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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매니저Y Nov 25. 2022

소년과 通하였노라

대화의 희열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는 나지만, 의외로 두통으로 시달린 적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지난주 야구소년의 갑작스러운 4일간의 휴가에 너무 들떠서 갑자기 떠난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예상보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3일이 넘도록 두통에 시달리는 중이다.

야구소년의 갑작스러운 훈련시간 단축으로 갑작스레 평일 저녁을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일주일 가까이 시달리는 두통 때문에 맛있는 집밥을 해줄 수가 없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집밥보다 배달 음식을 더 좋아하긴 하지..


둘째 셋째는 노란 김밥 떡볶이와 김밥 그리고 순대

첫째는 족발이 먹고 싶단다.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어 남편에게 SOS를 쳤고, 맛있는 족발이 식탁에 차려졌다.


축구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야구소년은 요즘 축구 이야기가 그저 흥미롭다.

어쩐지 오늘은 아이의 축구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나온다.


아이의 눈과 몸이 나를 향한다.

나도 내 귀와 눈과 몸이 아이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잠시 두통이 사라진 듯하다. 


자연스럽게 진학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아이로부터 나오는 말에는 나이답지 않은 힘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매우 확고하다. 

그래서 아이의 말에 설득당하거나 부끄러워 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라는 권위가 저절로 내려놓아진다. 


엄마가 생각하는 작금의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다. 

예전 같으면 어른들만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감히 나눌 생각을 못했을 이야기들도 오고 간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 만났던 A 코치님에 대한 얘기를 할 때 표정이 무척 밝다.

아이는 그 코치님이 계신 곳으로 진학을 원한다.

가능하다면 아이를 그분께 맡기고 싶다. 현실은 냉혹하다. 

아이에게 야구로 그 코치님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가 정말 존경하는 스승이라면 때가 되면 안부를 묻고, 어려움이 있을 때 의논을 하는 상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일러주었다. 

한 시간이 넘게 야구소년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갔다.


엄마도 그 코치님 너무 좋았어.

그런데 그 코치님은 왜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으셨을까? 

세상에는 내가 좋아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나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그 코치님은 그분의 실력에 힘을 실어줄 멘토를 만나지 못해서,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지 못하셨을지도 몰라. 

참 안타깝지만 생각보다 그런 일은 많이 일어나. 

그래서 엄마는 네가 00 학교로 진학을 했으면 좋겠어.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기회와 가능성의 확률이 조금 더 높거든.


사실은 나보다 아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로부터 듣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이가 알아도 되는 어른들의 야이 기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음이 새삼 감사하다. 


"이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이제 좀 알겠어요."


본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겠다고 했다. 

아이에게 선택을 하게 하고 싶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

행여나 아이의 선택이 나와 같기를 바라고 하는 말이 강요처럼 들릴까봐

조심스러웠고, 말을 아끼는 중이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대화는 결코 아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생산적인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마운 시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



언제나 너의 행복 야구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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