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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Dec 22. 2024

언제쯤 질려?(안 질려) 여섯 번째 방콕(2)

말 걸지 마세요.  쇼핑하느라 정신없는 하루거든요.  둘째 날

둘째 날.

 오늘은 온통 쇼핑 일정으로 짜인 하루다.

오전-주말에만 열리는 짜뚜짝 시장->오후-시암파라곤 쇼핑몰 털기

방콕에 갈 때마다 이 동선은 늘 한결같다. 동선 자체가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데 문제는 쇼핑+쇼핑 일정이라 체력이 요구된다. 체력을 생각해 이번엔 코스를 다르게 해 볼까 했지만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이게 최선이다.

 출발 전 대략의 일정 안을 보냈을 때 언니는 약간 심드렁하게 말했다.

"방콕은 쇼핑, 마사지, 뭐 계속 이거야?"

 오랜만에 해외에 나온 언니는 엄마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을 계속 질문해서 첫날부터 우리는 언니를

(여행 모르는) '애기'라고 불렀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쇼핑 계획이 없던 언니는 우리 중 가장 많은 물건을 샀다. 우리는 계속 얘기했다.

 "애기 물욕 터졌네"

 "저 봐 저 봐, 애기 또 사재기한다."

 그 애기의 쇼핑 욕구가 터져 나간 첫 시작은, 방콕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짜뚜짝 시장이었다.


 쇼핑에 눈 뜬 애기(?)

주말만 열리는 짜뚜짝 시장은 매번 와도 매번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그래서 안 올 수가 없다. 

 토요일에 방콕에 도착했기 때문에 짜뚜짝 일정은 무조건 오늘, 일요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림막이 있어 뙤약볕은 아니지만 어쨌든 야외시장이기 때문에 덥지 않게 최대한 이른 시간에, 그러나 시장이 다 오픈했을 적당한 타이밍에 맞추어 도착한다.

 원피스 하나 달랑 샀던 나와 달리 엄마와 언니는 스카프, 가방, 그릇 온갖 잡화를 사대고 나는 따라다니며 결제를 하고, 정산을 위해 기록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으응... 두 개를 더 산다고?" 거스름돈 없는 주인이 옆집에서 돈 빌려올 때까지 기다려서 돌아왔더니 2개를 더 산단다. 그래. 해봤자 까짓, 4개 사도 12,000원인데 뭐. 하하. 

 "이거 되게 시원한데?" 이번엔 용도별로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안마기를 꼼지락거린다.

"3개 100바트면(4천 원) 괜찮네. 사." 나도 부추김에 한 몫한다. (돈을 내가 내고 결제를 할 뿐, 쇼핑 비용은 각각 정산이다. 나 몰라라)

 그렇게 한 개 두 개 산 쇼핑 품목은 혹시나 들고 온 타포린 백을 가득 채웠다.

나중에 언니는 고백했다.

 "100바트의 마법이야. 100바트니까 안 사면 안 될 것 같았어."

맞다. 최근 방콕 물가가 너무 올라서 늘 가던 사람들조차 불만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데 그래도 아직 짜뚜짝 시장은 100바트 물건이 많다. 내 원피스는 160바트(6500원 가량)였다. 짜뚜짝에서 명품.


 쇼핑에 눈먼 자들. '저금' 보다 '지금'에 집중

이제 시암파라곤 쇼핑몰로 쇼핑 장소를 옮긴다. 2차 쇼핑.

아이콘시암이라는 대형 쇼핑몰이 생겼지만 이번엔 그 일정은 과감히 뺐다. 아이콘시암은 쇼핑보다는 관광에 치중된 쇼핑몰이다.(쇼핑몰이 관광? 이상하게 생각 들겠지만 가보면 진짜 그렇슴당.) 게다가 살짝 강도 건너가야 해서 왕복 시간이 소요되기에 무리하게 일정을 구겨 넣지 않고 진짜 쇼핑 위주인 늘 오던 시암파라곤 쇼핑몰에 왔다. 

 언제나 갔던 점심 식당이 폐점되어 살짝 멘붕이 왔지만(최신 소식에 없었는데! 이걸 내가 몰랐다고?! 부들부들+변수에 취약한 J의 영혼 이탈) 지하에 식당이 많은 걸 아니까 거기서 대충 점심을 먹었다.

대충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먹은 점심(J로선 용납불가) 그랬더니 사진도 다 안찍었네.

 그리고 4층부터 본격적인 쇼핑 시작. 쇼핑이라고 해봤자 와코루 속옷(태국에 공장이 있어서 저렴) 엄마가 계속 벼르고 있던 나라야 가방 매장, 마트 털기 딱 세 군데였지만 쇼핑을 하는 주체가 여자 셋이다 보니 시간이 순삭이다. 

 애기는 엄마 따라 나라야 그냥 들어갔다가, 

"어? 파우치 별로 안 비싸네?"(마침 도착하자마자 파우치 너덜너덜해져서 버려야겠다 언급했음)

"이런 가방 괜찮네"(여행 애기라서 여행에 적합하지 않은 가방을 들고 옴) 하더니 또 한 보따리 샀다.

