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아닌 함께 듣는 공간 음향이란?
앞선 글에서 공간 음향을 듣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중심으로 360도 방향에서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이야기드렸습니다.
그러면 과연 공연장에도 공간 음향 혹은 실감음향이 필요할까요?
어쩌면 공연장 그 자체가 이미 살아있는 '경험'이기 때문에 굳이 그곳에서 실감음향이라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 공간 음향 혹은 실감음향이라는 용어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큰 차이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프로페셔널 음향 분야에서는 ‘공간 음향(Spatial Audio)’ 보다 ‘실감음향(Immersive Sound)’라는 용어가 보다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후에는 ‘실감음향’으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관객으로부터 360도 방향으로 들리는 사운드를 '서라운드'라고 이해하고 계시죠. 또, 일반적으로 ‘서라운드’라고 하면 영화관에서 느낄 수 있는 후면과 측면 스피커를 통한 효과음을 주로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관은 매우 높은 흡음률의 벽과 천정의 공간을 만들고 정면뿐 아니라 옆과 뒤쪽에 여러 개의 스피커를 사용해 정면 이외 방향의 소리를 전달합니다. 되는데 이러한 방법은 영상의 각 장면에서 표현하려는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공간감을 전달하는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사실 공연장에서 ‘서라운드’를 구현하려는 노력은 제법 많은 이들에 의해 시도되어 왔습니다.
대중음악 공연이면서 다채널 실감음향 방식을 처음 시도한 아티스트는 영국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였습니다. 무려 1967년 ‘Games of Mary’ 공연에서 4 채널의 스피커 시스템으로 네 방향의 사운드를 통해 공간감을 전달하려는 시도를 했었죠.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핑크 플로이드 또는 핑크 플로이드 출신의 로저 워터스(Roger Waters)의 공연에서 그러한 시도를 종종 해왔고 실제 저도 로저 워터스의 내한공연-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있었던-에서 서라운드 포맷의 공연 효과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가수로는 가수 이승철 씨가 본인의 투어 콘서트에 서라운드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죠.
공연에 실감음향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인 뮤지션으로는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를 꼽을 수 있는데 독일과 호주의 공연에서 3D 영상과 실감음향을 함께 사용해서 입체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뮤지컬에서는 예전부터 서라운드 스피커 또는 효과 스피커(effect speaker)를 통해서 극의 진행에 따른 측면/후면 효과음을 전달하거나 공간감을 표현하는 것이 많이 보편화되었죠.
하지만 여전히 지금까지의 공연 현장은 ‘서라운드’를 보조적인 수단 정도로 간주했고 대부분의 공연 관계자들의 인식도 그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뮤지컬 또는 연극에서 활발하게 적용되는 이유는 무대에서 연기가 펼쳐지는 ‘공간’의 변화와 극 중 상황에 따라 공간감과 방향감을 지닌 효과음의 전달이 공연의 진행에 요긴하게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공연장은 그 자체가 ‘현장’ 이기 때문에 공연장에서의 사운드, 특히 라이브 콘서트의 경우 스테레오 확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되어 왔고, 최근까지도 기본적인 L-R 또는 L-C-R 시스템으로 어떻게 하면 전체 객석에 고른 음량과 적절한 믹스 밸런스의 사운드를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공연장에서 ‘스테레오’의 한계
우리가 일반적으로 듣는 ‘스테레오’ 포맷의 음악 믹스는 헤드폰 또는 룸에서 스피커를 통해 청취하는 경우 불편함 없이 적절한 정위감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는 조금 상황이 다릅니다.
보편적인 공연장에서는 무대 좌우로 스피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고 이를 통해 대부분의 객석에 음성이 전달됩니다. 스테레오로 믹스된 음성을 우리가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1) 좌우 채널의 소리가 우리의 좌/우 귀에 각각 비슷한 음량으로 전달되어야 하고, 2) 두 신호의 시간 차이가 매우 작아야 합니다. 그래야 스테레오 믹싱의 정위감을 느낄 수 있죠.
