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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n 15. 2024

그냥 일기

6월 15일 

지난 번 일기에 고등학생 때 듣던 블루하츠의 <린다 린다 린다> 이야기를 쓰다 말았다. 이 무렵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취향의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방법을 깨우쳐 가고 있었다. 싸이월드 커뮤니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트윈 더 바> 라는 이름의 클럽이 있었다. 영화나 음악을 올리고 추천하는 곳이었고 영화는 캡쳐 화면들을 이어 붙여서, 음악은 싸이월드 BGM 기능이나 아니면 “윈앰프”를 임베딩해서 올리거나 하는 식이었다. 이 때는 불법 다운로드 및 유통이라기보다, 디지털 유통 판권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전 무주공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온라인 스트리밍과 디지털 카피라이트가 정립되며 영화와 음악의 무료 스니펫들이 난무하던 이 커뮤니티는 과거의 유물로 사라졌다. 그 사이 대학생이 된 나는 <비트윈더바>에서 영화와 음악의 목록을 매일 갱신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언급한 문헌들과 VCR 자료를 찾아보며 - <라쇼몽>, 프랑스 68혁명, 누벨바그 등 -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밴드, 포크 음악을 들으면 늘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내가 떠오르는 것 같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시기의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과 거기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다시 떠오른다. 처음으로 혼자 세상을 마주하며 느낀 혼란과 그 안에서 찾아낸 사소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 같은 것들.


이전 일기에서는 내 인생의 마일스톤이라 부를 수 있는 음악 몇 가지를 꼽으면서 시작했지만 생각했던 노래 목록도 까먹었고, 지금은 또 막상 별로 중요한 목록도 아니었던 것 같아서, 요즘 가장 나에게 영향이 컸던 음악들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나 써볼까 한다.


2024년 새로운 엔시티드림 콘서트에 다녀온 것이 음악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계기였다. 특히 이 보이밴드의 음악적 성장을 강렬하게 체감해서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 밴드셋이 등장했을 때의 그 생동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Fireflies>나 <Hello Future>처럼 원래도 벅차오르는 멜로디 라인 때문에 좋아하던 곡들을 밴드셋 편곡으로 들었을 때의 기쁜 충격. 공연장에 가서 느끼는 고양감에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몇 만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만드는 에너지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밴드셋 챕터의 말미에 팬 송인 <Broken Melodies>가 흐르고 공연장 안의 모두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를 때는 눈물이 차오를 정도였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이 공연을 라이브로 네 번을 보았다. 이 중 단 한번도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았고 네 번 똑같이 다 즐거웠으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켄드릭 라마의 <Meet the Grahams>는 음악적이라기보다 문학적으로 충격을 받은 노래였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문학적으로 풀어 쓴 글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싫어하는 감정에는 항상 그 사람 자신의 조각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이 노래에서는 켄드릭 라마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 가사는 속된 말로 '느개비'를 욕하는 내용이지만, 단순히 드레이크에 대한 비난을 넘어 켄드릭 라마 자신의 내면을 파헤쳐 보여주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당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이 왜 나를 화나게 만드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쓰여진 이 시처럼 무서운 훈계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난 평소에 직설적인 욕이나 원초적 비난은 쉽게 입 밖으로 뱉지만 무언가를 비판하기 위해 언어를 이토록 예리하게 다듬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럴 능력이 안되는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 너무 엄격하고 자신이 없어서기도 하다. 실컷 누군가를 저격하고 비판했는데 나에게서 그런 모습이 발견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내가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지만 우위에 서서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이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저차원적이었는지 나는 이 노래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얼마나 '흠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가느냐이다. 그 지향점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솔직하다면 가끔 할 수 있는 실수나 오판 정도는 크게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대로 실수하지 않고 허점을 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어딜 향해 가는지는 잊어버린지 오래인 채. 

 <Meet the Grahams>를 듣고 나는 드레이크처럼 살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켄드릭처럼 살아야지, 라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그럴 시간에 내 머릿속의 상념들이, 뭉뚱그려진 감정이 아닌 정제되고 벼려진 조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쉼없이 쓰기.


https://www.youtube.com/watch?v=euVzs4YdDtA&t=71s&pp=ygUQbWVldCB0aGUgZ3JhaGFtcw%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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