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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5. 2019

시어머니의 며느리 배려법

할머니는 아버지가 아프다는데도 울지 않았다

                                                                                                           

언젠가 고모가 암 수술을 받고 우리 집(내가 아직 결혼하기 전, 본가)에서 일주일 간 요양을 하신 적이 있다. 때문에, 친할머니도 우리 집에 종종 오셨다. 해외에 계셨던 아버지도 그 즈음 휴가를 내고 귀국했다. 때마침 아버지도 몸이 안 좋던 참이었다. 본인의 갈라진 피부를 보여줬다. 혈변을 봤다고도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위궤양이었다.

가족들이 모여 건강 문제로 한탄하며 식사를 하던 중 고모 거취 문제가 불거졌다. 고모가 가정을 꾸리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마땅히 기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먼저 나섰다. 수술 후 절대안정이 필요한 한 달 동안은 오빠(아버지) 집에서 쉬고 가라고 했다. 고모는 "나는 괜찮다"고 했다. 실랑이 끝에 격주로 일주일 씩 머물다 가기로 했다.

                                                                                             

고모 입장에서는 사실 쓸쓸한 본인 집보다 우리 집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언니인 엄마를 배려해야 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고모 마음을 먼저 읽고 실랑이를 벌였다. 그것은 한편, 딸이 안쓰러운 할머니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제일 주목해야할 점은 할머니의 처신이었다. 할머니는 딸과 아들이 투병하는 모습 어느쪽이든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런데 다르게 처신했다. 할머니는 고모의 투병에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우셨지만 아버지의 고생사에는 말씀을 아끼셨다. 엄마에 대한 배려였다. 본인보다 엄마가 더 마음 아파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오래 산 사람의 지혜가 느껴졌다. 성숙한 사랑이 느껴졌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길,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을 따르지만, 성숙한 이들의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을 따른다. 사람은 누구나 커가면서 유년의 무구無垢를 잃지만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이유이며 다 커버린 어른-가족의 사랑이 감명 깊을 수 있는 이유다.

고부 갈등에 대해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 갈등의 케이스마다 해결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고부 양쪽의 배려는 물론,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낀 나(남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안다면 보다 쉽게 갈등이 해결될 것이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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