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변화를 뜻한다. 배우기 전의 나와 배운 후의 나는 무엇인가 다르다. 어떤 경험을 한 뒤 우리의 뇌는 명백한 변화를 겪는다. 그것이 새로운 시냅스의 형성이던 단지 단기 기억으로만 머물던 상관없이 말이다. 또한 그것이 선한지 악한 지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났던 우리가 다양한 '배움'을 통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배움'은 우리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의 일부분으로 현재 우리는 이러한 배움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배움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현재의 배움은 미래의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배움의 원동력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떠한 것을 배워야 하는가?
어린 시절 우리는 무엇이든 경험하고자 했다. 주위를 둘러싸는 모든 것이 미지의 세계이며 명백히 나와는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전체로 이루어진 자연을 만지고 느끼고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통해 작은 것들을 구분해 내 갔다. 꽃으로 이름을 붙이게 되면 그것은 자연에서 꽃으로 분화된다. 돌로 이름 붙이게 되는 순간 자연에서 돌로 분화되어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이런 만지고 느끼고 이름을 짓어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탐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우리 안에 여백이 많았는지 탐색의 행위를 통해 우리 머릿속을 채우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뇌 안쪽 여백에 의해 생기는 음압은 주위의 모든 물체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으로 대체되어 적극적인 탐색 행위에 우리는 몰두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최고의 배움의 주체였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성장하며 머릿속이 차오르고 세상을 이해해가며 우리 뇌 안쪽의 여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여백이 가지는 음압도 많이 줄어 우리는 자연의 오직 일부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호기심의 감퇴는 탐색 행위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성장한 우리 뇌는 우리의 탐색 행위를 때론 허가하기도 하고 허가하지 않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허가증이다. 허가증을 발급받는 기준은 간단하다. '강한 동기'이다. 어떤 특정 연유에서든 강한 동기를 지니게 되면 뇌는 허가증을 발급함과 동시에 신경회로 역시 활성화된다. 탐색에 적합한 뇌로 준비하는 것이다. 강한 동기는 즐거움이나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 것에서 남을 뛰어넘고 싶어 하는 마음,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강한 동기는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과 가깝다. 공부를 해야지, 돈을 아껴 써야지 같은 이성적 판단 같은 것들은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데 항상 실패하는 이유다. 꼴등을 해서 친구와 비교당하며 화가 나거나 일등이 주는 우월감과 같은 감정이 오히려 공부를 촉진시키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들은 이 감정을 다루는 법을 통달해 있다. 그들은 상황에 맞춰 분노하거나 감정을 절제할 수 있고 동기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다.
감정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강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강한 동기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을 짜 그대로 실행할 수 있다. 예컨대 필요하다면 의과대학 학생이 전혀 다른 영역인 코딩을 공부해서 프로그래밍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 강한 동기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혹은 보다 심도 있는 논문 검색에 자신의 동기를 부여하여 보다 깊은 의학적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강한 동기는 목표 달성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정을 억압하고 절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때론 발화시켜 더 강한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능동적 배움에 한해서는 강한 동기에 의한 탐색 활동은 효율적인 배움의 과정을 이루어 낸다. 배움에는 수동적 배움도 존재한다. 뜻하지 않은 강한 충격이나 경험, 사건들은 내가 배우고자 하지 않았음에도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만들어 낸다. 어릴 적 어머니와의 사별, 전쟁 중의 트라우마, 학창 시절 중의 따돌림의 경험들은 우리의 머릿속을 뒤흔들고 세계관을 바꿔놓는다. 이런 배움은 운명의 파도처럼 뜻하지 않게 들이닥쳐 저항할 수 없이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다. 배움은 우리를 앞으로 전진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후퇴시킬 수 도 있다.
로마의 위대한 현제 중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사색과 철학을 '명상록'이라는 저서에 담았다. 지금은 유명한 고전이 되어 수 천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 책에서 그는 가장 먼저 이러한 이야기 한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평판과 추억 덕분에 나는 겸손과 남자다운 기백을 갖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 덕분에 나는 경건과 선심과 나쁜 짓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는 마음과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태도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
나의 외증조부 덕분에 나는 공공의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으로 훌륭한 선생들을 모실 수 있었고 또 그런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몇 페이지에 걸쳐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배웠던 내용들에 대해 저술한다. 그의 명상록은 그렇게 배움의 자세로 시작한다. 그는 인자하고 자비로운 자세로 20년의 치세 간 백성들의 사랑을 받은 황제로 역사에 남게 된다. 고대 중국에서도 배움을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子曰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논어
공자를 포함하여 역사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배우기를 즐거워하며 그것을 사유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 나는 아주 쉽게 도서관에서 명상록을 책을 빌릴 수 있었다. 플라톤의 저서는 번역되어 도서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노자와 공자의 이야기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루스벨트와 링컨 대통령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역사의 누적과 정보의 접근성의 향상으로 그 어느 때 보다 '배움'은 우리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움은 우리 안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닫힌 마음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우리 안에 있는 사고의 편향은 새로운 것의 접근을 차단하고 스스로 문을 닫아 우리 안에 닫힌 세계를 이룬다. 지금 우리 세계는 어느 때 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율 주행과 공유경제의 시대가 다가온다. AI는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지능을 곧 넘어설 것처럼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개인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자연은 언제나 그러하듯 생명에게 변하라고 이야기한다. 성공적 변화는 곧 생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