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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 Oct 17. 2024

Ep.02 대학 입학 전까지

나를 조각하자

"어제의 나를 한 단계 뛰어넘는 느낌"


 고등학교 때, 정말 악바리로 이를 갈며 공부했다. 특히 1학년 때는 더욱 그랬다. 자사고는 당연히 간다며 큰소리를 떵떵 치던 내가 지원한 고등학교에 죄다 떨어지고 결국 일반고에 입학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지만 모두가 비웃는 것 같았다. 무능한 나를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는지, 진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그 와중에 생기부를 챙기겠다며 생기부 시즌이 되면 매 쉬는 시간 교무실을 들쑤시고 다녔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학원을 바꾸기도 하고, 학원을 그만두고 인강을 듣기도 했다. 생기부를 챙긴답시고 막상 공부는 못 하고 있는 나와 이 현실이 고약했다. 내실은 없는데 포장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있으니, 아득바득 한 줄이라도 더 적히려고 뛰어다니다가도 힘이 풀리고 자괴감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던 중, 나에게 나름의 터닝 포인트였던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수학에 자신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차라리 오랫동안 공부한 국어 모의고사나 영어 모의고사 정도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고2 겨울방학, 친구와 함께 매일같이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이 때는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거의 수학만 공부했고, 인강을 보고 또 보고, 교과서를 보고 또 보며 기초를 다시 쌓고 토대를 다시 쌓으려고 애썼다. 문제를 보고 관련 개념을 줄줄 읊을 정도로 공부했고, 문제를 많이 풀기보다는 한 문제를 오래오래 분석하고 공부하며 내가 얻어낼 수 있는 내용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한 달 남짓한 방학이 끝날 때쯤,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중, 이게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이 때, 내가 나를 인정했을 것이다. 수고했다고, 이제 한 단계를 올라왔다고. 


 이후에도, 하루 종일 공부하고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깎아내리고 하는 일상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2 겨울방학 때의 경험 때문에 수학 모의고사에서만큼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한 단계 넘었다는 느낌, ‘됐다’는 느낌은 그 정도로 나에게 강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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