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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눌리에 Jun 04. 2021

#13. 전 남친이 우리 동네에 온다_2

프랑스 덕후의 프랑스 살이 이야기

‘안녕 잘 지내? 나 일주일 후면 이 도시에서의 생활이 끝나. 너는 지금 방학이야?’

전송 버튼을 눌렀다.


오랜 시간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문자를 보낸 지 2초 만에 ‘안녕 응 나 지금 방학이야. 그럼 너 곧 여행 가는 거야?’라는 답장을 받았다. 심지어 ‘네가 나한테 문자 보내줘서 정말 기뻐’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서 좀 더 용기를 내서 ‘사실 나 네가 보고 싶거든’라고 말했다. 그도 ‘나도 그래. 우리가 대화하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네 생각을 자주 했고 보고 싶었어’라고 했고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저번에 네가 여기로 놀러 오겠다고 해서 올 줄 알았는데 안 와서 아쉬워’라고 보내버렸다. 그는 내가 자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줄 알았다며 괜찮다면 이번 주말에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세상에. 나는 그와 헤어질 때 두 번 다시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곧 나는 그와 함께 바닷가에 간다. 사실 헤어진 남자를 이렇게 보고 싶어 해 본 것도, 먼저 문자를 보낸 것도, 대화를 나눈 것도 처음이라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이 남자는 뭐가 다른 걸까. 역시 아직 너무 좋아하는데. 거리’라는 단순한 이유로 헤어져서 그런 걸까.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 우리는 바보 같은 이유로 헤어졌다. 그 결과로 헤어진 후에도 서로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차피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좋아할 거라면 매일 보지는 못해도 가끔 만나고 전화도 하고 문자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나와 그의 가장 큰 차이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우리가 이별을 결정할 때 했던 대화가 바로 핵심인데 나는 그에게 ‘일단 두 달은 확실하게 남프랑스에 살 예정이고 내가 쉬는 날 너를 보러 갈 거야. 그리고 8월 이후의 계획은 아직 정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나에게 ‘계획하지 않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내가 다시 그와 살던 도시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남자 친구’라는 존재는 나에게 충분히 그 이유가 될 만하다. 하지만 이 말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나와 정 반대였다. ‘어쨌든 넌 이사를 갈 거고 여행도 할 거잖아. 그것 봐 계획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겠어. 장거리 연애는 너무 힘든 일이야.’


처음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계획 없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하지만 이후에 그 문장을 곰곰이 곱씹어보았고 그와 내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고 그다지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즉흥적인 것도 꽤나 좋아하고 도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는 나보다 부정적이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에게 ‘무계획’은 두려움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선택은 나에게 ‘용기 없음’으로 비쳤고 마치 무언가가 두려워서 우리의 관계에서 발을 한쪽씩 빼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남자 친구와 헤어지면 화가 나거나 그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별의 이유를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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