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May 18. 2024

진정해 그냥 일기야

5월 18일

피식대학 그러려니 가능한 이유


아마추어 코미디언들과 하루에 최소 한 줄씩이라도 농담을 쓰는 연습을 하는 오픈 카톡 채널에 들어가 있다. 대부분은 남자 코미디언들인데 남녀 코미디언은 왠만하면 서로 섞이지 않는다. 이유는 남자 코미디언들의 연습 세트를 한 두개만 봐도 금방 알수 있다. 어느날 이 채널의 한 남자가 마취중인 여환자를 성폭행한 남의사 기사를 올리고 이런 라인를 썼다."이래서 의대를 가야하는군요".


여자 코미디언 한 명이 아무리 농담 연습이라지만 듣는 사람 기분 나쁘다고 한마디 했다. 그 때 갑자기 다른 남자가 감전된 것처럼 화를 냈다. "이 방은 무슨 얘기든 쓸 수 있는 방 아닌가요?" 이전부터 강간이 지구에서 가장 웃긴 소재라고 생각하는 남코미디언들의 성향을 익숙히 봐오던 터라, 나도 태연하게 남자들이 피해자인 강간 소재로 연습 세트를 몇개 써보았더랬다. 예를 들면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보면 여자 죄수를 강간한 남자 간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클로로포름으로 그 남자 간수를 기절 시킨 뒤 항문에 대걸레를 꽂은 채 복도에 버려두고 도망치는 죄수들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한국에서 강간의 형법상 정의는 '간음'인데 성기가 아닌 대걸레를, 성기가 아닌 항문에 꽂아도 강간이 성립하는지 궁금하다, 같은 내용의 세트였다.


그렇게 나름 남코미디언들의 세계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코미디에 성역은 없다'더니 정작 자기들 듣기 싫은 말은 하지 말라는 걸 보니, 진짜 이 남자들이 내 눈앞에 있었으면 어디서 쇠파이프라도 뽑아다 볼기짝을 후려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류의 분노에 너무나 익숙하기에, 또 익숙한 태도로 가만히 있었더니 기사를 올린 남자가 뭐라더라. 안 웃겨서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페미 만세 저는 페미입니다 화내지 마세요 뭐 이런 비슷한 농담을 했다. 그래서 "이 방은 원래 한남과 페미가 공존하는 유일한 공간이잖아요. 이제와서 한남들이 개심하면 유일한 장점이 사라지니까 그대로 계세요."라고 했다. 또 화내면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면서 썼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 남자도 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 여자 코미디언 내게 개인톡을 보내, 너무 짜증나고 그 방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십분 이해되지만 내 나이 오조오억살 이제 남은 건 오기뿐이라. 나는 그 남자들이 우리한테 질려서 먼저 나가기 전에 절대 떠나지 말자고 했다. 불쾌함 참는 거 새로운 일도 아니고, 먼저 자리 피하는 건 이제 지겨웠다. 그런 식으로 여자들은 남자들을 피해 안전지대에 모여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왔는데 결국 왜 여자들이 도망쳐서 자기들끼리 모이는지 남자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드러워서 피한다는 말은 내 사전에 없다. 드러운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무슨 말이든 할수 있다던 감전남은 그 다음부터 내가 무슨 세트만 쓰면(주로 임금차별이나 이성애자 여성의 성적 부자유에 대한 말들이긴 했지만... ) 가만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창녀 이야기를 썼다. 창녀가 부럽다, 창녀가 돈을 뜯어서 화가 난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창녀에게 크게 돈을 뜯긴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해 보였다. 한 친구는 내가 이 이야길 전해주자 "너 그러다 걔네한테 칼맞아"라고 했다. 나도 그런 상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어차피 매일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이니까. 어차피 30프로에 가까운 확률로 길에서 명상불명의 남자에게 죽임을 당할거라면 의식이 있을 때 하고싶은 말이라도 하고 죽는 편이 덜 억울하겠다.


그 오픈 채널은 일정 분량의 연습 세트를 업로드하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강퇴를 당하는 룰이 있다. 기사남과 감전남은 얼마 안 있어 연습량 부족으로 강퇴를 당했다. 잘못한 일은 따로 있는데 게을러서 쫓겨나니 그닥 기쁘진 않았다. 그리고 나와 여자 코미디언들은 남자 코미디언들 본받기로 했다. 아무리 재미없고, 언피씨하고, 대충 만들었더라도, 성실하게 농담을 쓰며 그 방에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피식대학의 영양 편 에피소드를 봤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캐릭터 탈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내가 평소 봐 오던 남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니 그보다 훨씬 고상하고 품위 있는 편이어서 아무런 충격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갑자기 화를 내서 다소 놀랐다) 코미디를 좋아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은 모두 피식대학을 숭배한다. 그들이 너무나 천재적인 세트를 짜고 누구나 웃지 않고 배길 수 없는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유튜브 구독자가 많고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숭배한다. 정말 오랫동안 남초 사회에서 생활하며 깨달은건 그 세계엔 논리도 의리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모든걸 관통하는 단 한가지 헤게모니는 권력이다. 악플(사실은, '비판'이고 '맞는 말'이겠지만)도 권력을 지키는 데서 오는 콜래트럴 데미지라 생각하는 그들의 멘탈리티를 보며 나는, '소 귀에 경 읽기'란 속담이 가진 여섯 글자의 효율성에 감탄했다.


그렇다. 뭐 딱히 할말이 없다. 계몽이나 설득을 할 계재도 아니라 생각된다. 화를 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그렇구나. 계속 그렇게 살든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란다. 뭐 이미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를 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