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hyun Kim Aug 05. 2019

본토발음? 정통영어?

영어콤플렉스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영어울렁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경험이 이제는 새로운 용어까지 말들어낼 만큼 사회문화적인 현상이 되었다. 영어컴플렉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일단 사람들은 자신의 능숙하지 않은 발음을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자기가 말하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것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다. 한국어적인 표현을 영어로 직역한 것 보다 정말 영어적인 표현을 배우고 쓰는 것에 열광한다. 심지어 의성어를 흉내내고(Whoops!)  손가락으로 셀 때 엄지부터 펴거나 손가락 따옴표를 쓰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띈다. 할로윈은 강남권의 몇몇 사람들이 즐기는 작은 축제에서 점점 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분위기다. 시간이 지나면 할로윈도 크리스마스처럼 한국의 자연스러운 휴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정통영어를 원한다. 마치 정통 영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 본토발음이라면 내용을 불문하고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 본토가 어디인지 그 사람들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막연히 영어를 쓰는 나라들은 다 발음이 똑같다고 생각하는걸까? 아니면 그 편차가 있는 것을 고려하고 본토영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걸까? 영어를 사용하는 본토에 해당하는 영국,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의 발음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는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알던 한 아일랜드 출신 영어교사는 런던출신의 친구들에게 발음이 왜 그렇게 이상하느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그만큼 본토발음이라는 개념은 그 출처가 의심스럽다.       


일단 정통영어라는 표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몇 년전까지만 해도 정통영어 혹은 영국식 영어는 매우 수준 높고 세련된 영어라는 등식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사회적 경험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워러” 대신 “우워타” 라고 말하면 기내 서비스가 달라졌다나 뭐라나. 아직 BBC English 혹은 Queen's English 와 같은 표현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국가간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나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쇼핑몰에 가는 것 만큼이나 흔하고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영어에 대해서도 다양한 영어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Native Speaker는 보통 UK, US, Ireland, Australia, New Zealand 출신의 백인을 말한다. 당연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흑인들도 아시아인들도, 교포들도 있지만 유독 한국사회는 영어라면 백인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는 국가가 70여개국에 이른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당연히 그 모든 나라들의 문화, 인종, 종교는 아주 다양하다. 10여 년전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이제 영어는 English 가 아니라 Englishes라고 주장하며 영어는 이제 영국과 미국만의 언어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3년동안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미국의 대학졸업생들 중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를 희망한 장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기본적인 한국어 교육과정이 끝나면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은 한국의 지방 중,고등학교에 원어민 교사로 파견을 나가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중 미국의 교포2세 여학생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하던 중학교에서 매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교포였기 때문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 하는 편이었는데, 바로 그 점이 한국학생들에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백인 원어민 교사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협조적이던 학생들은 교포2세 여학생에게는 매우 불손하고 매사 장난치듯 수업진행을 어렵게 했던 것이다. 그 중학교 학생들은 아마도 교포2세 여학생에게 영어를 배우는게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불만은 결국 수업시간의 힘겨움으로 여학생에게 고스란히 돌아갔고, 결국 여학생은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동료교사들은 물론, 풀브라이트 재단과도 아무런 상의 없이 미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에피소드로 기억된다.


강남을 비롯한 한국 대부분의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과 학생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놀라운 상관관계가 있다. 대부분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백인 영어교사를 흑인이나 타인종의 영어교사보다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선호라고 썼지만, 여기에는 훨씬 더 심각한 문화적인 차별의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차별의 문제는 실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실제 많은 무자격 영어권 백인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교육적 차원의 직업이라기보다는 몇시간 야부리까면서 놀아주며 높은 페이를 받고 여학생들과는 그렇고 그런 관계를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 한국에서는 백인 네이티브 스피커라는 일종의 경외감조차 불러일으키는 대접을 받는다면 자기 나라에서 백수로 빈둥대는 것보다 한국에 와서 돈도 벌고 즐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정통영어, 본토발음 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한국의 영어교육은 실용영어를 강조하면서 불게 된 회화열풍이 가세하면서 원어민에 대한 수요를 급격하게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학교며 학원에서는 원어민 교사의 신상 및 자격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확인절차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채용하는 사례들이 빈번해졌다. 직업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청담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영어권 교포여성은 한국에 오기 전 포르노 영화를 찍었던 사실이 중학생 제자들에 의해서 밝혀지기도 했고, 심지어 미국 FBI 에서 살인혐의로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백인남성이 버젓이 강남 영어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었다. 백인 영어 사용자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그 우매성을 경제적으로 악용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웃지못할 풍경이다. 지금도 금요일밤 홍대앞이나 이태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꽤 불량스러워 보이는 백인청년들은 낮에는 지킬같은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밤이면 하이드처럼 술과 연애를 즐긴다. 거기엔 늘 한국인 친구들이 동료처럼, 여자친구처럼 애인처럼 자리를 늘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백인들 중에는 말 그대로 불법체류자의 신분인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이들 백인 불법체류자를 검거하기 위해 강남이나 청담동의 영어학원에 들이닥쳐서 원어민 교사를 강제출국시겼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다. 종종 베트남 노동자나 필리핀 노동자가 안산이나 수원등지의 공장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일하다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당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백인이 강제로 출국당했다는 뉴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글쎄, 유일하게 비슷한 기사라면, 백인 청년이 카사노바처럼 여러 한국여자들과 놀아나다 스스로 도망치듯 출국한 사건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마당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