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vitia J Nov 19. 2023

영화 '가재가 노래는 곳'을 보고

Where the crawdad sings


버려짐, 외로움 

아버지가 떠났을 때 주인공은 울림을 들었다고 했다. 존재가 사라졌을때 , 혼자 남았을 때.


“...he was gone.

Wasn’t like the pain when Ma left.

But being completely alone was a feeling so vast, it echoed.”  -     Kya   


‘...코진스키는 내관적 introspective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때 원래 거기에는 공허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 노인의 사망 후에 퇴거를 명령받는 찬스는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즉 세계의 파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보임에 의해서만 객체로서의 자아는 존재 근거를 가질 수 있지만 찬스는 보인 적이 없기 때문에 부재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존재 증명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보이는 것에 의해서 라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고유성을 가진 존재란 없다. ‘  -     조중걸, 현대예술   


카야는 혼자임에 온몸으로 슬퍼하면서 말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아.”


카야는 아마 나를 닮았을 거다. 유난히 마음에 간 이유가. 부모님은 어둠 속에 잠겨 계셨다. 가족은 공유되지 못한 마음으로 하나가 아니었다. 이해받지 못한 삶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것은 울림으로 돌아왔다. 카야가 속삭인 것처럼. 

카야가 있는 늪지는 무서워 보였다. 무엇인가 숨어 있었으니. 몰랐을 뿐 다양한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이다. 생명이라는 인식은 두려움을 잠재운다. 

하지만 나는 카야보다 못났다. 늪 공간의 집은 금방이라도 부서져 가라앉을 듯해 보였다. 불안감이 휘감았다. 나라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을 어린 카야가 해냈다. 

늪지는 몸을 숨기면 찾기 힘들다. 생존을 위협받았을 때 최우선적으로 숨어야 한다. 


“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숨어” - 매디


포식자에게 몸을 감추고 방어해야 한다. 포식자에게 두려워하는 삶은 죽은 삶이다. 언제까지나 도망치며 살 수 없다. 

봉건제는 영주가 농노에게 치안을 보장하며 존속했다. 혼란은 창조지만 성장을 위해서 평화가 필요하다. 

주인이 되기로 선택했다면 단 한 번의 공격이 요구된다. 영혼과 용감함을 모아 주먹을 쥐고. 노예였던 삶을 걸고. 


카야 해냈구나. 너의 용기에 나도 차가운 눈발이 날리는 곳을 비로소 내가 되어 걷는다. 

영화는 영화가 주는 감동이 있다. 원작도 읽어보기로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부른 ‘Carolina’도 들을 만하다. 


꼬리말,

한국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영화를 찍었다면 영화제목은?


습지나 늪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