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22. 1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뭡니까?” 방송작가라는 직업상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사실 나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세상엔 필력이 뛰어난 문장가가 많다. 글을 잘 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글을 잘 쓴다고 방송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아이템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고, 현장을 알아야 하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필자는 글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일명 ‘글로 생활자’다. 명문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글 밥을 먹으며 터득한 글쓰기 비결을 꼽으라면 먼저, 질보단 양이다. 아무리 글재주가 뛰어나다 한들 많이 쓰는 사람을 이겨낼 순 없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살아있는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글보단 현장에 답이 있다는 건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청(傾聽)’. 잘 듣는 것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일방적인 글쓰기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학창 시절부터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즐겼다. 워낙 말주변이 없을뿐더러 소극적인 성격 탓에 교실에선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외톨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엔 늘 친구가 모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고민과 사소한 비밀을 털어놨다. 단지 잘 들어줬을 뿐인데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위로를 받았다. 학창 시절 터득한 소소한 듣기능력은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특성화됐다. 방송작가는 대부분 전화기를 붙들고 산다. 일면식 없는 패널과 전화기가 뜨거워질 정도로 오랜 시간 통화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죠!”, “정말요?”, “왜 그럴까요?” 진정성 있는 추임새는 공감을 끌어내고, 섭외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대화, 인터뷰 속에서 핵심을 찾아내고 정리만 잘해도 좋은 글이 된다. 듣기는 쓰기의 기본이자, 소통을 위한 필수 덕목이다.
지난해 KBS 창원방송총국에서 ‘경남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다’라는 취지의 특집 토크콘서트 ‘경청’을 제작했다. 청년들이 발언할 기회와 시간을 늘리기 위한 비책으로 모래시계 소품도 동원됐다. 덕분에 수도권 이탈을 막기 위한 경남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길 수 있었다. 방송에서 듣기능력은 진행자와 패널, 작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특히, 선거 방송에서 듣기능력은 후보자의 토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진행자가 던진 질문을 잘 듣고 요점을 파악해 답변해야 함은 기본이오. 상대 후보자의 말을 잘 듣고 날카롭게 반론을 제기하는 것 또한 후보자의 자질이다. 그런데 간혹 ‘주도권 토론’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주도권을 쥔 후보가 본인의 공약만 열거하다 상대 후보에게 구색 갖추기 질문 하나 던지고 끝내는 형태가 그러하다. 그것 또한 나름대로 선거 전략일 수 있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유권자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배려와 소통이 배제된 일방적인 말하기 역시 폭력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국어로 통합됐지만,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 중에 ‘듣기·말하기’란 과목이 있었다. 교과 도입 취지와 달리 어떻게 듣느냐보다 어떻게 말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덕분에 동네엔 웅변학원이 성행했고, 새 학기 반장 선거철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남동생이 이 구절을 앵무새처럼 외웠던 기억이 난다. 말만 번지르르 잘하는 사람은 결코 마음을 얻지 못한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 역시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청득심(以聽得心)’ 마음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귀 기울여 듣는 것. 곧 경청(傾聽)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