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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이야기 Jan 25. 2018

예민함 꺼내기

-나의 아티스트에게-

작년에 꾸었던 꿈이 있다. 아이돌 그룹 A의 탈퇴한 멤버가 나오는 꿈이었다. A그룹이 몇 명의 멤버로 구성이 되어 있고,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도 몰랐지만, 탈퇴 사건은 연예란에 쏟아지던 기사 타이틀로 알고 있었다. 그 멤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관. 종.이었다. 관심이 없었기에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탈퇴라는 단어에 꽂혀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너무 흐릿하고 짧은 꿈이기에 잊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A그룹의 데뷔 초 영상을 보게 되었다. 탈퇴한 멤버가 어떻고 기획사와 멤버, 팬들 간에 지나온 시간에 어떤 이야기와 사연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신인이라 약간은 어설픈 무대 위에서 탈퇴한 그 멤버는 아이돌 특유의 외모가 아니어도 사람의 눈을 끄는 매력이 있었고, 음색도 실력도 좋았다. 다른 이들의 눈에도 분명 이런 것들이 보였을 것이고, 팀 내에서도 꽤 인기가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건강과 자신만의 음악을 위해서라는 이유 등으로 팀에서 탈퇴했다.


이제 그는 편히, 그렇게 하고 싶던 음악을 하고 있을까? 지금 그가 하는 음악은 그룹에 있었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음악이었다. 어떤 음악이 더 좋고 나쁘고를 떠나 기획사에 있을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나 원했던 자리가 너무나 큰 틀이자 벽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우리나라 연예계는 이제 스타를 만든다. 정확하고 체계화된 시스템과 규율 아래 아티스트 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더해진다. 연예인들은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사실 둘에 대한 관심과 도덕성은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치인들이 아이돌급 외모와 실력을 지녀야 하니 어려울 것 같다. ㅎㅎ 대중도 기획사도 아티스트에게 더 좋은 것,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지는 제약은 생각보다 째째? 하다. 개인 외출은 허락을 받아야 하고 여행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그리고 일부는 팬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 명예와 돈을 얻었지만 그들이 받는 제약은 돈이 없고 시간이 없는 20대가 받는 것과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그만큼 받으니 참아야 한다고? 다른 이가 너무나 원하던 자리이기에 버텨야 한다고? 잘 모르겠다. 누가 누구에게 참고 버티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잘 알지도 못했던, 사건의 중심이었던 멤버가 작년에 내 꿈속에 나왔고 최근 며칠 한참이나 지나버린 사건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신은 그에게 재능과(노력에 재능이 플러스된 사람인 건 분명하다.) 예민함을 같이 주었다. 아티스트라면 축북이자 저주 같지 않을까?


남들과는 다른 감성을 지녔기에 음악을 할 수도 있었지만 또 그렇기에 고통받는다. 예민한 감각으로 새로운 걸 만들고 표현하며, 다른 이들보다 더 섬세한 감각을 느꼈을 것이고 보았을 것이다. 재능의 예민함은 그렇게 발휘되어 그를 아티스트로 만들었지만 어딘가 어긋난 것 같은 불안함으로 인해 생긴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와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관계에서 그런 구멍은 오해와 뜻하지 않는 사건을 불러온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서로가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이들은 각자 숙제를 안게 되었다. 누구 하나 없다고 해서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A그룹은 잘 시스템 되어 있는 회사의 지원을 받을 것이고, 빠진 멤버의 빈자리를 나눠 채우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 결과 다른 멤버의 매력과 실력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기의 길을 찾아간 사람은 틀과 규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았다. 아이돌 때와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었고, 그 음악은 진짜 좋았다! (개인적으로 취향저격이었다) 그에겐 든든한 지원군과 이해해주는 동료를 만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관계에서 자신의 예민함에 대해서, 그 예민함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아이돌 그룹도 탈퇴한 멤버도 다 팬이 되었다. 이 맛에 덕질(!) 하나보다)


유머 코드가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예민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꿈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일기장을 이리저리 뒤졌지만 99.9%의 꿈을 기록하는 내가 기록하지 않은 0.1%의 꿈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이 꿈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조금 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예민함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스로의 예민함도, 타인의 예민함도 드러나기 시작하면 꿈속 멤버처럼 내 안에서 탈퇴해 그것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예민한 사람 옆에 있는 건 때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돼 가까이하기 버거울 때가 있다. 결국 이런 관계는 정리되고 만다. 이런 방식은 타인을 넘어 스스로에게도 행해진다. 아니 스스로에게 더 가혹해진다. 스스로의 예민함은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되어 더 쉽게 묵살해 버리는 것이다.


예민함을 제거하면 문제는 생기지 않지만 예민함에서 얻는 것들도 같이 사라진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예민함은 중요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미묘하게 다른 냄새를 맡고, 맛을 봐 상한 음식을 피하고, 미세한 직관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다. 작은 감정의 결들은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인 것이다.


평소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격 대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보다는 빨리 배를 채울 음식이라면 웬만해선 괜찮았다. 불편한 마음이 생겨났을 때는 입을 닫아버렸다. 한정된 재화와 시간 안에서, 서로 너무나 다른 관계 속에서 오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선택 안에서 가장 먼저 제한 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의 예민함이었다.


부딪치지 않기 위해 둥근돌만 만들다 보니 모든 돌이 다 비슷해져 어느 순간 무감각 해졌다. 그렇다면 가끔은 의도적으로 예민해져 본다면 어떨까? 하루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름 멋을 내보고, 별일 아닌 감정선에 끝없이 질문을 던져보고, 너무나 당연했던 생각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마도 하루쯤은 내가 멋져 보이고, 감정은 분화되어 다른 영역들을 보게 하고, 지금까지 와는 다른 생각의 일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한 유난을 좀 떨어보는 것이다


무감각하다는 것과 예민하다는 것은 대극으로 한쪽으로 도망가 버려도 결국 같은 선상에 있다. 예민함을 덮기 위해 무감각을 사용하고, 무감각하기 위해 모든 예민함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망가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 부딪치는 소리와 상처가 싫어 무뎌지는 것이 아닌 나의 예민함을 진정 나만의 무기로 꺼내 내 삶을 구성하는 멋들어진 아티스트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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