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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화선 Jan 16. 2024

내가 골프 동호회 구찌 3인방이라고?

골프 예절을 지키자. 

"구찌 가방도 하나 없는데, 뭔 소리 하는 겁니까?"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골프 동호회는 마치 지역 선후배 운동회 같다. 어렸을 때 삼촌은 시골에 내려오면 항상 초등학교에 갔다. 축구공을 앞세워 맥주, 소주,  삼겹살, 대하, 꽃게 등 그동안 먹지 못 해본 사람들처럼 온갖 먹거리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기다린다. 하나 둘 모이면 초등학생처럼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술 취한 친구들로 변한다는 것이다. 


삼십 대 초반까지 나 역시 주말이면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갔다. 축구가 먼저냐? 술이 먼저냐? 가 문제였지만 아주 살짝 땀을 흘리고 훨씬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며 술을 흡수했다. 축구를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나는 선, 후배를 보면 술이 부족하다며 의약품 대신 술병을 들고 운동장에 뛰어갔던 게 생각난다. 



시대가 변하면서 축구, 배드민턴 각종 동호회만큼 골프 동호회도 많아졌다. 코로나19가 일으킨 변화 중 눈에 띄는 생활 스포츠 중 골프 인구 유입이 크다는 걸 각종 지표를 보며 확인하곤 놀랬다. 골프는 식상한다며 이젠 테니스라는 며칠 전 신문도 인상 깊다. 



내가 속한 동호회엔 동네 선후배들과 족구 하면서 발전한 스무  회원이 있다.  벌써 7년 차가 되니 꽤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7년이면 강산이 변할 듯 말 듯 한 시간, 골프인의 스윙은 몇만 번 변할 시간이다. 피니시가 이상하고 뒤땅을 치는 골퍼도 있고, 훅을 치고 드로우를 쳤다고 우기는 골퍼, 산을 보고선 ip를 향해 에이밍을 정조준했다는 사시의 눈을 가진 골퍼, 최장타를 친다며 항상 레이디도 못 가면서도 늘 드라이버를 고집하는 골퍼까지 별 희한한 골퍼들 천지인 곳은 우리 동호회가 단연 으뜸인 것 같다. 아직 다른 동호회에 게스트를 가보지 못했기에 으뜸은 주관적인 내 생각일 뿐이다.



18홀엔 4명씩 들어가지만, 운동이 끝나면 18홀을 복귀하는 19홀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옛날에 삼촌이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그때와 다를 게 없다. 지금은 자리를 이동하고 맛난 음식을 먹는다. 19홀 때문에 골프를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골프가 먼저냐? 술이 먼저냐? 우리에겐 닭이냐 달걀이냐 보다 중요한 문제일 때도 있다. 


어느 날 게스트가 왔다. 게스트에게 회원들 소개하는 데 "우리 모임엔 구찌 3인방이 있어!" 나를 쳐다본다. 깜짝 놀랐다. '내가 왜??" 눈이 휘동 그레졌다. 웃긴 건 회원들 모두 인정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지난 7년을 돌아봤다. 매너가 없었나. 내가 어떤 플레이를 했기에 구찌 3인방이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매일경제 




-스윙할 때 저주파와 고음이 썩인 네 목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스윙이 안된다.


-그건 내가 친 곳으로 볼을 보내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좋은 매너: 동반자가 스윙을 할 땐 조용히 해야 한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른 페인 스튜어트는 "나쁜 매너는 나쁜 스윙보다 더 나쁘다"라고 말했다. 그럼 난 스윙을 하는 동반자에게 나쁜 매너를 보였던 것이다. 




-옷을 왜 갈아입냐?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두 세벌의 옷을 갈아입는 것입니다.


나쁜 매너: 인증샷을 위해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는다.



사진도 많이 찍지만 사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동반자가 불쾌할까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이건 비매너 같지 않다. 






-오늘 몇 개 쳤냐? 


-싱글이죠.


-하여튼 간에 또 속이네.


나쁜 매너:많이 쳤을 경우 타수를 줄여서 말한다. 



동반자들은 내 스코어를 안다. 어느 정도 구력이 되면 상대의 홀 기록을 알 수 있다. 홀아웃을 하면서 늘 '나이스 파'라고 캐디에게 이야기한다. 초반엔 "보기였는데요." 정확히 말하던 캐디도 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긴다. 동반자들도 알고 있다. "거~ 장난이 좀 심한 거 아니요?"라고 말하는 동반자는 없었다. 






-여기 몇 미터야? 캐디 신입이니까 네가 알려줘!


-캐디도 있는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나쁜 매너:캐디 괴롭히기, 야한 농담, 화를 낸다.



항상 6시 30분 같은 구장을 다니던 곳이 있었다. 어느 순간 프런트에서 날 기억해 준다. 000 씨 안녕하세요. 내가 회원이었나 착각이 들었다. 캐디들과 친해졌다. 캐디들은 우리 팀에 들어오려고 순번을 바꾼다. "고객님 같은 사람들만 온다면 놀다 가는 거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동호회 모임 때였다. 신입 캐디가 들어왔다. 거리 측정기를 들고 있는 내가 쫓아다니며 선배들 거리를 찍어줬다. "형님들 애지 간하면 말뚝 거리로 계산하세요" 절대 캐디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문명의 발달이 때론 피곤하다. 말뚝을 읽지 못하는 신입 캐디와 초보들이 힘들게 한다.




-여기 드롭 구간인데 좋은 데서 쳐.


-괜찮아요. 어려워도 이런 볼을 쳐야 실력이 늘죠.


좋은 매너:드롭을 할 때 최대한 좋은 곳으로 멀리 던진다.



유혹이 큰 건 사실이다. 좋은 곳에서 쳐도 잘 안 되는 게 골프인데 너무 어려운 상황은 짜증 난다. 동반자가 좋은 곳에서 치라고 말만 하지 던져주지는 않는다. 골프는 심판이 없다.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다. 내 양심에 맡겨야 한다. 난 어떻게 했지. 





-다음엔 꼭 치마 입고 와라. 


-아니요. 여기서 쳐도 보기로 막으면 훌륭하죠.


나쁜 매너:티샷이 잘 안 맞으면 '한 번만 다시 칠게'라고 말한다.



멀리건은 없다. 날 보고 드라이버 입스라고 말한다. 아마추어도 입스가 있나?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질릴 정도로 두렵다. 공이 맞지 않는다. 정말 레이디 티에 공이 많이 간다.



 "치마 입고 와 그럼 멀리건 한 개씩은 줄 테니깐" 동반자들이 약을 올린다. 근데 두 번 쳐도 똑같다. 최대한 세 번에 그린에 간다는 작전을 짠다. 추접스럽게 '한 번만' 구걸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운 백돌이 가 더 멋있다. 애원하는 보기 맨이 되고 싶지 않다.




골프 그까짓 게 뭐라고 동반자 구찌 하면서 나만 잘 치고 싶을까?

골프란 게 늘 잘 되는 게 아니다.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즐겁게 놀다 올 수 있는 운동이다.

어찌 보면 골프 동호회 구찌 3인방은 영광스러운 칭호가 아닐까 착각이 든다.


착각 

1. 나 때문에 즐거웠겠지? 

2. 다음에 또 함께 하고 싶은 거 맞지?

3. 골프 하면서 배울 게 많네!

4. 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야!

5. 저 친구 공 잘 치네.

6. 매너가 훌륭해. 잘 배웠네.

7. 구찌처럼 명품 스윙 소유자인가?

나는 정말 구찌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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