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각하자
"시작은 미약했지만..."
양자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잡은 것의 시작은, 다음 노벨상의 연구 주제를 짐작해 보는 학교 대회였다. 팀으로 참가했는데, 아이디어야 나와라 하고 머리를 같이 쥐어뜯다가 친구가 웬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그게 양자컴퓨터를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 했지만, 개 멋있어 보였다. 이해할 수도 없는 개념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만들면 암호 체제를 바꿔야 하고 세상이 뒤집힌단다.
그 대회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양자역학을 공부했다. 지금도 어려운 양자역학은 그때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이때,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니었다. 사소한 일이었다. 그걸로 어떻게 밥을 벌어먹고살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은 것이었고, 내가 거기에 재능이 있는가는 더더욱 고민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고3이 되었다. 고2 1학기 때 내신을 한다고 공부를 좀 했던 터라 고2 초반에는 나쁘지 않았던 물리 모의고사 성적이 5를 찍고 있었다. 고3 초반에는 모의고사 측면에서 국어, 수학, 영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과탐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리도 수학처럼 인강을 듣고 한 문제를 여러 방향으로 푸는 연습을 하자 점수가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는 기분 좋은 경험은 ‘물리가 나한테 맞나?’하는 어렴풋한 의문을 ‘물리가 나한테 맞네’라는 선명한 확신으로 바꿔 주기에 충분했다.
여담으로, 고2 때는 특수 상대성 이론 인강을 듣다가 울기도 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강 강사님이 설명을 잘해 주신 덕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양자컴퓨터 개발의 꿈을 안고,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