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몬트리올 셍뜨엘렌느 섬
캐나다에 온 이후 늘 밤 9시에서 10시면 골아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아침 7시에는 알람 없이 눈이 떠졌다. 거실 바닥에 이불을 몇 겹으로 깔고 누워 잤는데, 현지가 찍은 나와 보리언니의 사진을 보니 명절에 할머니댁에서 술 퍼마시다 잠든 큰아버지들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딱히 할 일도 없어, 커피 사 마시고 동네를 산책했다. 산책을 즐기기에 학교 교정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아 맥길McGill 대학으로 향했다. 현지네 아파트 건물을 보고 <트윈픽스>를 떠올렸다면, 맥길 대학 건물을 보고는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를 떠올렸다. 나는 매번 이런 식으로 서양 세계의 모든 레퍼런스들을 최대한 납작하게 만들며 제국주의자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다.
보리언니와 커피를 한 잔씩 테이크아웃 해 맥길 대학의 다운타운 캠퍼스를 거닐며 우리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포기했던, 과거 유학/교환학생의 기회에 대해 이야기 했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부러움도 질투도 없었다. 방에 틀어박혀서 <마비노기> 게임만 주구장창 했거나, 한국 학생들과만 어울려 여기저기 놀러 다닌 후기를 들으며, ‘저럴 거면 왜 비싼 돈 써서 외국에서 살다오지’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우리 집은 그렇게 낭비할 만큼 충분한 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 것이다. 부모님께 등록금을 받아 대학교를 다니고, 부모님의 집에 살았던 시절 나의 자존심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내 힘으로 하는 거였다. 결국 10-20대 때는 사회의 압박에 부응하는 것-입시, 대학 졸업, 취업–외에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나에게 응당 기대되는 것(결혼) 외의 다른 모든 것에 미친듯이 열중하고 있다. 학교를 구경하다 보니 지금 유학을 가면 난 어떤 학생이 될까 하는 상상이 뇌를 가득 채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기침하듯 토해내며 걷다 점심에 현지와 만나기로 비스트로 L’express가 있는 거리에 다다랐다. 한 블록 정도 목적지를 앞두고 반지하에 있는 빈티지 레코드 샵을 발견했는데, 추레한 차림새의 아저씨들이 바이닐 상자를 뒤적대고 있었다. 딱 보니 ‘구경할 만 하겠다’ 싶어 바로 가게 안으로 직진했다. Beatnick이라는 이름의 레코드 가게에는 먼지가 켜켜히 앉은 중고 바이닐들이 가득 했는데, 컬쳐 클럽의 <Karma Chameleon> 판을 보자마자 제대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레코드를 사지 않는다. 플레이어도 없고 운반, 보관도 귀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코드샵을 마주치면 마치 단 한 개의 장서를 찾아 헤매는 수집광처럼 모든 음반을 전부 뒤진 뒤 늘 빈손으로 떠난다. Beatnick에서도 그렇게 선반을 뒤지고 있는데 토킹헤즈Talking Heads의 섹션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 인생의 BGM은?"이라는 질문에 토킹헤즈의 <This must be the place>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물론 바이닐은 사지 않았다. 소유와 별개로 좋아하는 것이 어떤 장소에, 어떤 모양새로 존재한다는 것만 확인한 뒤, 거기에 크게 만족하는 심리를 지칭하는 독일어 단어가 있을 것 같다.
현지에게 문자가 왔다. "빨리 참새방앗간 나와서 식당으로 오셈." L'express에는 프렌치 비스트로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귀엽고 클래식한 인테리어, 코스별로 나오는 느끼한 프랑스식 ‘comfort food’들, 느끼함 속에 담긴 감칠맛과 풍미까지. 현지는 이 식당을 ‘몬트리올의 우래옥’ 같은 거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보리언니와 나는 음악 축제 오셰아가Osheaga가 열리는 Jean Drapeau 공원으로 향했다. 올림픽 공원과 비슷한 크기/전경의 이 공원은, 67년 몬트리올 엑스포가 열릴 때 소련관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렸던 미국관이 있던 자리에 있다. 미국관은(철거하고 다시 지은 것인지 그 건물을 그대로 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비오 스피어Bio Sphere가 되었다.
오셰아가에 오기 전 라인업을 찾아보니 익숙하지 않은 밴드도 많았다. 옛날이라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무대만 보기 위해 시간 맞춰 들어갔겠지만 지금의 나는 모르는 밴드들의 음악을 하나하나 다 찾아 듣고 예습 플레이리스트까지 만들었다. 모든 아티스트의 음악에 똑같이 끌리진 않았지만 일부러 귀에 익을 때까지 전체 플레이리스트를 반복 재생했다.