그러나 공연장의 좌석 중 상당수에서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공연장에서 스테레오를 느낄 수 있는 객석의 범위는 작게는 20% 내외에서 많이 잡아야 30-4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장에서 스테레오 음악을 재생해 놓고 객석을 오가며 음향테스트를 하다 보면 객석의 중앙에서는 좋은 스테레오 밸런스를 들을 수 있지만 몇 걸음만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이동하면 한 순간 소리의 음상이 휙하고 가까운 스피커 시스템 쪽으로 쏠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귀는 두 음원 사이의 일정 범위의 시간 차이가 크기의 차이로 치환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두 스피커 사이의 거리 차이가 조금만 커져도 실제 음량이 같아도 가까운 쪽의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에서 스피커가 무대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이유는 스피커가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무대에 가깝게 배치되어야 무대로부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우리가 듣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전달되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는 가수의 무대 위 위치에서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피커가 무대 바깥에 있기 때문에 객석에 따라서 무대 위 퍼포머의 시각적 위치와 실제 전달되는 소리의 음상은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고 무대와 가까운 객석의 경우 그 차이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리얼리티가 중요한 뮤지컬 장르의 경우 무대 중앙 상단에 센터 스피커(center speaker)를 설치하고, 무대 앞 전면에 프런트 필 또는 에이프런 스피커를 사용해 무대 중앙에 가까운 객석에서 시각과 청각 방향의 불일치를 보정해주지만 이 역시도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 다목적 공연장에서 서라운드 스피커의 역할
영화 상영과 공연장 운영을 겸하는 다목적 공연장의 경우 측면 벽과 후면에 서라운드 스피커가 설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영화를 위해 설치된 5.1 채널 또는 7.1 채널 방식의 서라운드 시스템의 경우 한쪽 측면의 여러 스피커는 모두 같은 서라운드 채널의 소리를 전달하기 때문에 소리의 방향감 표현이 정확하지 못하고 객석의 위치에 따라 방향감이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일반적인 영화 상영관에 비해 그 크기나 규모가 큰 공연장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수년 간 메이저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공연에 사용되는 실감음향 프로세서가 여럿 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Line Array이후 스피커의 소리 방사 기술의 향상보다 음원의 활용 방법을 통한 음장감, 관람객의 만족도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하나의 업계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내외 공연장에서 실감음향 설루션을 적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로 스테레오 체감 범위의 확대 및 정확한 정위 감의 전달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대형 공연 공간에서 L-R스피커 시스템을 통해 스테레오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매우 좁습니다. 그러나 전면부에 여러 포인트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서 가상의 스테레오 방식을 사용하면 보다 폭넓은 영역에서 스테레오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L-Acoustics사에서 L-ISA라는 실감음향 프로세싱 포맷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이미지입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IOSONO의 CORE프로세서를 통해서 이와 유사하게 전면 어레이를 구성하고 같은 스테레오 음원을 재생해 비교하면 L-R 시스템에 비해 가상의 스테레오가 보다 넓은 객석에서 보다 자연스러운 스테레오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에 따라 각 음원의 정위 감을 실제 무대에서 들리는 것처럼 위치시킬 수 있는데 이를 사용하면 객석 매우 넓은 범위에서 무대 위 각 연주자 또는 각 연주 파트의 정위감을 매우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러한 전면 방향의 실감음향이 잘 표현된 공연의 대표적인 사례로 2년 전 열렸던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KSPO 돔 공연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전면의 수평 방향에서 가장 세밀한 음상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전면 스피커 배열의 경우 음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연스러운 음상을 전달할 수 있고 스피커 간의 간섭으로 인한 위치 간 음색 변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피커의 숫자의 증가는 곧 비용이기 때문에 비용과 퀄리티에서 적절한 타협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는 360도의 공간감과 방향감의 구현입니다.
객석을 감싸고 있는 스피커 시스템을 통해 서로 다른 공간의 느낌을 경험하도록 하거나 공연에 필요한 효과음과 악기 소리가 전면이 아닌 측면 후면 또는 상부 등에서 들리도록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실내 공연장뿐 아니라 야외에서도 공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활용한 야외 클래식 공연 등이 기획 실행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미 많은 뮤지컬 및 연극의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서라운드 포맷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접근하기 쉬운 5.1, 7.1 채널 등 정형화된 서라운드 포맷에 비해 IOSONO, Sonic Emotion 등의 다채널 실감음향 프로세서를 사용할 경우 객석에서 보다 정확한 방향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과 사운드 디자인과 적용이 매우 용이하다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연장 내에 여러 개의 스피커를 객석 주변과 천정에 설치할 경우 마이크로폰과 스피커에 의한 잔향가변시스템을 통해 공간에 잔향을 부가하는 설루션으로 함께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는데 가장 큰 부담은 또 역시 무엇보다 설치에 대한 비용의 증가일 것입니다. 필요성과 유용함이 입증되지 않는 상태에서 많은 수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 그리고 수천만 원의 프로세서 비용은 공연장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설치 및 운용의 문제도 한몫을 합니다. 영화상영관의 서라운드 시스템은 표준화된 콘텐츠가 이미 공급되고 있어 별도의 노력 없어도 반복 재생만으로도 충분히 활용되지만 공연장의 실감음향 시스템을 작품에 적용하려면 그러한 설루션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운드 디자이너 또는 엔지니어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국내 공연장 몇몇에 설치되었던 모 서라운드 설루션은 이를 잘 활용한 성공적인 공연을 만들기도 했지만 활용도가 매우 떨어진 채로 방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공연 분야에서의 실감음향 도입이 막 활성화되려던 지난해 초반, COVID19로 공연이 멈춰 서면서 실감음향의 도입도 함께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현장 공연이 늘어나게 되면서 그간 준비되었던 다양한 공연 분야의 실감음향 시도들이 다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몰입감과 감동을 더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