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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Kim Aug 04. 2019

잃어버린 마당을 찾아서


     집은 그 자체로 완전히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어쩐지 어린시절 내가 집이라는 단어를 쓸 때엔 , 항상 그 물리적인 속성을 염두에 두고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어린시절 기억속의 집은 그 물리적인 속성만큼이나 뚜렷한 많은 추억이 집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그때 판자촌은 지금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만큼이나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는 흔한 동네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술한 집들은 늘 어딘가 비밀의 공간이 남아 있었고, 또 그곳은 아무런 용도로도 사용할 수 없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들에겐 매우 요긴한 공간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덕에서 바라본 동네의 모습은 참으로 아메리칸 퀼트와 비슷하다고 해야겠다. 집들 지붕위엔 정말 다양한 사물들이 얹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검고 붉은 기와들, 양철지붕, 플라스틱 지붕, 타이어가 올려져 있기도 하고, 백벽돌이 파란 포장마차 비닐을 누르고 있기도 했으며, 내가 살던 집 지붕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어서 물결무늬로 구부러진 플라스틱 슬레이트로 막았던 창 아닌 창이 있기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정말 자연스러운 자연채광이라고 해야할까. 신길4동의 어느 여름 저녁 주홍빛으로 쏟아지던 천정의 빛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로마에 있다는 판테온의 오큘루스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짐작이 간다. 


     가난한 판자집들이었지만, 그땐 꽤나 넉넉한 공간을 우리의 것으로 가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정말 가난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집들은 모두 마당이 있었으니까. 직접 사용하는 면적을 계산해 본다면, 대개의 경우 마당이 집보다 훨씬 더 넓었었다. 허름한 방 한칸에서 어머니와 다섯 형제들이 함께 생활하던 열살무렵의 집은, 주변을 둘러싼 마당이 있는 낡은 저층 건물들 중 하나였다. 거기에는 작은 화단도 있었고, 뒷쪽에는 감나무나 탱자나무 같은 것들도 훌쩍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는 많은 세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대문과 가까운 곳에 살던 사람들, 우리집 벽과 등을 마주댄 집의 사람들, 마당의 수돗가 옆에 살던 사람들, 그 옆집에 살던 사람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엔 밤일을 나가는듯한 아줌마가 이따금씩 마당의 수돗가에서 알몸을 씻었고, 열살 남짓 아이들은 중학생 형들과 함께 그걸 몰래 훔쳐보곤 했었다. 대문을 나서지 않고도, 마당안에서 우린 어지간한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같은 마당을 사용한다는 것, 그것은 거기에 속한 세대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공동체를 이끌어주는 것 같은 공간이었던것 같다. 


    누군가의 집에 놀러가는 것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과 같았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은, 일단, 내가 전에 밟아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 한번도 넘겨본 적이 없었을 담장을 따라, 한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양의 대문을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친구의 집은 막다른 골목에 있기도 했고, 달동네 꼭대기에 있기도 했으며, 학교 후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근사한 양옥집이기도 했다. 화장실이 거실에 있는 친구의 집도 있었지만, 화장실이 대문 바깥에 있는 친구의 집도 있었고, 다락방이 있는 친구의 집이 있는가 하면, 부서진 연탄이 뒹구는 창고와, 부서진 가구, 낡은 책들, 고장난 선풍기 따위가 매장된 지하실이 딸린 친구의 집도 있었다.


