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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l 21. 2024

일본,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번

1편

대한민국에 살면 해외 여행을 다니기에 여러모로 불리하다.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나라가 하나도 없고, 휴가철에 해외 여행을 가려면 인천공항 출국 수속대에서 2시간 정도 줄을 서는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가장 가깝고 출입국이 자유로운 나라는 일본이라, 가장 관광객을 많이 보내는 나라 중 하나가 됐고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한번도 자발적으로, 혹은 혼자 가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장, 가족여행,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가장 많이 방문한 외국이 일본이다. 스스로 일본에 가고 싶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단 한번도 일본 여행기를 글로 남겨둔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그 국가와 문화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그 장소에서 있었던 즐거움과 소중함의 기억을 그냥 흘려 보내기엔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난생 처음 가본 건 수능이 끝난 직후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즐거웠던 것 같고, 신칸센까지 타면서 많은 곳을 돌아다닌 것 같은데, 너무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뭔가를 온전히 흡수하기엔 너무 어렸던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일본의 첫 기억은 2018년에서 2019년 정도 사이 출장으로 간 도쿄 도심으로 기억된다. 그 사이 한 두개의 회사를 이직했고 도쿄 시내의 여러 회사 사무실을 방문했음에도 모든 사무실이 롯본기 근처여서 호텔도 늘 그 근처에 묵었고, 항상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밥을 먹었다. 롯본기 모리타워에 있는 사무실들, 아니면 한 블락 건너에 있는 게임회사의 일본 지사만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중간 지하 아케이드에 있는 <아후리> 라멘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맞은편에 있는 6층짜리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했다. 낮에 시간이 조금 남으면 오모테산도나 아오야마 같은 곳에 가서 잠깐 아이쇼핑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무리들과도 도쿄 여행을 종종 가곤 했는데, 코로나 전에는 서울에 없는 브랜드와 가게가 많았고 그것들이 훨씬 '힙'하게 추앙받던 시절이어서 하루에 식당과 카페, 바를 몇 군데씩 다니고 긴자와 시부야의 거의 모든 백화점, 편집숍을 발바닥이 터질 때까지 돌아다녔다. 특히 세 명의 여자 친구들과 겨울에 갔던 여행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이 재밌었는데 점심부터 밤까지 와인을 마셨고, 거기에 더해 누군가 트럼프 카드 한 벌을 챙겨 와 테이블만 있으면 계속 넷이 둘러앉아 훌라를 쳤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도 식당에도 쳤고 밤에 숙소에 돌아와서는 편의점 다녀오기, 소파에서 자기 등의 벌칙을 걸고 소리를 꽥꽥 질러가며 게임을 했다. 그렇게 2019년 연말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거의 곧바로 해외 출입국이 금지 되었다. 


코로나로 2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 해외출장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져버린 듯 하다. 코로나 전에는 1박 2일짜리 도쿄 출장 가방을 챙기며 '굳이 내가 왜 직접 가서 해야하지'라고 생각했던 미팅들을, 이제 진짜로 한국에서 그냥 영상통화를 하라고 회사가 시키기 시작했다. 희안하게도 미국 오피스에 있는 사람들은 별 쓸데없는 이유로도 밥먹듯이 해외 출장을 다니는데 말이다. 아무튼 약간의 비행 공포증이 있는 나는, 굳이 비행기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면서까지 꼭 가고 싶은 곳들을 더 이상 손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20대 때와는 다르게 정말 가고 싶으면 어떻게든 갈 수 있다는 정신적 여유가 생기자, 여행에 대한 열망이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어떤 장소에 가서 무언가를 하는 나 자신'으로 전시용 자아를 만들던 시기도 지났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사람이 버글대는 관광지에 가거나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추어 여행을 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작년에 갔던 가족여행도 생각보다 즐거웠다. 나와 남동생이 성인이 된 후, 둘이서 혹은 다른 중장년들과 여행을 많이 다녀본 부모님이, 본인들이 익숙하고 잘 아는 장소인 삿포로로 행선지를 정하고 거의 모든 동선을 정했다. 나는 여행 비용을 댔고 동생은 현지 수행원처럼 여러가지 심부름을 했다. 어릴 때 부모님 돈으로 하던 가족여행보다 훨씬 평화롭고 밸런스가 잘 맞는 여행이었다. 부모님이 일본어도 잘 하고 워낙 자주 일본 여행을 다녀봐서 나는 바쁘단 핑계로 돈만 내고 모든 여행 계획을 맡긴 채 너무 아무것도 안하나 조금 찔렸는데, 오히려 아빠는 이번 여행에서 나와 동생에게 심적으로 크게 의지가 됐던 모양이다. 스프카레 가게에 라인 앱으로 대기를 걸었을 때나, 구글맵 평점이 높은 양고기 집을 찾아낼 때 등, 소소하게 현지에서 문제 해결을 할 때마다 아빠는 우리를 지나치게 대견스러워 했다. 엄마에게 어떻게 이렇게 애들을 훌륭한 어른으로 키웠냐고 몇번이나 말했다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알려줬다. 좋은 경치와 맛있는 음식도 좋았지만 '자식 키운 보람'에 행복해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효도가 이렇게 수월한 것이라면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6월의 가족여행 이후로도 지금까지 두번이나 더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일본에 갔는데, 한번은 교토였고 가장 최근엔 나고야에 다녀왔다.


(무엇이라도 업로드 하기 위해 일단 여기까지 쓰고 올린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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