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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눌리에 May 31. 2021

#5. 도시 위시리스트_엑상 프로방스

프랑스 덕후의 프랑스 살이 이야기

살면서 ‘어느 도시에 살지’를 결정할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이건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살 도시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느낌’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살고 싶다’는 느낌이 팍! 오는 그런 도시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 도시를 가보기 전에는 어디에 살지 정하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프랑스로 왔다. 일단 나는 추운 게 싫어서 남프랑스에 살고 싶었고 아는 사람이 있으니 마르세유에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마르세유에 와보니 내가 원하는 그 ‘느낌’이 없었다.  


두 번째 후보는 마르세유 바로 옆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였다. 화가 폴 세잔의 도시로 유명한데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미술관과 분수가 아주 많은 도시이다. 마르세유에서 엑상 프로방스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기차에 탑승한 지 15분도 채 되지 않아서 ‘AIX-EN-PROVENCE TGV’라는 역에 도착했다. ‘두 도시가 정말 가깝네’하는 속 편한 생각을 하며 기차에서 내렸는데 분위기가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나는 아기자기한 도시에 있는 기차역에 내려야 하는데 마치 공항 환승게이트처럼 삭막한 기차역이었다. 그래서 지도를 켜보니 나는 완전 다른 곳에 와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역무원에게 여기가 엑상 프로방스가 맞냐고 물어보니 도심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다. 역무원이 설명해준 대로 버스를 타러 나와보니 나는 정말 고속도로 한가운데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왔고 내 기차표보다 비싼 금액을 내고 버스에 올랐다.

두 배 비싸게 도착한 엑상 프로방스는 붓으로 그린듯한 도시였다. 햇살을 가득 받아서 온통 노란빛이었고 도시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다. 바닥은 반질반질한 아이보리색 돌로 되어있었는데 어쩐지 영화 세트장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먼저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마들렌 가게로 향했다. ‘Madeleines de Christophe’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크리스토프의 마들렌’인 이 가게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마들렌이 구워져 나오고 가게 근처는 버터 냄새가 가득했다. 마들렌은 6개에 3유로. 생긴 건 굉장히 투박했다. 마치 호두과자 같은 느낌이랄까. 내 차례가 되었고 마들렌 12개와 까눌레 1개를 주문했다. 종이봉투에 담긴 따끈한 마들렌을 받으니 정말 호두과자를 사는 기분이었다. 마들렌은 투박했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버터의 풍미가 잘 느껴지는 아주 맛있는 맛이었다. 버터향이 가득 나는 바삭한 마들렌. 그게 바로 엑상 프로방스의 첫인상이었다. 


홍차를 사려고 시내에 있는 티샵에 갔다. 차를 고르면서 직원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도시에 살지 고민 중이라고 하자 여기 대학교도 있고 학생들도 많아서 살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한국어학교도 있어서 한국에 관심이 있는 프랑스 사람도 많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도 깨끗하고 예쁘고 무엇보다 맛있는 마들렌 가게가 있는데 뭐랄까 내가 원하는 그 ‘느낌’이 없었다. 나쁘진 않은데 ‘여기 살아야겠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결국은 내 리스트의 마지막 도시 ‘몽펠리에(MONTPELLIER)’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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