 나는 여기서도 내것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결제하는 자로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대망(?)의 지하 고메마켓.

5천바트(20만원) 이상이면 10KM 내 호텔까지 딜리버리 서비스를 해준다. 영수증 합산 가능. (가실 분들 알아두세요.)

5천바트 이하라도 200바트 유료 결제하면 딜리버리 서비스를 해준다.(꿀팁이니까 빨리 메모하세요.)

투어리스트 카드를 사용하면 5% 할인을 해줘서 5천바트면 꽤 많이 사야 할거 같지만 나는 이번에 김과자를 많이 사 오겠다고 타포린 백을 하나 더 가져왔기 때문에 5천바트가 넘지 않더라도 유료배송을 시킬 작정이었다. 셋이 산 최종 금액은 4천바트가 넘었다. 아니, 이러면 유료 200바트 내기 아깝잖아?! 언니와 나는 다시 마트 안으로 진격했다. 

 전날 호텔에서 내일 일정에 대한 나의 브리핑을 들으며 쇼핑을 무슨 5천바트씩이나 사겠냐고 하던 그 언니는 없었다. 그녀는 엄청난 양의 젤리(하리보가 쌉니다.)와, 초콜릿과, 과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우리의 딜리버리 상자는 대형 상자로 2개가 되었다. 딜리버리 신청+택스리펀 신청까지 하느라 잘못하면 다음 일정 마사지 시간에 늦을 뻔했다.

 이럴까 봐 내가 마사지 예약을 여유 있게 잡았는데,

 이럴까 봐 저녁을 좀 늦게 먹더라도, 마사지를 좀 늦게 받자 하며 일정을 짰는데,

하나도 여유 있지 않았다.

 엄청난 부피의 나의 김과자를 보며 언니는 너 보따리상이냐고 신고하겠다고 협박했고,

 나는 오늘 언니 쇼핑의 총량과, 품목의 다양성과, 금액을 들이대며 그녀의 언행 불일치를 지적했다.


1초도 허투루 보낼 순 없어요. 그래서 디저트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정보를 아는 자의 두 손 가벼움.

우리는 딜리버리를 시켜놓고 숙도 동네로 돌아왔다. 원래도 길을 잘 찾는 엄마는 혼자 숙소에 무사히 갔고 우리는 빠른 걸음을 걸어 늦지 않게 마사지 예약 시간 전에 도착했다.  

 숙소와 연결된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기에 마사지가 끝나고 엄마와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몇 번 와봐서 익숙한 곳인 데다 길도 잘 찾고 두려움이 없는 엄마는 씩씩하게 우리보다 먼저 식당 앞에 와 있었다. 차마 웨이팅 거는 것까지 할 수 없었다며 멋쩍어하는 엄마. 귀여우니까 괜찮다.

 한국 사람들에게 맛집으로 유명한 '해브 어 지드' 식당은 쇼핑몰 내에 있는데 내가 2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그렇게 사람이 많진 않았다. 하지만 그새 너무 인기 맛집으로 부상한 탓에 요즘은 식사시간은 무조건 웨이팅을 걸고 주변을 구경하다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늦은 저녁이 될 오늘의 저녁 식사 일정을 이곳으로 잡았다. 8시가 넘어서 도착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번호표 뽑자마자 3분 내로 진입. 저는 누구보다 치밀한 대형 JJJ 씨입니다.

 다 아는 유명한 메뉴, 하지만 시그니처라 시켜야 하는 푸팟퐁커리, 모닝글로리, 파인애플 볶음밥, 파타이 저녁잔치. 하나쯤은 별로일 법도 한데, 사람들이 많아지면 맛이 변할 법도 한데, 다 맛있다. 다음에 왔을 때도(다음에 또 온다는 확신) 맛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 맛있을 수가 없다고요.

 원래는 저녁 먹은 후 야시장이나 루프탑에 갈까 했는데 쇼핑+쇼핑으로 지친 일정이라 애기언니는 오늘은 쉬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쇼핑몰 앞에서 사진 찍고(불교 국가의 편견을 버려라. 아시아에서 태국만큼 크리스마스에 진심이 나라가 있으랴) 소소하게 추가로 사려고 한 화장품 품목이나 더 사기로 했다. 

 대형 트리에 크리스마스 장식 앞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보통 11월-12월에 방콕에 오는 나는 처음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에 놀라 사진을 찍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약간 무신경해졌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캐롤에도(아직 11월 중순) 이젠 놀라지 않고 태국에 왔구나 실감할 뿐이다.

 "아니, 태국이 왜 크리스마스를 챙겨?"

처음에 놀라던 언니의 반응을 보면서.... 원래 그러는데? 라고 하려던 내가 이상하다고 깨닫긴 했다.

 전생은 믿지 않지만 전생이 있다면 난 태국 사람이었을까.

아주 정신 사나울 정도로 크리스마스를 요란하게 챙긴다. 한 프레임에 다 안 담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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