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절과 강세를 알면 발음이 쉽다
많은 사람들이 유창한 영어발음을 원한다. 특별히 유창한 발음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좋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처럼 그리 흔하지는 않다. 좋은 발음은 좋은 인상을 준다. 비단 영어에 국한된 사실은 아니다. 한국어도 좋은 발음과 젠틀한 억양 또박또박한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에겐 괜찮은 인상이라는 평점을 준다.
영어권에서 공부한 사람들 중엔, 이런 유창한 발음을 안내해주는 책을 펴내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김치발음에 버터를 발라준다거나 하는 유치한 발상으로 접근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김치발음을 못미더워하고 소위 버터발음(?)을 동경한다. 그래서 그런 책들은 대체로 잘 팔리는 편이고, 돈이 되고, 그래서 그런 책들은 더 출판된다.
그러면서 또 한국사람들은 은근히 일본사람들의 영어발음을 놀리기도 한다. ‘맥도널드’를 ‘매그도나르도’ 로 읽는것으로 대표되는 음절추가습성은 별다른 이유없이 전 일본사람들의 시원찮은 영어발음을 이야기하는 흔한 사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맥도널드’ 나 ‘매그도나르도’나 둘 다 음절이 추가되어 발음된다는 측면에서는 거기서 거기이다. 유난히 한국사람들은 ‘맥도널드’가 ‘매그도나르도’보다 더 원음에 가깝다고 추측하는 것 같다. McDonald 를 ‘맥도널드’ 로 읽는 것이나, ‘매그도나르도’라고 읽는 것이나 두 가지 경우 모두 강세 없고, 음절 많아지고, 모음추가되는 현상은 모두 공통적인 것인데 말이다.
몇 년전인가 강남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영어발음향상을 위해 설소대 절제술이 유행한다는 뉴스가 꽤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며 한심해 했었지만, 여전히 발음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영어를 가르치는 학부모들 사이에선 여전한 것 같다. (참고로 설소대절제는 100년전 중국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할때도 자주 행해지던 것이었다) 영어책을 얼마나 빨리 읽는지, 얼마나 유창하게 발음하는지..그런것들로 아이들의 영어실력을 평가하고 또 자랑스러워 한다. 파닉스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바나나 대신 버내너, 오렌지 대신 어륀지를 가르친다. 그게 정말 교육기관에서 전문가가 가르쳐야 할만큼 중요한 것인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물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성인의 경우라도 특별히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괜찮은 발음을 위해 정말 책 한권의 분량만큼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지 의심하고 싶다. 예의상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사실은 한 페이지 정도의 정보만 알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강세, 음절, 그리고 자음과 모음에 대한 이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자음과 모음에 대한 이해는 언어적인 것이어서 공부를 해야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래봤자 한국어의 자음 모음의 구조에서 약간 더 추가되고 확장된 것뿐이니 별로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에 없는 소리를 발음하는 어려움 보다, 정작 한국사람들의 발음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은 바로 강세를 주는것과 ‘ㅡ’ ‘ㅣ’ 와 같은 본래 영어단어에는 없던 모음을 추가로 덧붙이는 경향이다.
영어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그동안 한국어에는 강세가 없다고 단순하게 가르쳤다. 물론 서울말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지방어에는 정말 다양하고 아름다운 강세가 있다. 강세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다가 ‘강약강약’ ‘약강약강’으로 이어지는 강세의 높고낮음이 전체 문장의 억양으로 형성되는 영어를 발음할 때 강세를 자연스럽게 주는 것은 어색하다.
‘아마존’이 ‘애머존’(굵은 글씨 강세)이 되고, ‘카메라’가 ‘캐머러’가 되는 이유다. 강세를 주려면 당연히 어디에 강세가 오는지 알아야 한다. 단어의 강세는 일일이 확인해서 기억해두어야 하는데, 사실 이런 기억은 외우는것이라기 보다, 자연스럽게 얻어지게 된다. 영어도 언어이기 때문이다. 10년 정도 영어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영어를 못한다는 학생들도 자연스러운 영어강세와 그렇지 않은 강세 두 가지를 제시했을 때 자연스러운 강세를 구분하는데에는 영어를 잘 하는 학생들만큼이나 좋은 귀와 정확한 언어적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음절은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서 하나의 음운단위를 구성하는 것이다. 한국어도 영어도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서 음절을 이루는 것은 동일하다. 영어에서 음절을 이루는데 사용되는 모음은 ‘a, e, i, o, u’ 이다. 영어의 강세는 보통 이들 모음위에 떨어진다. 영어단어 음절의 수는 결국 자음과 결합한 이 모음들의 수라고 생각해도 된다. cat, river, banana 같은 단어는 각각 1음절, 2음절, 3음절이 되는 것이다.
그럼, christmas, stress, hand 와 같은 단어에는 몇 개의 음절이 있을까? 2음절, 1음절 1음절이다. 보통 크리스마스, 스트레스, 핸드 라고 읽는 한국식 발음을 생각하면 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영어에는 없는 ‘ㅡ’ 모음이 추가되면서 본래 2음절이던 christ-mas 가 ‘크-리-스-마-스’ 5음절로 늘어난 것이다. 흔히 4음절 단어로 읽는 ‘스트레스’도 영어로는 1음절이다. 역시 본래 영어에 없는 ‘ㅡ’ 모음이 음절추가의 주범이다. 이렇게 모음을 추가하는 경향은 영어를 발음해도 여전히 그 소리를 한국어스럽게 만든다. 일본어의 경우, 단지 이렇게 모음을 추가하는 경향이 한국어보다 조금 더 많은 것 뿐이다. 한국어는 ‘약속’ 이라는 단어처럼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를 허락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어의 경우 자음으로 단어가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음절이 늘어나는 것이다. 영어처럼 발음하는 것은 간단하다. 음절을 추가해서 넣으려는 습관만 조금 수정하면 된다.
유창한 발음은 좋은 인상을 준다. 이것은 영어 뿐 아니라 한국어에도 해당한다. 많은 학생들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중 대부분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에는 많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한국어를 말하는 습관이 분명 영어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어를 말하는게 정확하지 않은데 영어발음이 유창할 수는 없다. 평소 대화에 능숙하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영어로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은 발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 효과는 100퍼센트 보장한다. 영어로 쓰여진 글을 아무거나 붙잡고 하루 10분정도만 큰소리로 읽는 것이다. 막상 해보면 10분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걸 녹음해서 들어보면 자신의 발음이 어떤지 훨씬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갑작스런 행동은 가족들을 걱정하게 할수도 있으니 미리 공지를 하고 시작하시길. 그리고 이따금씩 한국어로 된 책을 소리내서 읽어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