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는 체급의 다른 말이잖아.
골프에서 핸디는 게임의 기준이다. 실력을 가늠할 길이 없을 때 우리는 "핸디가 어떻게 돼요?" 묻는다. 보통 자신 있게 본인의 핸디를 밝히진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근 5경기 평균값을 정하면 될 텐데. 늘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건 모든 이의 공통된 심리다.
골프 모임에 오랜만에 나갔다. 살랑살랑 손짓을 거부할 수 있는 골퍼가 어디 있을까. 골프를 최대한 자제하고 육아에 더 집중하겠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다. 아이들이 골프가 좋아? 우리가 좋아?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묻는다면 "당연히 너희들이 좋지. 골프를 다녀오면 더 사랑스러울 것 같아"라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답을 하고 골프를 가고 싶다. 매번 이번만 하고 나가는 골프. 매번 나가도 늘지 않는 골프. 어렵다.
어쩌다 한 번 나가는 골프는 운동 신경, 체력, 정신 상태로 스코어를 줄이지 못한다. 잔디밥이란 게 무시하지 못한다. 잔디도 꾸준히 밟아야 그날 컨디션이 바로 파악된다. 코스, 내 몸, 그린, 스윙 모든 걸 말이다. 글쓰기도 요리도 심지어 걷는 것조차도 꾸준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듯 무언가 다른 게 있다. 그 무언가는 무기가 된다. 내 핸디는 몇 년째 91개로 고정돼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 5경기는 당당히 백돌이에 입성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핸디였다. 운영진에 건의해 보았다. 핸디는 내려가지 않는다는 클럽의 규칙은 불변이란다. '아뿔싸 오늘도 망했다'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편성된 조에 탑승했다. 앗, 동반자의 핸디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핸디가 정체된 건 동반자도 마찬가지지만 나랑 상황이 달랐다. 꾸준히 모임에 나왔던 동반자들에게 정산을 해주고 첫 홀에 들어섰다. 다음 홀에 넘어가기가 무섭다. 내 몸은 첫 홀부터 클럽과 따로 놀았다. 운동의 다른 이름은 혹시 도박인가 싶을 때가 간혹 생긴다. 실력차이를 체급으로 나눌 수 없는 골프에 존재하는 모호한 핸디의 기준이 말썽을 일으킨다. 돈이 오가니깐 더 힘들어진다.
그럴 줄 알았다.
핸디는 결국 상처를 준다.
이겨보겠다는 의지는 지갑에 구멍을 뚫었다.
아, 그땐 정말 몰랐다.
이 정도 핸디라면 희망이 보였다.
절망이 되는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던
난...
바보였다는 걸
골프장을 나서며 깨달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핸디 때문에 싸우지 말자는 다짐. 아마추어일수록 더욱더 정확한 기준의 중요성. 골프를 간다는 설렘과 흥분을 유지하고 좋은 추억만 갖고 돌아가고 싶은 골퍼들은 애매모호한 상황을 연출한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구력의 기간 설정에 따라서도 핸디는 들쭉날쭉하지만 본인 실력이 어디쯤인지 알고 있다. 그럼 지금 내 실력은 어디일까. 최근 내 실력은 과거와 다른가. 감이 아닌 데이터가 말해주지만 우린 데이터를 숨기고 유리한 상황으로 만든다.
최근 5경기 핸디가 체급이다. 오늘은 그간 훈련 덕분에 스윙감까지 좋아서 성적이 월등했다면 겸손하게 말하는 게 예의다. "제가 오늘은 감이 좋은 날이었네요. 제게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다 실력은 핸디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카운트 플레이어
내 핸디를 묻지 마
남몰래
스코어 계산하는 쪼잔함 들킬까
남몰래
주머니 계산하는 옹졸함 들킬까.
혹시나
구원의 동반자 생길까.
변절하는 동반자 보기.
나 역시 보기! 트리플 보기
배판은 당연한 임무
숏홀도 보기
난 더블 보기
역시.
비장한 결심 웃음기 뺀다.
웃지 마 주문을 외운다.
끝내
스코어도 웃지 못한다.
늘 그렇듯 웃지 못한다. 약간의 긴장감을 위해서 내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골퍼들. 명량골프는 필요 없다는 골퍼들이 많다. 난 내기를 하면서도 충분히 명량골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수가 아닌데 정말 그럴까.
저녁 식사자리에서 동반자 선배가 부른다. "애들이랑 빵 사 먹어" 마음이 누그러진다.
오늘 빵값은 받았지만 핸디를 회수하지 못했다. 나는 중량급 선수인데 경량급한테 무참히 깨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