던 것 같다. 꿈에 그리던 취직을 하면 그간 안고 있던 문제들이 다 해소돼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직장 내 괴롭힘의 벽을 마주했던 것이다. 감정의 낙폭이 컸을 것이다.

봄에 죽은 형은 마흔 살, 미혼이었다. 형은 경쟁관계만 있고 딱히 동료랄 건 없는 직장에서 일했다. 듣기로 새로운 가족을 꾸리지 못했고, 동료도 없고, 친구와는 자주 만나지 못해 외로워했던 것 같다. 안 그래도 평소 말수가 적었고 잘 웃지도 않았던 형이다. 형은 좋은 학교를 나와 남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다. 다 소용이 없었다.

*형들은 꿈에도 가끔 나왔다. 한 명은 (꿈에서) 나랑 무슨 게임을 하다가 지게 되자 "좀 양보해주지... 어차피 난 죽을 건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와이프랑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걸 먹다 보면 형들 생각이 났다. '살아서 여기 왔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생각이 어지러워 일기를 써보기도 했지만 심리상태에 맞는 문장이 써지지가 않았다. 한동안 내 마음이 글이든 말이든 어떤 표현수단으로도 번역되질 않았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문득 20대 초반 서울대에 간 먼 지인의 죽음이 생각났다.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었다. 별로 가깝지 않은 사이였기에 내막은 몰랐다. 당시 쉽게(필터링 없이) 떠오른 생각은 '아이고 서울대까지 가서..'였고 그 다음은 '여자친구를 그렇게 사랑했나' 였다. 먼 지인이었던 만큼 크게 괘념치 않고 지나갔는데, 형들 앞에 그 지인 생각이 난 것이다.

요컨대 형들도 지인도 '누가 됐든 나 힘든 것 좀 알아달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받아서 힘든 나를, 외로운 나를, 헤어져서 괴로운 나를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인간이 관계적 존재라서, 소통하자고, 나 좀 봐달라고 택하는 죽음이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지만,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떠오른다. 누구나 절감하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다. 결국 인간관계와 그에 따른 멘탈관리가 각자 인생의 관건이다. 관계가 삶의 질과 생사를 결정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사건처럼 벌어지고 그것이 먼 사람이었다가 가까운 사람으로 오는 과정은 원근법이 사라진 풍경처럼 낯설고 두렵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앞으로 이런 죽음은 내 곁에서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까운 이들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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