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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눌리에 Jun 01. 2021

#6. 도시 위시리스트_몽펠리에

프랑스 덕후의 프랑스 살이 이야기

마르세유에서 기차로 약 세 시간 반을 달려서 몽펠리에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내렸는데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프랑스인 친구들이 입을 모아 ‘좋다’고 한 도시라서 기대가 컸는데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약 15분 정도 걷다가 결정을 내려버렸다. 내가 원하는 그 ‘느낌’이었다. 한 친구가 몽펠리에는 ‘작은 파리’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엑상 프로방스가 아기자기하면서 럭셔리한 영화 세트장같았다면  몽펠리에는 좀 더 쿨하고 도시스러운 분위기었다.  엑상 프로방스가 화사한 노란빛이라면 몽펠리에는 연한 회색빛이었다. 좁은 골목길들이 구불구불 연결되어있고 골목길을 지나니 넓은 광장이 보였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와 조각상이 있었고 그 앞을 파란 트램이 지나갔다. 트램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땡땡-' 소리가 경쾌했다.


몽펠리에 도시 중간에는 야자수가 심긴 거리가 있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고풍스러운 유럽 건물들 앞에 나란히 심겨 있는 야자수라니, 매일 그 풍경을 보고 싶었다. 야자수를 따라 걸어가면 아이보리색 개선문이 있었다. 파리의 회색빛 개선문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개선문이었다. 꼭대기에는 프랑스 국기가 있었는데 남프랑스의 파란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내가 야자수 다음으로 좋아했던 것은 가로등이었다. 몽펠리에의 가로등은 철사를 구부려서 만든 것 처럼 생겼는데 어쩐지 투박하면서도 귀엽고 정감가는 모양이었다.  


오후에는 살짝 비가 내렸는데 미스트처럼 고운 빗방울이었다. 그 빗방울들 사이로 햇빛이 비쳤고 도시는 말 그대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늘은 금새 파랗게 변했고 공기는 청량했고 촉촉한 건물들은 빛을 받아 눈이 부셨다. 그때 광장에서 샛노란 미모사를 가득 담은 트럭을 발견했다. 마치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는 듯한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날 이후 꽃 트럭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때 내가 본 풍경은 신기루같았다.


몽펠리에에는 알록달록한 트램이 돌아다닌다. 호선별로 트램에 그려진 그림이 다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램은 꽃이 그려진 2호선이었다. 그날도 꽃이 가득한 2호선을 탔다. 몽펠리에 외곽에는 ‘메종(MAISON)’이라고 부르는 단독주택들이 많았다. 나를 하루 재워주시기로 한 마담도 그런 메종에 살고 계셨다. 프랑스 남편과 결혼한 마담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꼭 빨간 머리 앤이 된 기분이었다. 마담이 만들어주신 소시지와 콩 요리를 먹으며 ‘이 도시에 살고 싶다’고 말했더니 며칠 더 지내면서 집을 구하고 가라고 하셨다.


다음 날, 마담의 도움으로 5개 정도의 집 후보를 정했고 총 3개의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집은 작은 아파트 건물에 있었는데 집이 넓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다만 집안에 담배냄새가 배어 있었고 주방이 깨끗하지 않았다. 나쁘지는 않았는데 맘에 쏙 들지도 않아서 보류하고 두 번째 집으로 갔다. 이 집은 단독주택으로 1층에는 주인이 살고 2층을 쉐어하우스(프랑스에서는 꼴로까시옹이라고 부른다)로 운영했는데 일단 룸메이트들이 다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방과 연결되는 작은 테라스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깨끗했다. 조금 고민하다가 마지막 집도 보고 싶어서 세 번째 집으로 갔다. 사실 정원이 있는 주택이라고 해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집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주인이 공고와는 다르게 젊은 사람에게는 세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집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혹시 인종차별이었을까?


조금 고민하다가 두 번째 집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주인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프랑스식 계약 방식은 복잡하면서도 두서가 없어서 마담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굉장히 불안했을 것 같다. 필요한 서류는 정말 많은데 정작 계약서는 A4 용지에 손으로 휘갈겨 쓰고 날짜, 장소, 서명을 하면 끝이다. 한국처럼 양식이 있거나 도장을 찍지도 않는다. 이게 과연 법적 효력이 있을까 싶지만 프랑스는 자필로 쓴 글씨가 엄청난 효력을 갖는다고 한다. 신기한 프랑스 세상이다.


그날 , 보증금 450유로를 내고 받은 종이  장을  번이고 들여다봤다. 드디어 나에게도 프랑스에 집이 생긴다니. 이제 나도 ‘프랑스에 산다 말할  있게 되었다. 계약을 하고 입주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설레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혼자 악몽을 꾸기도 했다. 이사하는  계약한 집에 도착했는데 집이 통째로 사라지거나 문을 열었는데 주인이 다른 사람이라거나 하는 내용의 꿈이었다. 다행히 이사하는  무사히  열쇠를 받았고 입주해보니 생각보다 집이  좋았다. 방에 테라스로 연결되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과 파란 하늘이 좋았다. 태어나서 가져본  중에 가장 햇빛이  드는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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