     친구들의 집들은 서로 너무 달랐고, 그래서 한 친구의 집을 가보았던 경험은 또 다른 친구의 집을 미리 상상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깔끔하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자신의 집인지 경계가 분명한 친구의 집도 있었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자신의 집인지 경계가 모호한 집도 있었다. 소나무와 측백이 둘러싼 푸른 잔디밭 위로 독일산 세퍼드가 켁켁 거리며 내 신발만한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있는 친구의 집도 있었고, 귀퉁이에 대파와 깻잎이며 가지 따위가 심어져 있는 집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의 집 옥상에는 자기가 키우던 토끼가 가죽만 남긴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기도 했고, 어떤 친구의 지하실에서는 팔각성냥과 무협지쪼가리로 위험한 불장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친구의 집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도 제각기 달랐다. 은행나무가 있었고, 단풍나무가 있었고, 드물게 가시가 뾰족 솟아있는 탱자나무도 있었다. 감나무가 있던 친구의 집에서는 담장 너머로 넘어간 가지에 매달린 감 때문에 옆집과 싸우기도 했었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은행나무 집에서는 가을마다 단풍잎 침대위를 뒹굴기도 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심었다는 대추나무에서 설익은 연둣빛 대추를 따먹기도 했고, 막다른 골목 곰보아저씨 집에 담장 밖으로 매달려 있는 모과를 따서 친구의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아무도 없다는 친구의 집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장소였다. 부엌을 뒤지고, 창고와 다락을 헤집으며, 큰방에서 작은방으로 갈때는, 마치 희망봉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과장되게 뿌듯해하기도 했다. 친구의 집에서 찾을 수 있는 놀라운 흥분은 단칸방이라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장롱을 열고, 서럽을 열고, 친구의 책상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성한것 하나 없는 잡동사니들은 값없는 보물들이었다. 친구가 아끼던 카시오 전자시계를 훔쳐보며, 비슷한 여러개의 장난감 자동차중 한 개를 슬그머니 내 주머니에 넣어올 수 있었던 친구의 집은, 늘 찾아갈 때마다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골목길이 사라졌다. 유년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기억이 남아있을 장소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길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변해간다. 집들은 마치 레고블럭같이 되어버렸다. 어디서 가져다 어디에 갖다 놓아도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잘 맞아떨어진다. 내 친구의 집과, 내 친구의 친구의 집과,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집은 모두 비슷하다. 심지어 한 친구의 집에 놀러가 보기도 전에, 이젠 친구의 집이 뻔히 그려진다. 어디에 텔레비전이 있고, 어디에 냉장고가 있는지. 서랍속의 비밀들은 대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로 옮겨졌고, 비밀스런 공간도 없으며, 고양이가 낮잠을 잘 만한 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친구의 집은 어쩌다 갈 때엔 찾을 수 없어서 물어야 한다. 몇동 몇호라고. 웃기는 일이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 갈때마다 아주 근사한 차이로 헷갈려 하다니. 이제 집들은 모두 숫자로 찾아지거나 혹은 네비게이션으로 찾아간다. 설명을 듣고 긴가민가 고민하던 골목길은 이제 없다. 


     어린시절 살던 집들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비싼, 요즘의 집들을 생각해본다. 생각해 본지 10초도 안되어 내린 결론. 정말 집뿐인 공간이다. 아파트는 모든 공간을 남김없이 철저하게 활용한다. 100퍼센트라는 말은 끔찍한 말이다. 여분이나, 남겨진, 비밀의 공간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마당도 없다. 다락도 없다. 마루밑 비밀의 창고 같은것도, 연탄을 쌓아두던 광도 없다. 아파트엔 오로지 평면도에 그려진 공간의 분할로서의 집 뿐이다. 어린시절, 정말 우리는 가끔씩 넓은 마당에 뾰족한 짱돌을 들고 선을 그으며 집인것처럼 흉내를 내곤 했다. 여긴 안방, 여긴 부엌, 여긴 화장실, 여긴 내방. 그런 평면적인 집이 조금 커져서 아파트가 된 것 아닌가. 침대가 가구가 아닌 것처럼 아파트는 집이 아닌 것 같다. 아파트는 커다란 사물함이 되어간다. 그 안에 사람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두고 다닌다. 가전제품, 음식, 옷, 가구, 개, 심지어 가족까지 두고 다니는 가장이 한둘이 아니다. 집들이 사라져 간다. 


     20세기 초 자연의 리듬을 버리고 기계적인 시간을 자기 삶의 축으로 받아들인 현대문명을 안타까워하며 마르셀 푸르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썼었다. 그렇다면, 자연의 공간을 버리고 규격화된 공간속에서 자발적인 사육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21세기, 누군가는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비장한 서사시를 한편 써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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