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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돌이 Aug 25. 2022

<헤어질 결심>: 그는 그녀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1. <헤어질 결심>은 지난 몇 년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영화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 영화가 내재한 생기의 근거는 서사를 풀어내는 독특한 방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 몇 해 동안 극장에서의 기억을 되돌렸을 때, 영화가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도 무방할 것이다. 한 번쯤은 본 듯한 모티브 속에서 휘몰아치는 이미지를 덧붙이는 블록버스터 영화, 혹은 서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흔히 감각적이라 불리는 이미지를 통해 관객을 매혹시키는 예술 영화들. 도식적인 분류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영화는 이 범주를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이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 이 시기를 서사가 종말 된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해 <헤어질 결심>은 서사가 종말 된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금 이야기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영화이다. 멜로라는 장르로 포장된 것처럼 보이는 그 영화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사건 속에서 끊임없이 변곡점을 형성한다. 영화는 일종의 치정극과 같은 형태를 취하다가도 살인 사건에 대한 내막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추리극의 형태로 변이한다. 다만 여기에서 변이란 단지 장르의 혼융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두 개의 장르가 끊임없이 힘을 겨루면서, 예측 불가능한 서사를 형성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더불어 이 변이는 단발적인 현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몇 차례 반복된다. 다만 이 과정을 거쳐 <헤어질 결심>이 마무리될 즈음 남겨지는 것은 서래의 죽음과 함께 영화에 각인된 황홀함과 신비로움뿐이다.



2. 서래의 죽음 이후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느껴진 첫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파도에 휩쓸려 죽음과 조우하게 될 서래의 이미지는 분명 황홀경이었지만, 그 감정의 원천에 대한 설명할 수 없었다. 크레딧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견자가 되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 내재한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분명하지만, 이는 <헤어질 결심>의 예측 불가능한 서사로부터 시작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는 멜로와 추리극이라는 두 개의 장르가 벌이고, 추리극이 내재한 수수께끼는 서래와 해준(박해일) 사이에서 촉발된 사랑을 베일 속으로 감춘다. 그들은 연인임과 동시에 형사와 용의자의 관계를 취하고, 사건에 대한 내막이 파헤쳐질수록 두 사람 관계에서 촉발된 사랑은 불확실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서래의 거짓된 진술이 반복되고 그 사랑의 균열은 점점 깊어진다. 더불어 그녀는 미스테리와 신비로움을 풍기는 존재로 변이한다. 그녀가 내재한 신비로움이 짙어질수록 그들 사이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헤어질 결심>의 서사는 예측 불가능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예기치 못한 공간에서 마저 유령처럼 해준의 곁을 맴돌고,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밝혀질 때마다 영화는 매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서래가 내재한 신비로움과 그녀의 거짓된 진술이 예측 불가능성의 역량을 만들어낸 가장 명확한 지점은 전 남편의 살해에 대한 알리바이를 규명하는 순간일 것이다. 박찬욱은 전작인 <아가씨>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과거의 사건에 대한 내막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리플레이라는 기법을 선택한다. 다만 <헤어질 결심>에서 사용된 리플레이는 전작과 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가씨>는 영화의 결말에 도달할 무렵 단지 서사의 반전과 극적 효과를 위해 리플레이라는 방식을 이용한다. 어쩌면 그 영화에서 리플레이라는 방식은 기능적인 것 그 이상의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에 반해 <헤어질 결심>은 리플레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녀가 숨긴 비밀의 내막을 들춰내고, 더 나아가 그 영화의 심연이라고 할 수 있는 파국적인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이는 <헤어질 결심>의 예측 불가능한 서사가 도달하는 결실로, 그 영화가 내재한 황홀감의 원천일 것이다.



3. 다만 그 사랑에 얽힌 당사자를 붕괴시키고, 그들을 죽음으로 끌어당기는 타나토스적인 그 사랑이 어떻게 <헤어질 결심>에 황홀감을 각인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또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 영화에서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주체는 해준이 아니라, 파도에 파묻혀 잔상만이 남겨지게 될 서래의 존재이다. 해준 또한 관객과 다름없이 그녀가 풍기는 신비로움에 매혹된 존재로,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의 존재란 숭고함을 내재한 특별한 대상일 것이다. 


그 숭고함의 시작은 그녀가 해준을 사랑하는 특별한 방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서래에게 있어 사랑은 영원한 기억을 새김으로써, 일종의 죽음 충동을 동반하는 자기 파괴적인 형태를 취한다. 서래와 해준의 관계에 있어,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택하는 것은 파도에 파묻혀 자신의 신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방식이자,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이다. 그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사랑을 택함으로써, 해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각인시킨다. 이에 반해 해준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불안감을 내재한다. 실상 ‘자신을 붕괴시키는 사랑’에 대해 언급한 당사자는 해준이었지만, 영화의 결말 무렵 그는 자신의 그 고백을 완전히 망각해버린다. 서래는 그의 고백을 수없이 플레이백하며 그와의 기억에 끊임없이 생기를 부여하지만, 해주에게 그 기억은 잊혀져야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그 사랑은 신비로움과 충동에 의한 일시적은 감정은 아니었을까. 


석연치 않은 구석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종의 시각적 기호에 따른 추론이긴 하나, 그는 유독 눈에 안약을 넣는 습관을 반복한다. 이는 눈앞에 펼쳐진 사건을 명확하게 바라보겠다는 그의 의식일 수도 있을 것이고, 더불어 인위적인 감정을 그의 마스크에 투여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전자건 후자건 안약을 넣는 그 행위는 그의 직접적인 충동과 욕망을 위한 제스처로 수렴된다. 그는 안약을 넣고 살인 사건의 현장을 살폈을 때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 서래를 향한 욕망을 향했으며, 이때 안약을 넣는다는 행위는 인위적인 감정을 그의 얼굴에 투여하는 행위일 것이다. 이를 돌이켜봤을 때, 영화가 끝날 무렵 안약에 젖은 슬픈 눈으로 서래의 행방을 찾는 그의 모습을 믿는 것은 쉽지 않다. 그 행위는 자신의 충동에 대한 후회로부터 기인한 것이지 결코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남겨진 것은 서래가 내재한 숭고함으로부터 비롯된 황홀함과 신비로움뿐이다. 휘몰아치는 파도에 신체를 소멸하는 그녀의 형상은 마치 유령이 되고, 영원한 사랑을 영화에 각인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서래의 그 모습은 여성 캐릭터에 몰두하는 박찬욱 이전의 어떤 영화보다도 관객을 매혹시켰음이 분명하다. 서래의 존재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 캐릭터보다도 특별함을 내재한다. 이전까지 그의 영화에서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종의 성애적인 대상이 되어야만 했고, 이로 인해 섹스란 행위의 피사체로써 카메라의 앞에 노출된다. 이에 반해 <헤어질 결심>으 서래를 묘사하는데 있어 섹스란 행위를 배제시키고, 더불어 그녀의 신체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을 택한다. 아마도 이는 그녀의 타나토스적인 사랑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임과 동시에, 그녀가 풍기는 황홀함의 원천일 것이다. 성애적인 것 너머에서 신체를 상실한 그녀의 사랑은 초월적 존재가 되어 영원한 각인을 새기고, 이는 다른 어떤 사랑보다 아름다움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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