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클 거예요? 가는 곳마다 다 크다. 커. 첫째 날
여행 인생 몇 년 차인데 중국 대륙을 처음 가봤다. 못 갔다기보다 안 갔다고 하는 게 맞다. 해외 쏘다니는걸(이 표현 말고는 적확한 표현이 없다.) 좋아하면서도 내가 흥미 없어하는 나라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한 나라가 중국이었음을 실토하는 바이다. 그래서 "다음엔 어디 가?" "이번엔 어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베이징"이라고 대답하면 모두가 놀랐다.
"니가 중국을?!"
3박 4일이 이렇게 오래 고민할 일이야?!
다음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에 맞추다 보니 딱 맞는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만리장성 타령+휴가 길게 낼 수 없음+비자면제 기간 등등)
다음 여행지로 정한 건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직후인 5월인데 이 3박 4일 일정을 확정하는데 굉장한 지난한 시간과 과정이 있어 사실 나는 가기 전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기분이었다.
둘이 가려고 했다가 4명이 가려고 해서 다시 상품을 물색할다가 결국은 둘이 가게 되었고, 자유여행은 어렵고(중국은 초기 자유여행 문턱이 매우 높다고 했는데 이유를 다녀와서 실감했다.) 시끌벅적 패키지는 싫고 우여곡절 끝에 딱 5명만 가는 소규모 패키지로 2주 전쯤 출발 확정 되었다. 노쇼핑, 노옵션 상품.(제발 패키지 가시는 분들 가격만 보고 저렴한 거 택하지 마세요. 나중에 가서 보면 결국 그 돈이 그 돈이고 일정은 빡세고 옵션에 시달리고 눈치 보다 돈은 돈대로 냅니다. 제 말 믿으십쇼)
사실 갈래 말래? 갈 거야? 말 거야? 넷이 가? 안 가? 둘이 갈 거야? 이걸 몇 달 동안 했더니 나는 이미 가기 전 조금 지쳐있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고통(?) 받았는데 엎어지면 열받을 거 같아서,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가긴 가야겠어서 진행한 중국행!
첫날부터 일정이 시작된다. 가깝긴 가깝네.
오랜만에 김포에서 출발하느라 긴장했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가도 2시간 전에 겨우 도착. 보통 공항에 4시간 전에 도착하는 미리미리 J 씨는 똥줄 탈 수밖에. 줄은 왜 이렇게 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운지까지 야무지게 들러서 요기를 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내식 메뉴가 별로라 또 이 와중에 특별 기내식까지 신청했는데 다른 것보다 비행시간이 짧으니까 화장실 갈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게 난감하더라. 이렇게 근거리 여행을 다닐 일이 잘 없는 나는 비행시간이 짧으면 적응(?)이 잘 안 된다.
'버.. 벌써 도착한다고?'
일찍 심사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의 일행 일가족을 만났다. 아직은 어색. 서먹서먹. 20대 후반 아들과 50대 후반 부모님이었다. 다행히(?) 가이드분이 매우 주책스럽고! 수다스럽고! 재미있는 분이라 중간중간 경직되는 분위기를 막아주었다.
첫날 일정은 천안문. 자금성. 왕푸징 거리. 그리고 마지막 일정을 임의로 땡겨온 스치하이 거리.
보긴 봤다. 각오했던 것보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추석 연휴 전을 노린 나의 모든 수에 포함) 근데 뭘 봤냐고 물으면 그냥 "다 커!"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천안문, 그리고 1/10도 못 본 자금성
TV에서 보던 그대로다. 행사 때마다 난리라던 천안문 광장은 얼마 전 트럼프 방문으로 인한 열병식이 지나간 터라 곳곳에 아직 행사 여파는 남아 있었으나 한산한 편이었다.
자금성의 경우 일주일 전 티켓팅을 해서 예약에 성공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실패에 대함 부담감 때문인지 대부분의 여행사 상품은 애초에 자금성 내부 투어를 포기하고 조망 관광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유일한 한 여행사만이 티켓팅을 시도했기에 나는 그 점을 높이 사(?)이 여행사 상품을 선택했다.(당연하게도 나는 메이저 여행사 상품 전체를 다 뒤졌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티켓팅에 성공해 다행히 자금성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는 확정 이전에 계속 '자금성을 못 들어가면 무슨 의미냐' 나에게 투덜댔는데 다행이었다.
너무너무 커서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들어가자마자 알게 된다.
사진조차 담을 수 없다. 폰 카메라 따위로는. 방이 999개라는데 더 할 말이 있나. 여기를 지나 다음을 걸어가면 똑같은(똑같아 보이는) 건물이 계속 나타나는데 어지럽다. 산에서 길 잃은 사람마냥 계속 같은 곳을 맴맴 돌고 있는 듯하다. 가이드가 잠시 쉬어가자며 휴식 타임을 권한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 위해 오기 전 부단히 공부하고 준비했던 알리페이 결제를 첫 시도한다. 다른 일행 가족은 아무 준비 없이 온 것 같았다. 중국은 현금을 쓰지 않는다. 정말 쓰지 않는다. 전혀 쓰지 않는다. 내 성격에 혹시 몰라 현금을 준비해 올 법 하지만 이번엔 진짜 하나도 환전하지 않았다. 이미 중국 드라마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현금이 없어진 지(?) 오래 란걸. 거지도 QR로 구걸한다는 우스개 소리.
