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ater of Valencia
당신이 발렌시아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곳을 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우연이라 말하기에는 신기한 일들이 살면서 가끔 생기는데 나에게도 일어나더군요. 처음엔 조금 망설였습니다. 우리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한 시간은 불과 5분 정도였죠. 서로의 이름과 사는 곳을 묻고는 그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니, 지구 반대편 발렌시아에 갑자기 나타난다 말하는 건 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내가 가졌던 감정을 확신해서인지 아니면 그 감정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차를 타면 항상 잠드는 사람인데 심지어 이른 아침인데 잠들지 못했습니다. 대신 멈추는 역마다 창가에 기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야만 시간이 빨리 가더라고요.
도착 시간에 역으로 나온 다던 당신은 멀리서도 금방 알아보겠더군요. 5분의 만남 후 가진 두 번째 만남인데 당신의 미소는 아름답고 친절했습니다. 당신이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파에야 맛은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함께 마신 한 잔의 레드와인의 달콤함은 아직도 생생하답니다.
아무 정보도 없던 나는 당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걸었습니다. 겨울 바다를 걷고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몰래 당신을 찍다 카메라와 눈이 마주쳤지만 당신은 더 밝게 웃어주더군요. 그렇게 당신 사진들이 쌓여가니 더 많은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깜박이던 저녁 우리는 한 노천카페에 있었습니다. Water of Valencia로 우리의 만남을 축하했지만 마음 한편 얼마 남지 않은 밤을 달랬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 어떤 의미를 담은 단어들로 여기에 있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지 무수한 문장들을 조합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피아노 줄처럼 나누어진 감정의 선에 조율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던 순간 당신은 Porto에 가면 사랑에 빠질 거 같다 말했습니다. 좁고 경사진 골목들을 지나 도우로 강에 도착해 바라보는 노을은 이별한 사랑도 더 아름답게 만든다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바로 Porto에 간다고 했습니다. 도우로 강에서 노을을 찍어서 보내주겠다고. 그리고 그곳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발렌시아에 돌아올 거 같았습니다. 어디든 가서 숨겨진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야 했습니다. 당신과 헤어진 후 낯선 호텔에서 혼자 Porto의 낮과 밤을 여행했습니다.
다음 날 당신은 이별을 인사하기보다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자고 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첫 번째 목요일에 Porto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장난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너무나 놀란 나였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짧은 미소와 함께 세 번째 만남의 날짜만 기억하고 기차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