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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Oct 06. 2023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8월 6일 일요일, 졸리에뜨-몬트리올

오늘은 졸리에뜨Joliette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조성진의 공연을 보러 가는 날이다. 오셰아가만큼 기대했던 코스인데, FESTIVAL DE LANAUDIÈRE 라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의 여름 축제가 졸리에뜨 같은 몬트리올 근교 지역에서 열리는데 거기에 조성진이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온 거였다. 게다가 조성진이 쇼팽 콩쿨에서 우승했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니, ‘두유노 클럽’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는 설렘에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연주회 장소는 졸리에뜨에 있는 동계 올림픽 공원(으로 추정되는)의 야외 음악당이었는데, 페스티벌에서 제공해 주는 셔틀버스를 타고 90분 정도 가야 했다. 


아침부터 눈부시게 날씨가 좋았다. 우리는 가는 길에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바에 들러 파니니와 커피를 사고 셔틀 버스 타는 스팟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너는 먹을 때가 제일 예뻐’였나 뭐 그 비스무리한 문구가 네온사인으로 걸려 있는 한국 음식점을 발견해 팔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몇 년 전만 해도(아마 코로나 전) 해외 여행을 가면 늘 카페 투어를 했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선 커피나 와인에 관해 다채로운 옵션을 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외 어디도 서울만큼 상향 평준화 된 커피 시장이 없는 걸 절실히 느낀다. 몬트리올에서도 전반적으로 커피 맛이 그저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이 하는 에스프레소 바에서 마신 피콜로 라떼가 시내에서 마신 가장-그리고 유일한-맛있는 커피였다. 하지만 서울이라면 평범한 수준일듯. 


졸리에뜨로 향하는 셔틀 버스 안에는 백인 노인들과 한국인들 밖에 없었다. 설악산 관광 버스를 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시가지를 벗어나자 밖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 혹은 그냥 보통 도로 같은 곳을 달려가고 있었는데 정말로, 허허벌판(논도 밭도 아닌 황무지)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이 나라의 인구 밀도가 얼마나 낮은 지 그제서야 실감 났다. 캐나다 동부로 여행을 하겠다고 처음 목적지를 정했을 때 나는 순진하게도, 같은 동부 해안이니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서 <빨간 머리 앤> 투어를 하루 정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 <빨간 머리 앤>의 무대인 프린스 에드워드, 노바스코샤 까지는 자동차로 10시간 혹은 기차로 4시간 정도를 가야 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보고 몸서리가 쳐지는 스케일에, 나중에 모험심이 강한 일행을 구하면 함께 탐험을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넓은 황무지 트레킹에 대한 내 망상에 불을 지피며 버스는 20분에 한번 정도 씩 정차해 더 많은 백인 노인들을 태웠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오도카니 있는 동네에서 다들 뭐 먹고 살지,란 궁금증이 들었다. 이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연예인과 백인 걱정이란 생각에, 다시 <빨간 머리 앤>적 공상으로 되돌아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자 공원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 근방 지역이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라 그런지 축제 스텝들도 전부 노인들이었다.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노인들 중 유색인종은 아무도 없었다. 근방 2키로미터 내의 유일한 유색인종 노인은 가족들과 온 몇몇 한국인들 뿐이었는데, 아시안은 워낙 어려보이는데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염색하고 아기같은 피부를 가졌기 때문에 노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기온은 서늘했지만 햇빛이 따가웠다. 야외 음악당에는 지붕이 있었지만 해의 움직임에 따라 햇살이 드는 자리가 바뀌었다. 지정 좌석인 음악당의 바깥에는,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잔디밭이 있었고 이미 일찍 와서 캠핑 의자나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자수가 놓여진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여기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니, 버석하게 빛을 내리쬐는 해와 푸르른 대지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이 <미드소마>의 주인공 같았다. 주변에 찍힌 사람들도 백발이 성성한 코카시안 노인들밖에 없어서 더욱 그랬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성숙한 관광객보다는 종교적 제의를 앞둔 사미족 소녀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음악당의 음향시설이 별로였던데다 공원 안에서 매미들이 계속 울어대 더더욱 잘 안 들렸다. 하지만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귀여운 몸집의 조성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름다운 쇼팽을 연주했다. 눈부신 햇살과 산들바람, 매미 소리 속에서 쇼팽을 치는 조성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처럼 벅차 올랐다. 내가 무슨 덕을 쌓았길래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누릴 수 있지? 이렇게 좋은 일이 내 인생에 있어도 되는 건가?