별거 아닌 걸로 결제에 집중하느라 이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비싼지도 사고 나서 알았다.
하나에 무려 5천 원이라니. 네 아무리 망고라 하더라도.
베이징 물가는 싸지 않다. 맥주와 과일, 교통비만 말도 안 되게 싸고 나머지는 서울보다 약간 저렴한 느낌이다.
고유의 느낌이 사라진 왕푸징 거리. 밤에 갔으면 좋았을 스치하이
한때는 중국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왕푸징 거리는 코로나 이후로 간식을 팔던 좌판을 모두 걷어내고 지금은 그냥 밋밋한 거리가 되었다. 가이드도 딱히 볼 건 없지만 일정에 있다 보니 그냥 우리를 방생하고 놀다 오라고 했다. 엄마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페트병 주스를 파는 집에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산하는데 중국어로 ^&*()_)()&*&ㅆ^ㅆ^?? 라고 계속 물었다. 몇 번 반복 끝에 내가 쏘리...라고 하자 그 젊은 남자직원은 ONLY ONE?이라고 물었다. 내가 중국에서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영어였다. 아마도 젊은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중국은 아무리 외국인 같아 보여도 무작정, 다짜고짜 무조건 중국어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정말로 영어가 1도 안 통한다. 기본은 하겠지 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짧은 단어도 통하지 않았다. 나도 영어 못하니까 상관없지... 의 수준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중국어를 할 줄 알아야 자유여행이 편하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키오스크도 온통 중국어밖에 없다. 돌아오는 공항 라운지 커피 기계도 중국어밖에 없어서 나는 번역기 어플로 사진을 찍고 이해해야만 했다.
스치하이 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이면 가니까 가이드가 현지인이 타는 시내버스를 타자고 했다.
소규모로 오니까 이게 가능하구나. 신기해하며 버스를 탔다. 현지인뿐이라 한국어를 하는 우리를 그들도 신기하게 쳐다봤다. 근데 두 정거장이라더니 미친 듯이 막힌다. 베이징에 가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교통이 어마 무시하게 막힌다는 거다. 안 막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듯했다. 이건 거의 방콕 수준인데? 생각했다. 두 정거장, 엄마와 내 걸음으로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 체감 시간이었다.
스치하이는 밤에 와야 이쁜 곳인데(패키지라도 늘 자유여행만큼 사전 준비하는 나란 인간) 패키지 일정상 밤에 올 순 없나 보다. 모든 여행 상품이 그랬다. 여기도 너무너무 커서 어차피 다 못 보고 일부만 본다고 했다. 호수 주변 1/10 정도 돌다가 사진 찍고 복귀했다.
돈 낸 만큼 값을 한다. 고급 숙소에서 하루의 마무리.
저녁은 베이징 덕이다. 메뉴에 별로 흥미가 없는 나는 이날 저녁이 부실할 거라 생각했다.
아.. 근데 중국이 큰 건 건물만이 아니다. 모든 음식을 어마어마한 양으로 내준다. 메인 메뉴 외에 다른 메뉴도 꽤 많이 나오는데 테이블별 사람이 얼마든 상관없이 다 넘친 듯 담겨 온다. 냄새 때문에 음식에 고생했다는 사람을 많이 봐서 이것저것 챙겨 왔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괜찮았다. 조금 프리미엄 패키지라 좋은 식당에 가서인지, 가이드가 사전 요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입맛에 안 맞아 쫄쫄 굶는 일은 없었다. 다 튀기고, 볶아서 먹다 보면 느끼해지는 건 있지만...
첫날이라 가이드가 현지인 마트에 데려다주었다. 자유여행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마트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때다 싶어 사전 준비해 온 간식 품목을 훑어 카트에 담기 시작한다. 게다가 애플망고도 1개에 1500원이라니. 지금이에요! 얼른 담으세요!! 가득 찬 쇼핑백을 들고 호텔로 복귀한다. 사전 고지받지 못했는데 호텔도 온천욕장이 별도로 있는 꽤 큰 리조트였다. 식당건물, 숙박 건물, 온천 건물이 다 따로따로!
온천에 가기 위한 수영복 같은 건 챙겨 오지 않았지만 방마다 욕조가 있어서 온천을 할 수 있었다. 죠은데?!
물을 받아 마트에서 사 온 맥주를 야금야금 마시니(일전에 말했지만 평소에 술 1도 안 마시는 사람인데 여행+기내에서만 씌인듯 맥주 마시는 그런 사람) 생각보다 천국은 가까이 있었다.
오늘의 날씨도 좋았고 내일의 날씨도 좋다고 했다.
나쁘지 않은데요, 베이징?!