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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Oct 03. 2019

오늘 까치한테 머리를 맞았다.

저는 대한민국의 대학원생입니다.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꾼 잘못으로 대학원에 왔다.



여행지에서의 낯선 사람들과의 이야기 자리는 참 포근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두고 온 삶이 각자의 색으로 빛나며 한데 모여있다 흩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처음 만난 사람이기에 믿을 수 있는 말들로 가득한 대화는

나를 우물 밖 세상으로 끊임없이 잡아당긴다.


저는 대학원생입니다.


굉장히 똑똑한 사람으로 보는 쉬운 시선 뒤에는

무슨 연구를 하는지에 대한 목소리가 따라온다.


"아... 까치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연구 분야라면 혹은 멋있게 포장이라도 가능하다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내 연구분야는 생소하고 얼핏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니 지루해지고

간단하게 말하자니 항상 저런 식이다.


"졸업하면 보통 뭐해요?"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달라서 일반화하는 대답조차 어렵게 만든다.



2019년에 태어난 새끼 수컷이다


똑똑한 동물은 참 재밌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알 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존재가 살아가는 모습은 물음표 살인마를 탄생시킨다.

"쟤네 도대체 왜 저래?"

내가 까치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끊임없이 외치는 말이다.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때로는 너무나 멍청해 보이고

그보다 조금 더 자주는 매우 똑똑하다고 느낀다.


까치에게도 서사가 있다.

우리나라의 까치는 3월 초부터 번식을 시작한다.

평균적으로 6개 정도의 알을 한 번에 낳고

빠르면 5월 중순부터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겨우 나와 세상 구경을 시작한다.

둥지 오른쪽 위로 까치 두마리가 보인다!

처음은 둥지 밖으로 나와서 옆의 가지에 올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둥지 구멍 밖으로 고개를 겨우 내밀고

밖에 나와도 금방 다시 둥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전부다.

그러나 하루, 이틀 조금씩 멀리 있는 나뭇가지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포식자의 등장에 놀란 어미새가 소리 지르면

땅에서 벌레를 먹던 와중에도 일사불란하게 도망가는 지경에 이른다.

암컷인데 밥 먹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 달 뒤, 다시 찾은 유조들은 같은 둥지에서 나온 남매끼리(많은 경우 형제나 자매보다 남매가 흔하다) 무리 지어 다니며 먹이를 찾고 서로를 보호한다.

같은 둥지 출신의 새끼들로 둘 다 수컷이다.


여름과 가을 유조들은 무리 지어 다니면서 생활하는데 이때 까치로서의 소양을 다진다.

멀리 날 수 있게 되면서 어느 둥지 출신인지는 묻지 않고 어우렁 더우렁 함께 밥도 먹고 맛집도 공유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날인 수요일은

매주 오는 출장 뷔페와 같고

흐르는 냇가 근처의 비옥한 땅은

언제나 보장된 지역 명물 맛집이다.



시월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관찰하던 중

한 마리가 내 옆으로 날아와서 겁 없이 나에게 걸어왔다.

반경 50cm 안까지 걸어온 까치


'이 녀석 겁이 없나?'

'이거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감인데?'


턱턱 턱턱

열심히 걸어오는 까치를 보며

나는 핸드폰부터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자 실망감에

내버려 두고 할 일을 하던 1분 뒤,


'푸드덕'

소리와 함께 빠르게 뒤돈 나는

날아오른 까치의 정면을 볼 수 있었고


"야!!!!!!!!!!!!!!!!!!"

일단 내지른 고함은 까치의 두꺼운 발이

내 머리를 강타하는 것보다 0.5초 늦었다.

열심히 뒤따라가 찍은 증명사진


사실 우리 연구실 선배 중 한 명은 이미 이 주제로 논문을 낸 적이 있다.

까치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주제로 국내외 까치 연구자들이 항상 즐거워하는 주제임은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내 머리를 친 까치는 개체 표지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성별조차 구분되지 않았고


까마귀한테 자리를 뺏기는 모습을 비웃은 나에게 화를 내고 간 것인지 (심지어 같은 개체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저 행복 회로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냥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제대로 날지 못해 160cm가 채 되지 않는 높이에 존재했던 내 머리에 부딪힐 수밖에 없던 것인지는

그 아이 만이 아는 진실일 것이다.


그래도 뭐, 이제 어디 가서 까치 연구한다고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낼 일화가 생겼다.

그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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