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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Sep 02. 2020

해루질을 통한 뜻밖의 자아성찰

나를 발견하는 시간


올해 6월은 나의 4년간 엄마 경력 중에 가장 힘들었던 달로 기억된다.


낮까지 잘 놀던 딸아이가 저녁부터 고열이 났다.

해열제로도 잡히지 않는 열은 아데노 바이러스 이후로 처음이라 바짝 긴장이 되었다.  날이 밝자마자 동네 병원에 문을 두드렸고  결국에는 입원을 했다.

3박 4일의 기간 동안 각종 검사를 했지만 열은 잡히지 않았고 원인도 찾지 못해 결국 대학병원으로 갔다.

고열이 나서 코로나 검사까지 한 뒤에야 입원을 할 수 있었다.

대학병원의 분위기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고,

잠을 이룰 때 가끔 들려오는 '코드블루'라는 단어는 불안한 나를 더욱 웅크리게 만들었다.


아이의 병명을 알기 전까지 나의 입술은 점점 말라갔고 몸도 마음도 메말라가고 있었다.

혹시나 신이 노할 만큼 잘 못한 일은 없는지, 그동안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괜히 나를 할퀴고 있었다. 

다행히 방사선 동위원소 검사를 통해 신우신염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치료를 통해 점점 열이 나는 간격이 길어지면서 이내 완치되어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주하는 일상들이 얼마나 감사하게 느껴지던지

나의 일상들을 하나하나 만져주고 싶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나의 일상을 다시 쌓으니 생활패턴이 어느 정도 잡혔고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가장 먼저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

무엇보다 자연의 위로가 필요했다.

자연으로 가서 숨이라도 한번 크게 마시고 싶었다.

왜 사람들이 힘이 들 때 자연의 품을 찾는지 알  같았다.


예쁜 해수욕장은 사람이 많을 것 같미리 전화를 해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한 갯벌을 택했다.


그래서 뜬금없이 시작한 생애 첫 해루질.


갯벌을 떠올리면 고단함, 씻기 번거로움, 귀찮은 해감 등등 피곤한 생각들이 가장 먼저 들었는데,

막상 해 본 해루질은 나에게 엄청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해루질의 고단함, 씻기 번거로움, 귀찮은 해감에 대한 나의 예상은 적중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성취감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질퍽한 모래들 사이로 손을 휘젓다가 순간 만져지는 조개를 발견했을 때의 쾌감이란! 반들반들한 촉감은 오래도록 머리와 손가락에 각인되었다.

철퍼덕 주저앉아 조개를 잡는 순간만큼은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옆에서 같이 조개를 캐던 아이도 잊게 만들었다.


낚시를 해본 적은 없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낚시에 중독되는지 알 것 같았다.  난생처음 느껴본 손맛은 그다음 날도 그다음 주도 나를 갯벌로 인도해주었다. (7월 한 달 동안 다양한 갯벌에 네 번이나 신나게 발도장 찍다가 아이의 탈수 증상이 보이자 멈출 수 있었다.)



갯벌로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온날도 있었다.

흐린 날씨라 걱정했지만 우비도 판다는 어촌계 할머님의 말씀에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나의 해루질에 대한 열망은 그토록 강렬한 것이었다.


조개가 많이 있는 곳을 향해 아이의 손을 잡고선 씩씩하게 걸어갔다. 시선은 울퉁불퉁 굴곡진 갯벌을 향해 있었다.  굴곡진 갯벌을 보니 꼭 우리네 인생 같았다.


파도 없는 바다 없듯이 굴곡 없는 인생이 있을까.

저마다 정도와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각자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는구나 생각하며 오늘 나에게 잡힐 조개들에게 예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잡은 동죽과 백합은 집으로 돌아와서 해감해서

그다음 날 조개탕, 조개 미역국, 조개전 열심히도 요리해서 먹었다. 



해루질을 다녀온 날이면, 이상하게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맑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사실은


나는 생산성 있는 활동을 좋아한다는 것

(보상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

성취욕이 높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한다는 것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은 끝까지 안 하는 성향도...)


고로, 나의 입에 늘 붙어 다니던

시간이 없다는 말,

피곤해서 못한다는 말,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은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결핍되어 있었던 나의 감정의 실체가 윤곽이 잡혔다. 


육아와 살림은 생산성 있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생산적으로, 효율적으로, 성취감을 느끼면서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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