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5)의 전시인 <박래현, 삼중통역자>는 놀랄 만큼이나 그녀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관람객들 역시 코로나로 인해 전시 사전 예약이 우선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개의치 않은 듯 꾸준히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1943년부터 간암으로 55세에 사망하게 된 1975년까지 제작된 약 40여 점의 작품과 한 편의 아카이브 영상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일제 지배 시기 박래현이 어떻게 작업을 시작했고, 어떻게 표현하였으며, 아내, 엄마, 화가 세 개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박래현의 삶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1920년 일제 치하 시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박래현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미술교사로 부임한 일본인 교사 에구치 게이시로(江口敬四郞)로부터 미술을 권유받고 미술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 도쿄 여자미술 전문학교(현 도쿄 여자미술대학교) 사범학과 일본 화부에 입학한 박래현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전시회도 이런 박래현의 시작을 관람객에게 알리듯 그녀의 초기 작품인 <단장, 1943>를 첫 작품으로 보여준다. 일본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거울을 보며 자신을 단장하는 소녀는 박래현이 일본에 거주할 당시 거주한 하숙집 주인의 딸로 알려져 있다. 소녀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모습은 일제 강점으로 어두운 그녀의 조국이 처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순진무구한 순간이다. 단장하는 소녀의 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은 그녀의 초기작임을 드러내듯 명확한 선, 적(赤)과 흑(黑)의 명확한 색상, 물을 탄 듯한 색감과 같은 일본화에 자주 드러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과의 결혼 후 박래현은 온전히 화가로서의 자신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결혼과 함께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 그녀는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원래 자신의 정체성인 화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시기 대표작인 <창, 1956>과 <고양이, 1961>는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를 통해 화가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박래현의 노력을 볼 수 있다. 두 작품은 수국과 고양이라는 자연물을 초기와 다르게 농담의 변화와 선의 굵기 등을 조절하여 기법의 변화를 준다. 이와 함께 그림 속 소재를 분할하여 마치 여러 파편처럼 나누는 작업 방식은 기존 전통화 기법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나아가고자 한 박래현의 작업 방향을 암시하는 듯하다.
해방과 함께 국내에도 물밀듯이 들어온 추상 회화 기법은 박래현에게도 예술성을 드러낼 새로운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그녀는 타이완, 홍콩, 일본을 돌며 추상화의 물결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추상화 제작에 몰두하며 세계 무대로 눈을 돌리게 된다. 박래현은 1964년과 1965년 남편 김기창과 함께 연 미국 순회 부부전과 세계 여행을 통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멋을 발견한다. 그녀의 새로운 예술성은 ‘띠 추상’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며 작품 속에 드러나게 되는데, 중남미 원주민들이 자주 쓰는 붉은빛과 중국 청동기 도철무늬, 이집트 장신구 등 이국적인 요소를 떠오르게 하는 황색 띠무늬는 강렬한 색감과 역동적인 형태의 결합을 통해 우리에게 생생한 리듬감을 전달한다.
이후 박래현은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석 이후 뉴욕에 거주하며 테피스트리와 판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구한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으며 그녀의 작업 역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박래현은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익힌 동판화 기술을 동양화에 적용하며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가장 먼저 하였고 이와 함께 태피스트리, 서양 작가 이미지와 매체(media)-신문, 광고 전단지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을 선보이며 서양 미술 작가와 대중문화에 대한 그녀의 새로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을 벗어나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작업을 한 박래현은 이미 정해진 기준에서 잘 벗어나지 못했던 당대 한국 미술계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했으며 김기창의 아내라는 그림자에 가려진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작업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55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으며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즐기며 작품에 이를 고스란히 남겨두었고 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증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