인터미션에 화장실에 다녀온 내게 현지와 보리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연 끝났대.” “왜? 무슨 사고라도 난거야?”라고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조성진 나오는 순서 끝났다는데?” “어? 콘체르토 끝났으니까 조성진은 들어갔지.” 우리는 서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마주 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연주자랑 교향악단이 같이 하는 콘서트는 1부 콘체르토, 2부 심포니로 구성하고 사이에 인터미션 해. 그리고 둘 다 메인 공연이 맞아.” 현지와 보리언니는 둘 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본다고 했다. 2부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이었다. 나는 차이코프스키까지 앉은 자리에서 관람하겠다고 했고, 어차피 셔틀 버스는 공연이 끝나야 출발할 테니 공연이 다 끝나고 출구에서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몬트리올 교향악단의 연주에 또 다시 감동했고, 쇼팽보다 이 교향악이 훨씬 멋지단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구가 자전하며 넘어간 햇빛이 정수리를 불태울 듯 내리쬐고 있었고 3악장은 너무 조용히 진행됐다. 뒷목이 얼마나 새까매지려나 같은 걱정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쥐도 새도 모르게 넘어간 마지막 악장이 화려하게 끝났다. 나는 <미드소마>의 내용과 다르게 '의식'이 끝날 때까지 산제물이 바쳐지지 않음을 축하하며 백인 노인들과 함께 기립박수를 쳤다.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 저녁 시간에 맞춰 석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성 요셉 대성당(L'Oratoire Saint-Joseph du Mont-Royal)에 석양 관람 스팟이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버블티 가게가 있는데 ‘서울 시트러스’란 이름의 메뉴가 있고 현지의 말에 의하면 몬트리올에서 가장 맛있는 버블티 집이라고 했다. 서울, 홋카이도, 오키나와 같은 이름이 붙은 메뉴들을 하나씩 모두 맛보고 싶었지만 가장 맛있다는 인기 메뉴도 포기할 수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내 것은 서울 시트러스를 고르고 현지와 보리언니가 시킨 걸 한입 씩 얻어먹기로 했다. 서울 시트러스는 야쿠르트에 유자차를 섞은 버블티였는데, 신기하게 한국스러운 음료이면서도 한국에선 먹어본 적 없는 조합이었다. 한국 간식계에 도넛이나 탕후루보다 버블티 붐이 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쫄깃한 타피오카 펄을 씹으며 대성당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성요셉 대성당은 19세기 안드레아라는 수사가 치유의 기적을 일으킨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성서 속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져, 지하에는 이 성당에 치유받은 자들이 버리고 간 목발과 지팡이들이 모아 전시 돼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땐 지하에서 미사가 진행 중이었고, 예배당 앞에는 헌금을 내고 밝히는 촛불들과 목발들이 빽빽히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소원을 빌며 촛불을 밝히는 신자들과 이 예배당에서 행해졌다 전해지는 각종 기적의 기록들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가니 바실리카Basilika는 텅 비어 있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천국의 문지방에 닿을 듯 높이 솟아 있고, 벽에는 열두 제자의 석상이 들어차 있었다. 바실리카의 고요한 실내를 구경하며 신성의 오라aura에 대해 생각했다. 매미 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는 대낮의 공원에서 피아노와 현악기 선율을 들으며 느꼈던 벅차오름도 일종의 신성이 아닐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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