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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S Mar 30. 2022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게 속상하고 무서워.

한 발짝만 더 가면 봄이다. 아이의 3월은 어느 때보다 손이 많이 가고 또 어수선하다. 올해 어린이집을 수료하고 유치원에 입학하게 된 딸은 네 배 가까이 불어난 원아수만큼이나 조금 더 큰 사회를 경험하게 될 테다.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후 분위기가 제법 다르다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아이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시시콜콜 표출하기 시작했다. 주로, 유치원에 가서 울면 어떡하지, 엄마가 보고싶으면 어떡하지, 체육수업이 힘들면 어떡하지 따위의 것들이다. 그러다 돌연 그 앙증맞은 입으로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게 너무 속상하고 무서워.”라는 예상치 못한 소리를 뱉어냈다.

괜찮아, 어리니까 울 수도 있어, 엄마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유치원에서 하는 체육도 어린이집 체육이랑 똑같아 라고 곧장 다독여 주었지만, 아이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적당히 대꾸할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응가를 한 후에도 변기물을 내리며 “잘 가, 좋은 데 가라~”고 인사를 하는 다정이 넘치는 너에게, 1년이 다 되도록 한 반에서 지낸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일일까.



새삼 돌아보니 아이의 엄마도 그랬다. 매년 초, 반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친구가 바뀌고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나는 봄의 열병처럼 지나간 것들을 좇았다. 어떤 날은 새로운 세계로 떠난 각각의 인물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며 지낼까를 상상하는 데 온 하루를 썼다. 또 어떤 날은 졸업한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걷고는, 건물 벽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조그만 낙서로 내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떠나보내는 슬픔과 두려움을 소화하려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나서 겪은 3월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대학 시절에는 1학년 때 만난 동기들과 4년 내내 징그럽도록 붙어다녔고, 회사에서는 전보발령이 나기 전까진 같은 사무실에서 거의 같은 동료들과 몇 해를 함께 일했다. 일년 단위로 생기던 변화의 주기는 3년, 4년, 혹은 그 이상으로 길어졌고 이별을 애도할 일은 좀처럼 없었다. 새 봄은 안정적이지만 단조로웠고, 새 학기의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그런 건 무서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요 근래 나 기분이 좀 이상했어.”

아이를 키우다가 친해진 육아동지 J와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언니, 왜?”

느닷없는 나의 고백에 J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냥.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제자리인 것만 같아서. 왜, 어릴 때는 3월이 되면 모두 새롭게 출발했잖아. 입학을 하고 입사를 하고, 하다못해 교실이랑 책이라도 바뀌었잖아. 긴장되면서도 두근대는 그 분위기…. 그런데 이제 나한테는 그럴 일이 없더라구.”

“아 맞아, 언니. 나도 그래.”

우리는 소싯적 오락실에서 하던 ‘다른그림찾기’처럼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변화가 미미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서로를 위로할 별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애꿎은 커피만 홀짝거렸다.



실상 무엇이 더 낫다고는 가늠할 수 없다. 그 때는 그 때대로 괜찮았고, 지금은 지금대로 괜찮다. 다만 둘 다 겪어본 경험자로서 딸에게는 말해주고 싶다.

“맞아, 세연아. 네 말처럼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건, 아니 꼭 친구가 아니더라도 인연을 맺은 그 무언가와 떨어지는 건 속상하고 무서운 일이야. 하지만 헤어짐은 또다른 만남의 시작이라고들 하잖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 다시 설렐 수 있고 몰랐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단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너의 세계는 더욱 풍성하고 단단해질 거야. 나중에는 이별조차 그리울 때가 올테니 마음껏 즐겨보렴.”



아이는 수료식 때 할 노래라며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이젠 안녕>을 시도때도 없이 불러댄다. 보아하니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인데 그래도 좋다고 짹짹거린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오늘밤에도 어린이집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머리맡에 소중히 두고 자는 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예쁘게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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