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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Aug 31. 2023

4. 미래 지향적 재활 시간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허리 통증은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한의원, 신경 성형 시술, 그리고 3번의 신경 주사로도 잡히지 않았고, 무려 7개월 동안 나의 일상을 가파르게 무너뜨렸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후, 5분도 앉아있기 힘들고 다리가 저려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면서 결국 허리 수술을 하기로 했고, 계획보다 빨리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허리가 멀쩡하던 시절.

하루 평균 걸음 수가 15,000보를 찍을 만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내가 하루 걸음 20보에 불과할 정도로 누워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는 아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수술만 하고 나면 가고 싶었던 모든 곳을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라 고대했건만.

 역시 인생은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수술 당일. 수술은 9시에 시작되었고 내가 깨어난 시각은 12시. 전신마취는 원래 그런 걸까. 깨어난 후로도 정신이 계속 혼미해서, 밤 12시부터 계속 금식했지만 저녁도 결국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링거대에 걸려 내 몸으로 투여되고 있는 건 링거와 무통약이었는데, 링거는 알아서 들어왔지만 무통약은 15분에 한번씩 직접 눌러서 투여하는 방식이었다. 밤이 짙어지면서 희미했던 정신이 또렷해지기 시작했고, 하루종일 누워 잠에 들었다 깼다해서인지 잠이 오지 않던 나는 또렷해진 정신 덕분에 수술 부위의 통증이 또렷하게 느껴져 밤새 무통약을 투여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비어있는 무통약을 본 간호사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놀라시며 이틀 치 분량을 하룻밤만에 다 넣은 사람을 처음 본다는 게 아닌가. 보통은 밤에 잠을 자기 때문에 이틀에 한 통을 비운다고… 어쨌든 그렇게 수술 후 아무것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무통주사를 단시간 급격히 맞은 나는 또다시 하루종일 어지럽고 급기야 토까지 하며 이튿날을 보내게 된다.


마취와 무통약의 콤비로 정신이 나갈 것만 같던 이튿날이 지나고. 의식이 회복된 후, 이제 허리 보호대를 차고 보행대를 의지해 걸으라는 미션이 돌아왔다. (허리 수술 후 자주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수술 후 처음 일어나 보는 거라 간호사 선생님께서 부축을 해주셨는데, 다리와 허리에 힘이 없어 똑바로 서는 것조차 힘든 게 아닌가. 그리고 겨우 직립에 성공해 입원 병동층을 천천히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줄줄 나다니. 서고 걷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는 사실에 세상의 당연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절로 느껴졌다.


의학적 소견으로는, 나의 4번, 5번 디스크는 찢어져 안쪽에 균열이 생기고 변형이 된 상태라 가장 적합한 수술은 나사를 박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내시경 수술로 다리 저림을 잡고 허리의 급한 상태를 잠재웠는데, 그래서 회복이 좀 오래 걸릴 것이며 6주 동안 허리 보호대를 차고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회복 후에는 운동을 하면서 허리 상태를 잘 유지하다가 나이가 들면 결국 나사를 박아야 할 것이라는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허리가 꽤 오래 이 상태라면,

뭐 엄청나게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의 내가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살아오며 해왔던 일들을 심도있게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


 그래. 나는 어릴 때부터 사무직의 직종을 갖고 싶었던 적이 없었고, 이 회사를 퇴사하면 예전처럼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또 좋아하는 커피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었지. 그럼 이왕 누워서 지내야 하는 이 시간을 즐겨 보자. 그동안 일정들로 꽉꽉 채워졌던 내 다이어리가 이렇게 강제로 텅텅 비게 된 이 기간에,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로 다 해보자,고 결심했다.


 이런 선택을 자신있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가 여태껏 이것저것 펼쳐둔 나의 어중간한, 부업이라고 하기엔 수익이 너무 소소하지만 취미라고 표현하기엔 아쉬운 그런 부업 컬렉션들이 있었고, 그 부업들이 모두 누워서 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 플랫폼들인 덕분이었다.


회복 기간 6주.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실업급여를 받을 기간 6개월. 총 7개월 정도의 시간이 내게 허락되어 있었다. 이 7개월의 시간은 그저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펼쳐두었던 나의 어중간한 취미 겸 부업들을 마음껏 해보려 한다.

 어쩌면 이 기간이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선물같은 기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기간의 마감이 끝날 때까지 수익에 티끌만한 가능성도 안 보이는 부업들은 더 이상의 기대와 미련없이 취미로만 남겨둘 수 있게 될 것이니 내겐 여러모로 이득이 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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