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몬트리올 구도심
현지를 따라 엣센스 HQ를 방문했다. 북쪽으로, 조금 외곽이라 생각될만큼 올라가서 있는 동네였다. 현지는 여기가 몬트리올의 ‘가디단(가산디지털단지)’ 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몬트리올의 가디단에는 수출의 다리도 없고 실제 거리상으로는 강남역에서 서울대입구역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저녁 시위 때문에 도로가 막혀 지하철 인파가 몰렸을 때, 새파랗게 겁에 질린 친구의 가방을 붙잡고 “이거 퇴근 시간 2호선 정도인데. 충분히 타고 내릴 수 있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멀다, 사람 많다, 복잡하다 등 삶의 질에 대한 불평은 서울, 뉴욕, 홍콩 정도는 돼야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했다.
대부분 텅 비어있는 널따란 엣센스 사무실에 일하는 현지를 남겨두고 보리언니와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로 향했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라길래 꽤 큰 규모를 상상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명동성당보다도 작은 것 같았다. 노트르담 성당 앞에는 정방형의 분수 광장이 있는데 가로 세로 스무걸음 정도의 크기였다. 이 자그마한 장소에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굳이 줄을 서서 이 성당 안을 보고 싶냐는 질문에 보리언니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구시가지에는 오래된 랜드마크 건물들이 많았다. 점심이나 먹기로 하고 주변에 있는 크루 카페crew cafe로 갔다. 1920년 캐나다 왕립 은행 건물로 지어진 크루Crew 건물은 뉴욕의 건축 회사 York&Sawyer 의 작품이라고 한다. 금빛 소재들과 은은한 조명이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 장식들을 마주 보고 로비에 서자 위압감이 느껴졌다. 건물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높은 천장이 주는 웅장함 때문인지, 고풍스러운 1세계 특유의 제국적 스케일랄까. 카페 곳곳에 공유 오피스로 운영되는 데스크와 회의실들이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매일 일 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재용님이 몬트리올에서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해준 곳 중 PHI 갤러리가 구도심에 있었다. 오후에 투어를 예약해둔 해비타트Habitat67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길래, 갤러리까지 걸어갔다. 휴관일이 아닌데 유리 대문을 흔들어 보니 문이 굳게 잠겨 있어, 휴식 시간인가 싶어 문에 코를 박고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우리가 간 당일 저녁에 새 전시 오프닝 파티가 있고 그 다음날부터 전시 일정이 시작이라는 안내문이 벽에 붙어 있었다. 몬트리올에 머무는 동안 아무 날에나 다시 와보지 뭐,라며 발걸음을 돌려 한 블럭 정도 걸어가니 PHI center라는 또 다른 갤러리가 나왔다. 알고 보니 PHI는 Foundation과 Center라는 두 개의 다른 장소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각 다른 전시/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PHI Center전시장이 그닥 크지 않아 보여, 30분 안에 다 보자 생각하고 냉큼 들어갔다. <Sex, Desire and Data> 라는 인터랙티브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데이팅 앱, 성매매, 포르노 등의 주제로 콘텐츠들이 이어졌고 ‘조금 뻔한가’ 싶은 주제를 ‘테크놀로지’라는 부차적 주제에 연결시켜 훨씬 더 생생하게 만든 구성이었다. 스마트폰, 인터넷 방송 등 24/7 온라인에 연결 돼 있는 개인들에게 더더욱.
해비타트67은 약간 외떨어진 강변에 있었는데, 택시를 타고 단지 입구에 내리면 거기서 사전예약 해 둔 도슨트 투어가 정해진 시간에 출발했다. 사람들이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라 겉에서 대강 건물의 연식과 건축가의 필모에 대한 설명을 듣는 정도일거라 생각했던 도슨트는, 정반대로 본격적이었고 비어 있는 세대에 들어가 내부까지(장판 바닥까지 들어서 난방과 전기 설비까지 보여줬다) 둘러볼 수 있었다. 이 때부터 하루에 2만보를 걷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거의 세 시간 가까이 불어 억양으로 쉴 새 없이 설명하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었다. '브루털리즘'이란 키워드 외에 아무 사전 조사 없이 왔던 두 한국 관광객은 쏟아지는 정보와 두 세번 더 해석해야 하는 불어 식 영어 발음(모든 [r] 발음을 [ㅎ]으로 말했다)에 현기증이 났다. 우리는 터질 것 같은 발바닥과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중간중간 바닥에 쪼그려 앉아가며 끝까지 투어를 버텨냈다. 중간중간 나는 영화 <콜럼버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끼려 노력했다.
그렇게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 해비타트67의 67은, 이 건축물이 지어진 연도 1967년을 뜻한다. 1967년은 몬트리올에서 세계 엑스포가 열린 해다. 나는 1994년 대전 엑스포에 가 본 적이 있다. 모셰 샤프디는 몬트리올의 자랑이었는데, 그는 1967년 열리는 이 세계적인 행사에 필요한 랜드마크들의 건축을 진두지휘 했다. 해비타트67도 그 중 하나다. 샤프디는 20대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 건축가였으며, 그는 해비타트67을 설계할 때 레고를 사용해 지금의 건물 형태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복잡하게 쌓아올린 블럭 형태의 건물을 지상에 구현하기 위해, 이 건물이 압력, 기후, 기둥이 부재한 공간 등을 견뎌낼 수 있도록 치밀한 공학적 계산이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도 구글에 ‘1967 몬트리올 엑스포’라고 한글로 검색하면 중앙일보의 1967년 1월 27일 기사가 나온다. 그리고 정말, 정말 재밌는 기록들이 온라인에 신기할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 제발 이 링크를 일독해 주시길.. https://hmn.wiki/ko/Expo_67 투어 말미에 가이드가 샤프디가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데 싱가폴 마리나 베이 샌즈가 있었다. 나는 수업 시간 중 헤르미온느처럼 손을 들고 "저거 시공한 건설사가 한국 회사야"라고 외쳤다. 다들 예의상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중간 이탈까지 고민할 때쯤, 투어가 끝났다. 오후 두 시에 시작한 투어는 저녁 다섯 시가 다 되어 끝났고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너클스Knuckles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주먹’ 만두를 포함해 북미에는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내 편견을 깨트린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관람차가 있는 피어pier로 향했다. 알고 보니 아침에 갔던 노트르담 성당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있는 곳이었다. 역에서 나와 걷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흠뻑 젖은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오래된 보도블럭 틈에 고인 물웅덩이들에 발을 담그며 철벅철벅 걸어 나갔다. 관람차는 악천후로 운행을 중지했고 우리는 하릴없이 발걸음을 돌려 나왔던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나름 유원지에 왔다고 먹고 싶은 기분이 들어,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