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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눌리에 Jun 02. 2021

#11. 싸움의 기술

프랑스 덕후의 프랑스 살이 이야기

우리 레스토랑은 점심때만 영업했는데 가끔씩 저녁때 행사가 잡히기도 했다. 하루는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도 셰프가 새로운 일을 주길래 이제 퇴근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오늘 저녁에 디너 예약이 있는데  들었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사장인 니콜라에게 이게 어떻게  일이냐고 물었더니 미안하다며 나에게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애써 쿨한  알겠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예고 없는 초과 근무로 친구와의 약속에 가지 못했다.


나는 이사를 다닐 때마다 발레 학원을 찾아서 수업을 들었는데 이 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발레 수업이 있었고 나는 매주 그 수업을 들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목요일 갑자기 셰프가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재즈 파티가 있다는 거 들었냐고 물었다. 당연히 니콜라는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고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났다. 우리는 주급으로 급여를 받았는데 그는 급여를 주는 것도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프랑스식으로 싸워 보기로 결심했다.


니콜라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저녁에 일 해야 하는 거 왜 미리 말 안했냐’고 물었더니 예상대로 ‘미안하다, 까먹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 오늘 수업 들으려고 이미 수강료를 지불했는데 네가 미리 말 안 해줘서 수업 못 가게 되었다. 나도 계획이 있고 일정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나 너랑 일 못 한다. 그리고 난 목요일 저녁에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성의 없이 ‘미안해’하고 말았다면 내가 화를 내니 정말 미안하다며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했다. 일부러 그다음 주는 수요일 날, 나 내일 밤에 일 안 할 거니까 다른 사람 구하라고 말했고 그는 하루 만에 목요일 밤에 일할 사람을 구했다.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심지어 그 후에 니콜라는 나에게 이틀 간의 휴가를 주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고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인 입장에서 그들을 보면 사사건건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프랑스인과 함께 살면 이런 사소한 논쟁을 경험할 일이 많은데 나는 일 년 간 총 세 번의 이사를 했고 그중 두 번을 프랑스인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불평을 들을 일이 많았다. 몽펠리에에 살던 시절, 나는 세 명의 프랑스인과 함께 살았는데 그중 한 명은 늘 설거지를 미루는 스타일이었다.  지나가다 그녀의 방 문 틈으로 보이는 그릇의 산(정말로 산이었다)을 본 적도 있고 접시를 테이블에 며칠씩 방치하기도 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집에서 자주 요리를 했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하게 나가느라 접시 몇 개를 치우지 못하고 나갔는데 그날 바로 문자가 왔다.


사실 불어를 잘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함께 있던 프랑스인 친구들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분노했다. 그중 한 명이 '너 쟤랑 사는 거 괜찮냐'고 물으며 '원하면 자기 집에서 잠시 지내며 집을 구해도 된다'고 했을 정도이니 아마 꽤나 심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에게 집을 청소하라고 시켰는데 화가 난 친구들이 나 대신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함께 쓰는 집이니 당연히 모두가 함께 청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나만 청소를 해야하냐'고 단호하게 보냈더니 바로 '네 말이 맞다'며 각자의 청소 일정을 정했다.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프랑스인과 함께 살았는데 그녀 또한 설거지를 안 했다. 그녀가 사용한 오븐용기가 일주일 동안 싱크대에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앞 에피소드와 동일하게 내가 접시 하나를 안 치우고 나갔더니 바로 문자가 왔다(뻥 안치고 정말 접시 하나였다). 보통 한국의 경우 이런 식의 컴플레인을 할 때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한 번 정도는 돌아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데 프랑스인들은 그런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불편하면 본인이 한 행동들은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해버린다. 더 재밌는 건 그 후의 태도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서로를 불편해하고 피하지 않는다. 바로 '그럼 이따 봐~'하면서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안에서 마주치면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냥 그 상황은 상황일 뿐, 그 감정들을 서로의 관계에 가지고 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어찌 보면 솔직해서 좋다. 프랑스인들이 농담으로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이 맛있으면 맛있어서 불평하고 맛없으면 맛없어서 불평한다'는 말을 할 정도이니 그들이 불평과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이러한 일을 겪으며 나 또한 나의 주장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얌전히 '네네 죄송합니다'만 하면 바보가 된다. 프랑스에 살면서 나는 '싸우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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