사람의 뇌는 열 살에서 열세 살 사이에 들은 음악들을 평생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다고 한다. 아마 내가 중학생 정도까지, 강남역 지하상가에 신나라 레코드가 있었다. 초/중학교를 강남역 근처에서 다닌 나는 친구들과 시내(?)에 놀러나갈 때마다 거기에 들러 H.O.T, SES, 신화의 CD와 카세트 테이프를 사곤 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내 동생의 아이돌은 유승준이었다. 우리 남매는 말 그대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H.O.T와 유승준을 돌려 들었다. 당시 우리 집은 중산층 자가 마련의 꿈을 이룬지 얼마 안 됐고 부모님은 이 집을 화목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꾸미는 데에 열중해 있었다. 내가 10살쯤 되었을 때, 우리 집에는 금색의, 커다란 스탠딩 스피커를 겸비한, 카세트와 CD 플레이어가 모두 탑재된 오디오가 들여졌다. 부모님은 곧이어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유명 클래식 CD 전집을 구매했다. 부모님은 정작 사 놓고 그닥 듣는 일이 없었는데, 결국 오디오는 내 차지가 되다시피 했다. 나는 집에 존재하는 모든 CD와 카세트를, 멜로디와 가사를 전부 외울 지경까지 돌려 들었다. 스무 개 정도 되는 클래식 음악 CD를 하나씩 꽂아 넣어가며 처음 듣는 음악의 세계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중 내 맘에 든 멜로디를 발견하곤 몇 번씩 반복 재생했다.
우리 부모님은 퇴근 때마다 강남역 신나라 레코드에서 나우NOW, 맥스MAX 같은 팝송 컴필레이션 앨범들을 사오곤 했다. 가게에 들어가면 입구 쪽에 진열된 음반들 중 몇 개를 집어온 것 같았다. 인터넷 없이 당시 빌보드 차트의 인기곡들을 가장 빠르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었던 나우, 맥스 시리즈에는 Notorious B.I.G, Boyz 2 Men, 마돈나, The Corrs 같은 아티스트들의 히트곡이 담겨 있었다. 쿨한 밴드맨들을 좋아하는 척 해보려 해도 내 고개는 저절로 힙합 비트애만 끄덕여지고, 라이즈나 에스파 같은 요즘 SM아이돌들에게도 조건 반사처럼 돌아가는 내 귀와 눈을 보면 뇌과학에 관련한 연구 결과가 진짜구나 싶다.
칸막이 하나 없이 야외에 그대로 노출된 남성 소변기 앞에 둥글게 붙어 서서 소변을 보는 남자들, 간이 도핑 테스트 부스와 그 옆의 쨍한 주황빛 아페롤 프로모션 부스, 바지를 안 입거나 상의를 안 입은 어른들이 내뿜는 자욱한 대마초 냄새, 그 속에서 청력 보호용 헤드폰을 끼고 아빠의 목마를 탄 아기, 돗자리에 혼자 앉아 기다리는 엄마 혹은 아빠들을 뒤로 하고 군중 속에서 소심하게 음악을 즐기는 10대들, 이 모든 것을 지나치며 우리는 공원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대여섯개로 나뉘어진 무대들(서로 음향이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 꽤 멀리 떨어트려 두었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보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대부분 쿠어스Coors 맥주 혹은 베니스 버전으로 탄산수가 들어간 아페롤 스프리츠로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서울 사람이 몬트리올의 여름 따위에 땀 한 방울 흘리겠냐며 자신있게 청바지를 입고 갔던 나는 탈수 증상이 오기 전 굿즈 부스에서 원피스가 될만큼 커다란 농구 저지 한 장을 급하게 구입해 걸치고, 청바지를 벗어 배낭에 구겨 넣었다. 퇴근하고 온 현지와 합류할 때쯤이 되자 공원 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곧 헤드라이너인 Rufus du Sol, Jeoy Bada$$등이 나올 참이었다. 애플워치를 보니 이미 2만 5천보 정도를 걸었다. 발 통증과 체력 문제로 스탠딩존에서 떨어진 뒤쪽 돌계단에 앉아 조이 배대스의 음악을 들었는데, 너덜너덜한 상태에도 비트에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현지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 여유롭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조금 빨리 출발하자고 했다. 발가락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지하철이 더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합리적 근거에, 다시 대중교통에 몸을 실었다. 애플워치를 보니 2만 9천보 정도 걸은 상태였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보니 가운데 발가락에 동그랗고 하얀 물집이 잡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