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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맨티킴 Jan 11. 2024

골프 기준점이 없어 수시로 교체하는 드라이버

피팅은 맞춤 정장 같은건데 

피팅.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클럽 교체 비율이 가장 높은 드라이버. 나 역시 드라이버를 너무 많이 바꿔서 셀 수가 없다. 숱한 교체 끝에 클럽을 몸에 맞춰야 한다는 말은 들은 팔랑귀는 곧바로 피팅숍으로 향했었다. 


피팅 채로 라운드 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손에 감긴다고 할까? 헤드가 공을 만난 순간, 손맛에 기절하고 말았다. "아. 이래서 피팅을 하는구나" 맞춤 정장을 입었을 때 내 몸매의 윤곽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과 같았다. 자신감은 허리는 곧게, 어깨는 짝 펼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랄까. 맞춤 정장처럼 피팅 클럽을 입은 것이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고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너에게 약한데. 넌 때려야 하는 히터 스타일이잖아." 한 명, 두 명 참견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러움을 시기한다고 생각해서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가 살찌지 않는 이상 맞춤 옷이 작지 않은 것처럼,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깐. 



어느 순간 거울을 보고 있었다. 주위의 참견은 축적되어 암이 되어 있던 것이다. " 소매가 짧은데. 허리가 너무 짼다. 기장도 길고. " 없는 문제점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 왜 슬라이스가 나지?" "어, 훅이라니" 스윙의 원리는  버린 채 문제 있는 스윙을 해놓고 피팅 탓을 하고 있었다. 


몸은 정직하다. 살이 쪘으면 옷이 안 맞는 게 당연하다. 무릎을 수술했다가 복귀했을 때 클럽 스피는 95마일쯤 나왔다. 클럽 피터는 95마일에 맞는 두미나 오토파워 5X 샤프트를 장착해 줬다. 신체를 고려해서 172 센티의 키에 맞게 길이도 조절해 줬다. 이 클럽은 나를 위한, 나만 칠 수 있는 드라이버로 맞춤 제작된 것이다. 난 아이언 슈트를 입은 것처럼 무기를 장착했고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하루 연습량이 늘고 헤드 스피드가 늘면 샤프트 강도를 높여야죠" 만약에, 연습을 많이 해서 이 채가 낭창거리기 시작하고 구질이 바뀌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답해줬다. 나는 이 답을 귓등으로 들었나 보다. 피팅 클럽을 들고 필드 출동이 잦았다. 물론 연습도 두 배로 늘렸다. 힘이 좋아 히터라 불렸는데 난 스윙어가 되기 원했고 자신의 스윙 스타일을 부정했다. 연습장에서 드라이버 샤프트가 부서져서  두 번째 교체할 때까지도 스윙어라고 믿었다. 정말 부드럽게 친다고 말이다. 


샤프트가 부서진 후로 재밌게 논 장난감이 싫증 나서 버리는 아이처럼 5X 샤프트가 싫어졌다. 뭘 해도 이놈의 샤프트 탓을 했다. 비거리가 안 나오고, 구질이 바뀌어서 OB가 나고, 심지어 레이디 티에 쪼루여도 샤프트를 원망했다. 자신이 게으르고 몸이 불어난 건 모르고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했다. 연습한 만큼 헤드 스피드가 높아지고 있었는데 몰랐었다. 스트레스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달았다. 쳐다보기도 만지기도 싫어졌다. 


그럴 때, 연습장에서 내 장비를 구경하던 선배가 드라이버를 뽑아들었다. 녹슨 칼을 뽑을 때 나는 드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랜 방치로 드라이버는 무뎌졌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선배는 깨끗이 씻어버렸다. "야, 이거 완전 좋다."  이때다 싶어서 선배에게 넘겨 줬다. '나를 위한, 나만의 드라이버'의 특별함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언맨의 슈트라 자부했는데 싫증 난 순간부터  헐겁던 옷을 개운하게 벗어던졌다. 좋다고 할 때 재빨리 넘겨주고 연습장을 빠져나왔다. 선배는 몰랐지만 본인에게 맞는 걸 찾은 것이다. 


또다시 드라이버를 찾아 방랑했다. 동반자의 빨랫줄 궤도를 보고 훔치고 싶다는 흥분,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사고 싶은 구매욕, 프로가 쓰는 클럽을 모조리 검색까지 하는 병이 다시 재발하고 말았다. 신상 샤프트 6S, 7S 구매, 다시 입양 보내는 반복으로 돈과 열정을 엉뚱한데 쏟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후배는 자기를 겸손하게 했다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골프채는 중요하지 않다며 라운딩 일화를 소개해 줬다. 미사일 세트와 편의점에 가는 복장을 입고 나오신 할아버지가 싱글을 치던 그날은 골프  장비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계기였단다. 







중요한 건 비싼 골프 브랜드의 옷과 골프채가 아니란 거다.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것처럼 골프에서 나는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골프채를 피팅 한다면 결과는 좋아진다. 골프채와 나를 믿어야는 데 팔랑귀는 너무도 잘 들려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골프를 흔히 멘탈 스포츠라고 이야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싸워야 할 것은 나 자신인데 너무 많은 장애물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골프는 나 혼자 풀어가는 경기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이 필요하다." 김효주 프로의 말처럼 기준점이 있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장비 욕심에 발동이 걸리지 않을 덴데 그 기준점이 없다. 


엊그제 나처럼 히터 스타일인 후배, 필드에서 드라이버가 부러져서 새것을 들고 왔다. 골프존 스크린에서 평소 헤드 스피드가 73m/s는 거뜬히 때린다. 후배의 드라이버를 쳐보고 또 감동했다. 두미나 6XX였다. 이건 인생 샤프트라며 중고로 입양해버렸다. 내 품에서 떠나지 말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형, 우리는 때려야죠. 힘!" 팔랑귀는 정답이라고 마음이 굳어졌다. 내 기준점은 잘 맞는 날이 오는 그날이다. 내 골프 철학은 수시 변동하고 기준점은 늘 바뀐다. 










방랑


(드라이버 찾아 삼만 리)


얼마나 더

헤매야 품을 수 있을까


철근처럼 무겁게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때때로 안긴다면

가만히 품을 텐데


내 품은 늘 허전해

오늘도 방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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