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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이야기 Mar 04. 2017

내 안에 눌러놓았던 것들

-꽉 막힌 감정 내리기-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칭한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너무나 사적인 이 장소는 내 안의 쌓인 찌꺼기와 찌꺼지 같은 근심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 버릴수 있는 장소 중에 하나다. 해우소라는 화장실이 내 꿈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화장실에 들어왔다. 3칸 중 양쪽 2칸은 변기 뚜껑이 닫혀있고 주변에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다.
가운 데칸은 어떤 여자가 사용 중인 거 같다. 마침 그 여자가 나오고 서둘러 들어갔는데 여기도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다.


3칸의 화장실 중 어느 하나에서도 나는 용변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꿈에서 깼다. 마음껏 배설할 수 없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왜 화장실은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돼버린 걸까.


며칠간 나는 응급실과 병원을 오갔다. 엄마와 119에 타고 이동하는 순간부터 내게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엄마로 인해 병원에 가는 일이 꽤 익숙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장에서 엄마 손을 놓친 아이 같았다. 나를 잃어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과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두려움과 상관없이 병원에서는 순차적으로 검사가 진행됐고,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회사에 연락도 했다. 일단 괜찮다는 진단하에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아침에 안방 문을 살며시 열어 엄마가 정말 자고 있는지를 체크해 보곤 했다.


부모의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나이다.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도 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며칠간 나는 온갖 종류의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다녔다. 그 덩어리들은 점점 커져 가슴을 꽉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회사를 나와야 했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아야 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순간 두려움이 현실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눌러두고 어디에서도 쏫을수 없던 것들은 배설되지 못한 채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지하철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재빨리 일어나 내려 화장실로 가서는 한참을 울었다.

꾹꾹 눌러놓았던 내 감정의 배설물들은 의식을 저 멀리 보내고 잠시 무의식에 그 자리를 양보했을 때 밀려 나왔다. 지하철에서 이동하는 시간은 보통 1시간 내외이다. 1시간을 의식적으로 바라본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서있거나 , 앉아있는다는 건 지루하고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에서의 1시간은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내가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으로 삶에서 존재했지만 습관적으로 잊어버리는 시간이다. 습관적으로 잊어버리는 시간에 나를 지배하는 건 나의 무의식이다.


의식에서 소화되지 못한 감정은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 차곡 차곡 쌓이고 있었다. 종종 비집고 나올 틈을 보기도 하고 마땅한 장소를 찾기도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주변의 잡동사니 때문인지 혼란한 틈에 그냥 쏙 숨어버렸다.

 

그렇게 쌓인 불안과 두려움들은 그대로 내 안에 머물러있다 터져나왔다. 혼자서 울고 나서야 답답함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 한켠이 시원하게 뚫려 숨도 편안했다. 이렇게 되기 전에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면 괜찮았을까. 울지 않고 말할 수 있었을까. 한번 쏫아내고 난 이후에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엄마는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의 질병은 아니었고 그 후 오랜 치료기간으로 현재는 회복되었다.)


이건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이슈이다. 이야기를 나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내게는 너무나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잘 들어주고 누가 우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나는 나인데 스스로의 상황과 슬픔을 나누는 건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왜 항상 속히 말하는 쿨한 모습만 보이려 하는 걸까.


아마도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데서 오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큰 감정들은 내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고 뒤돌아 외면하고 앉아 있던 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안 보고 안 느끼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뻔한 옛말을 되내어 본다. 물론 예전보다는 내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 작은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나눈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멋진 일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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