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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재 Aug 25. 2019

아내가 크리스마스 생일인 나를 배려하는 법

모두에게 특별한 그 날은..

                                                                                                          

나는 30년 전,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 날 낮에 태어났다.
부모님 지인들은 "아들이 성탄절에 태어났으니 길할 운이다"면서 축하해줬다. 신을 믿었던 엄마는 이게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나쁘지 않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커 갈수록 생일이 크리스마스인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 선물을 합쳐서 꼭 하나의 선물만 사주시곤 했다. 그마저도 한창 바빠지는 성당 활동을 하시느라 대충 사주신 경향이 있다. 어느 해 26일, 유치원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창 유행하던) 레고를 받았다"고 자랑했는데, '생일+크리스마스 선물'로도 그걸 못 받았던 나는 서러워서 울었다. 
사람들도 말로는 늘 "생일 축하해"라고 해줬지만 막상 같이 있어주진 않았다. 가족과 혹은 더 소중한 사람과 보내야해서 그랬을것이다. 더 커서는 그날이 항상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날'로 여겨졌던 탓에 크리스마스가 꼭 나만을 위한 날로 기념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날은 '남들에게도 특별한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생일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나는 생일이 다가오면 특별히 뭘 하기보단 마침 그 날이 한 해의 끝자락인 것을 기념해 쓰다만 1년치 일기를 몰아 쓰는걸로 하루를 보내곤했다. 누가 만나자면 만났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모이자' '만나자'고 하진 않았다. '그들에게도 특별한 날'임을 알았기에 애써 날 위해 써달라고 요청하긴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아내가 될 여자를 만났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아내와 함께 보냈다. 물론 이전에도 다른 여자친구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적 있었지만 아내와 보낸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함께 맞은 첫 크리스마스날 "(시)부모님을 찾아뵙자"고 말했다. 본인이 밥솥으로 만든 케잌과 함께. 살면서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을 찾아뵙자"고 말한 사람은 아내가 처음이었다. 일단 놀라웠다. 내가 "왜?"라고 물었더니, "생일엔 그래야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생한 어머니를 찾아봬야 하는거라고. 생각의 전환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만 초점을 맞춰 '생일이 크리스마스인건 이득인걸까 손해인걸까'만 따져왔는데, 아내는 그 너머의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건 동시에 본인을 뺀, 오롯이 나를 위한 기념이었다.

                                                                                               

그 날 엄마의 감동받은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는 무심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웬 여자친구란 애가 자기 아들을 끌고와 억지로 감사의 인사를 시켰으니, 엄마 입장에선 웃기면서도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이 '의식'은 결혼을 하고나서도 계속됐다. 여자친구 시절 상대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시적 제스쳐는 아니었던 셈이다. 

아내에겐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날이 아닌걸까? 그럴리 없다. 천상여자인 아내는 기념일 챙기기를 좋아한다. 아내 입장에서도 크리스마스날 뭘 더 받고, 누가 자기를 즐겁게 해주길 바랄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를 위해 케잌을 만들어줬고 미역국을 끓여줬고, 시부모님을 찾아뵀다. 

올해부터는 일정을 좀 조정하기로했다.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에 찾아가되 당일은 와이프랑 보내려고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내 생일부터는 그래도 조금 의미부여를 해보고자 그렇게 결정했다. '나와 아내를 위한 특별한 날'로 말이다. 아내는 또 다른 나이니 그렇게되면 나를 위한 기념일이라고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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